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농촌일기

가을이다

by 차성섭

지난주 8월 31일 수요일 아내와 농장에 갔다.

오랜만에 갔다.

오랜만에 농장에 가니 가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날씨는 며칠 전부터 서늘하였다.

날씨가 서늘하다고 가을이라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오랜만에 밭에 가니 들판의 색깔이 누렇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논에 있는 벼도 고개를 숙이면서 누런 색으로 변하고 있고,

밭에 있는 사과나무, 배나무, 살구나무, 아로니아 나무,

오이, 땅콩, 풀들이 누런 색깔로 변화고 있는 것을 보니, 가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식물들은 색깔뿐만 아니라 성장하는 모습도 달라진다.

8월 하순에 접어들면서 풀들이 자라지 않았다.

무성하게 자라던 풀들이 자라지 않는다.

오이, 토마토, 가지 등과 같은 과일들도 잎이 떨어지고

줄기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열매를 적게 맺었다.

가을이 되면 왠지 마음이 쓸쓸하다.

결실의 계절이라고 하는 가을에 왜 쓸슬함을 느낄까?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일까?

나는 많은 사람들이 가을에는

기쁘고 희망에 넘치는 것보다는 쓸쓸함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을은 멈추고 다시 태어나기 위한 재생(再生)의 준비를 하기 때문이다.

재생을 위해서는 지금까지 성장하여 왔던 것은 자리를 내어주어야 한다.

자리를 내어준다는 것은 죽는다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반복되는 재생을 통해 존속을 보존한다.

그런 의미에서 재생은 축복받을 일이다.

하지만 재생 속에는 죽음이 내포되어 있다.

죽음이라는 희생을 통해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종의 보존을 약속받는다.

가을에 열매를 맺어 씨앗을 남기는 것은 재생이라는 희생의 과정이다.

낙엽이 지고 씨앗이 떨어지는 것은 바로 이런 과정이다.

봄에 태어나 여름에 번성하였던 식물의 죽음 속에서 새로운 생명체는 탄생을 위한 준비를 한다.

새로운 생명체의 탄생을 위한 희생이 가을에 일어나기 때문에,

가을은 아마도 쓸쓸한 느낌을 가지게 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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