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인 토요일 아들 가족이 왔다.
짱미 생일이라 케이크를 사서 온다고, 오후 3시쯤 늦게 왔다.
1월 5일이 보름이라 보름 하루 전이었다.
아이들이 농장에 가자고 하여 농장에 갔다.
며느리에게 달집을 물으니, 모른다고 하였다.
우리가 어릴 때는 시골에서 달집 놀이를 많이 하였다.
아마 아들 세대는 도시 인구가 많기 때문에, 달집 놀이를 하지 못한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 우리는 잠실에서 살았다.
잠실 석촌호수 놀이마당에서는 해마다 보름이면 달집 놀이를 하였다.
아들은 달집 놀이하는 것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보름을 맞아 무엇을 하여줄까 하고 생각하였다.
달집을 만들어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제대로 된 달집을 만들려면 나 혼자 만들 수 없다.
달집의 모양을 한 약식의 달집이면 만들 수 있다.
일찍 농장에 갔으면 산에서 소나무 가지을 베어서
작은 달집을 예쁘게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늦게 갔기 때문에 그럴 여유가 없었다.
농장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생나무 가지들을 모았다.
또 하천 둑에 있는 마른 풀을 낫으로 베었다.
마침 명아주와 같이 키가 큰 풀이 있었다.
그것으로 작은 달집의 모양을 만들 수 있었다.
엉성한 모양이지만 삼각원통형이 어느 정도 갖추어졌다.
삼각원통형 안에 나무 생가지와 넣었다.
불이 바로 세차게 붙지 않도록 생가지를 넣었다.
아래쪽 가운데는 마른 풀을 넣었다.
달집의 불은 달이 떠오를 때 놓는다.
내가 어릴 때, 달집 주변에는 동네 사람들이 각자 원하는 것을 적어서 달아 놓는다.
불을 붙이면서 동네 사람들이 모여 달님에게 소원을 빌었다.
우리는 달일 떨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아들 가족이 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서울로 가려면 늦기 때문이다.
달이 뜨기 전에 달집에 불을 붙였다.
처음부터 불이 세차게 붙지 않았다.
달집 안에 생나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연기가 한참 나다가 불이 붙으면서, 불길이 높이 솟았다.
내가 보아도 보기에 좋았다.
아이들도 좋아하였다.
불이 붙기 전에 아내는 며느리에 달집 놀이를 할 때 소원을 빈다고 하였다.
불길이 높이 솟아오르자, 아내와 며느리는 손을 모으고 빌었다.
나도 짱미와 짱베가 학교에 잘 다니고,
특히 짱베가 스스로 하려고 하는 의지를 갖도록 하여 달라고 말하면서 빌었다.
짧고 늦은 시간이었지만, 달집 놀이를 재미나게 하였다.
처음 달집 놀이를 하는 며느리와 짱베, 짱미는
달집 놀이를 아름다운 기억의 한 부분으로 저장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