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농촌일기

버린 수국 나무를 주워 심었다

by 차성섭

지난주에 아내와 하소천을 산책하였다.

집에서 하소천 둑길을 걸어서

제천 세무서로 들어가는 다리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하천둑에 버려진 화분을 보았다.

아마 근처에 있는 음식점에서 버린 것 같았다.

화분의 수가 많았다.

10개가 넘었다.

버린 지가 며칠 된 것 같았다.

화분이 옆으로 뒹굴고,

어떤 꽃은 화분에서 분리되어 하얀 뿌리를 보이고 있었다.

아름다운 꽃이었지만, 용도를 다한 후 버려진 모습은 추하게 보였다.

아내가 수국이 있다면서, 그것을 가지고 가자고 하였다.

아내는 수국꽃을 좋아한다.

밭에서 수국 3포기를 사서 심어 놓았다.

꽃이 피었을 때는 무척 예뻤다.

지금은 화분에 있던 것을 땅에 심어 놓았다.

나도 수국이 좋다.

그래서 가지고 가자고 하였다.

수국이 모두 6포기였다.

화분과 함께 가지고 가면 무겁다.

화분을 버리고 수국만 가지고 왔다.

화분에서 수국를 들어내어도 뿌리가 엉켜있어 나무가 상하지 않았다.

다음날 농장에 가서 수국을 심었다.

작은 비닐하우스 동쪽에 수국 3포기를 심어 놓은 곳에 4포기를 심고,

도라지를 심은 이랑에 2포기를 심었다.

버러진 수국을 가지고 오면서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소유와 존재라는 말이 생각났다.

소유 지향적 사람은 항상 부족함을 느끼고 더 많이 가지려 할 것이다.

존재 지향적 사람은 있는 그 자체를 존중하기 때문에

더불어 같이 하면서 만족과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버려진 수국을 가지고 밭에 심은 것은 분명히 소유이다.

그렇다면 나도 가지는 것에만 욕심을 내는 탐욕자인가?

만족을 모르고, 많은 것을 갖고도 결핍을 더 느끼는 것은 아닐까?

버러진 꽃은 밟히거나 관심을 받지 못하다가 시들어갈 것이다.

내가 그 꽃을 주워 흙에 심었기 때문에 그 꽃은 죽지 않고 계속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나는 좋아하는 꽃만 선택하여 심었기 때문에, 순수한 자연애호가는 아니다.

그렇다고 남의 것을 탐욕하여 나의 소유로 한 것도 아니다.

보통 사람으로서, 양심에 저촉되지 않으면서 좋아하는 것을 실천한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모순과 실천의 변증법」을 읽고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