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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선 Aug 16. 2020

책방일기 #51
소신 있는 책방의 고집

얼마 전,

책방에 출근하자마자 입구에 놓여 있는 우편 봉투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습한 날씨 덕분인지 살짝 건드렸는데도 툭 뜯어지던 봉투.

그 속엔 3권의 책이 들어있었지요.

처음 보는 3권의 시집이.






이 책이 어떤 경로로 책방에 도착했는지 아무런 설명이 들어 있지 않았고, 봉투의 보낸 이 주소 부분에 한 줄로 '서점에 작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한참을 생각했어요.


책을 입고해 판매해달라는 건가?
샘플로 책을 보낸 건가?
도움이라면 어디 돈이라도 꽂혀 있나?
등등


아무것도 내용이 없어, 보낸 이에 나온 전화번호로 문자를 보냈습니다.

장문의 문자를 보냈지만, 요약하면 이래요.

저희는 작은 책방이라 큐레이션에 신경을 쓰고 있어 이런 밀어넣기식 입고는 환영하지 않으며 착불로 반송하겠다. 


그랬더니, 장문의 문자 답변이 왔어요.

요약하면, 독립서점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기부한 것이고 샘플이 아닌 판매해서 수익은 가져라, 근데 큐레이션에 신경 쓴다면 그 책방은 아무 책이나 팔지 않는다는 것인가, 자기 책이 맘에 안 드냐 등등 그랬어요.


몇 통의 문자가 더 오가면서 계속되는 기부라는 단어, 작은 책방인데 기부 절차를 일일이 찾아야 하는 것이냐는 발언, 책을 직접 고르는 갑의 입장이라는 표현 등으로 제가 화가 많이 나게 되었지만 (물론 상대방도, 좋은 마음으로 책 보냈는데 이게 뭐라고 되돌려준다 뭐한다 이러는지 화났을 수도 있고요) 문자 내용을 언급하기보다 이로 인해 느낀 제 감정을 글로 남겨 보려고 해요.




책방을 운영하게 된 것은 책을 팔기 위함은 맞습니다.

그렇지만 아무 책이나 팔려고 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것은 아니에요.

책방은 6.5평의 아주 작은 규모, 그마저도 카페 공간이 차지하고 있어 정작 책장은 한 뼘 정도뿐인 소규모 책방이에요. 그래서 많은 책을 가져다 놓지는 못해요. 그 덕분에 좋은 점은, 진짜 내가 보여주고 싶고 소개하고 싶은 책을 고르고 고를 수 있다는 점이죠.


누군가는 여기저기서 책을 주면 그걸 팔아서 수익이 날 수도 있겠네?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대형서점에서 베스트셀러인 책도 판매가 저조한 것이 독립서점의 성격입니다. 책방 쥔장의 고집과 이념이 담겨 있는 책들이 오히려 판매가 잘 되고, 책방이 보여주는 색깔을 잘 드러내는 책들이 더욱 인기가 높습니다. 그래서 좋은 책, 나쁜 책을 나누어 좋은 책을 팔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색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책들을 선별하고 싶어 집니다.


하다못해 무가지로 무료 배포하는 것들도, 연락이 옵니다. 이러이러한 것들이 있는데 책방에서 배포가 가능하냐고요. 그럼 저는 생각해서 성격에 맞겠다 싶으면 보내달라고 합니다. 책방의 모든 책, 모든 소품, 모든 상품들은 제가 일일이 다 검수하고 있기 때문에 제 손길이 다 닿은 것들입니다.


그리고 저희는 작가들의 책을 입고 받으면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길 원합니다. 샘플이 아닌 판매용을 무료로 달라고 한다던지, 덤을 더 달라고 한다던지 하지 않습니다. 작가와의 만남, 북 토크를 할 때도 신청 비용보다 훨씬 많은 비용을 작가에게 지급합니다. 서점이 살아가려면 작가와 출판사가 있어야 하기에, 저희는 최선을 다해 그들을 존중합니다. 콘텐츠를 무료로 가져다 쓰지 않습니다. 물론, 출판사와 작가의 정책에 따라 먼저 연락해서 수수료를 낮춰 준다던지 하는 것은 감사히 받습니다. 사은품을 준다는 것도 고맙게 받습니다.




이번 일로 더욱 고집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졌습니다.

더 소신으로 내 책방을 키워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쉽게 대하지 않을 것 같아요.


"내 책을 주면 저기서 좋아하겠지?"가 아닌, 저기 책방에 내 책 한 번만 꽂혀 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 있게, 정말 열심히 노력 또 노력해야겠습니다. 


그리고 더욱 큐레이션에 신경을 써서, 이 책방 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 키워드로 기억되게 하고 싶어요. (그 작가의 책은 저희 책방 색과 전혀 맞지 않는 책이었어요) 




이 글을 읽는 분들은,

혹시라도 독립서점에 도움을 주고 싶다면,

그저 이 글에 댓글 한 줄 달아 주는 것,

내가 운영하는 책방의 계정에 응원 댓글들을 남겨주는 것만으로 충분해요.

가까이 계신다면, 한 번이라도 방문해주시고,

책 한 권이라도 사주시거나 커피 한 잔 마셔주시면 그것이 최고입니다.

최소 이 책방이 어떤 곳이다라고만 알아줘도, 독립서점은 응원이 됩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올리는 책방 일기인데, 또 넋두리였네요!

다음 글에선 밝은 이야기 전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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