존심양성(存心養性)

by 차성섭


존심양성이라는 말은 孟子 盡心上에 나오는 말이다. 마음을 보존하고 본성을 키운다는 이 말을 나는 처음 보는 순간 마음에 와 닿았다. 하지만 그 뜻이 무엇인가를 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몇 년 전 발목을 다쳐 한 달 반을 방에 갇혀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소학을 읽었다. 소학을 공부하다 존심양성의 뜻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小學集註總論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이 있다. ‘소학공부는 말을 할 수 있고 밥을 먹을 수 있을 때부터 미리 하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어릴 때부터 청소하고 인사하는 것 등을 실천한다. 이러한 실천을 오랫동안 함으로, 이런 일들이 습관화되어 마치 원래부터 있었던 것과 같이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된다. 이렇게 되면 거짓된 말이나 의혹스런 말을 들어도 유혹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소학의 실천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마음속에는 편협한 생각이 생겨나고, 밖에서는 여러 사람의 이러저러한 주장을 듣게 된다. 이렇게 되면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보존할 수 없다.’ 이런 내용의 글을 읽으면서, 오늘날 청소년들의 왕따, 자살, 무례, 교사 무시, 부모 우습게 보기 등등을 생각하여 보았다. 청소년들의 이런 행위가 ‘옳은 것인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행동을 하는 청소년들은 자신의 본성을 키우지 못한 것이 아닌가? 본성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 선현들은 인간의 본성을 인(仁), 의(義), 예(禮), 지(智)라고 했다. 인은 사랑하는 것으로 사욕이 없는 것이고, 의는 바람직한 것이고, 예는 사양하는 것이고, 지는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이러한 것을 어떻게 기를 것인가?

맹자는 그 방법으로 존심양성을 말했다. 즉 본연의 마음을 보존함으로써 본성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마음과 본성은 같은 것이 아닌가? 넓게 보면 같다. 엄밀히 보면 다르다. 마음은 인간이 육체를 가진 후 감정이라는 것을 가졌을 때를 의미한다면, 본성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순수한 것, 다시 말해 인간의 감정과 섞이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마음을 보존한다고 하는 것은 화나고, 우울하고, 불안하고 등과 같이 감정에 휩싸이지 않는 편안한 마음, 즉 감정에 물들지 않는 마음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마음이 편안할 때 우리는 옳고 그른 것도 판단하고, 남에게 사랑도 느끼며, 상대에게 예의도 지킬 수 있다.


하지만 존심양성이라는 이러한 해석만으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본성을 키울 수 있을까? 아니다. 이러한 내용을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 주변에는 비양심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지 않은가?

여기서 문제는 어떻게 마음을 보존하고, 또 맑고 순수하고 편안한 마음 가운데 본성을 키울 수 있는가이다. 그 방법이 바로 어릴 때부터 소학의 행동 공부를 실천하는 것이다. 소학은 청소하고 인사하는 것과 같이 행동하는 것을 그 본질로 한다. 왜 그렇게 행해야 하는가에 대한 원리 탐구는 대학의 격물치지(格物致知)라는 궁리(窮理)에서 한다.


나는 소학의 실천 공부는 쇄소응대진퇴(灑掃應對進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부모에게 인사하고, 친구에게 친절하고, 선생에게 공손하며, 또 강아지를 학대하지 않으며, 물건을 함부로 버리지 않는 것 등등도 다 실천 공부다. 이러한 것을 어릴 때부터 반복하여 습관화하여야 한다. 이런 바람직한 행동이 습관화될 때, 함부로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마음을 편안히 하는 것이다. 즉 마음을 보존하는 것이다.

일상생활 가운데 화평한 마음이 보존된다면, 자신은 물론 남도 사랑하고, 나쁜 짓을 하면 부끄러워할 줄 알며, 남에게 사양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하며, 도덕적으로 옳은 행위와 나쁜 행위도 자신의 양심을 통해 구분한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본성을 키운 것이다. 그래서 小學集註總論에 보면 어릴 때부터 소학의 실천 공부를 한 사람은 20세 성인이 되면 성인(聖人)의 자질 3분 1을 이미 가지게 된다고 한다.


나는 이러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행복이란 자신이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모르는 사람은 행복할 수 없다. 실천하지 않는 사람도 행복할 수 없다. 따라서 나는 생각한다.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천하라. 그리고 자식이 행복하기를 원하는 부모라면, 그 자식에게 어릴 때부터 모든 것을 해주려고 하지 말고 스스로 실천하도록 교육하라. 자식에 대한 부모의 가장 큰 사랑은 자식이 독립된 인격체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한 발 뒤에서 도와주는 것이다. 그러면 아마도 남을 원망하지 않고 자신이 할 일을 스스로 찾아서 할 것이다. 이러한 사람이 바로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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