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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선 Sep 24. 2020

책방일기 #52
상가의 재계약

제목 보고 단번에 아셨죠?

벌써 2년이 되었구나?


맞아요!

제가 운영하는 '새벽감성1집'이 벌써 재계약을 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즉, 2주년이 되었다는 말이에요. 하하. 처음 시작할 땐, 1년만 잘 버티면 괜찮겠지 하던 것이 2년을 버텨 버렸고, 앞으로 또 버터야 하는 날들이 늘었네요. 돌아오는 2년 동안 잘 버티면 저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넋두리로 시작하는 포스팅.






건물주 아니고 월세 내고 있어요


처음 책방을 오픈할 때만 해도, 사람들이 이 가게의 집주인이냐 많이 물었어요. 듣자 하니 동네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 중에 (우리가 생각하는 독립서점과 다른, OO문고와 같은 동네 책방) 건물주가 많았대요. 독립서점 자체가 거의 없고, 동네 책방이 많이 사라진 동네에 책방을 오픈했으니 당연히 건물주라고 생각했나 보더라고요. 이거 운영해서 먹고 살 수나 있냐며. 그래서 처음 시작할 땐, 어르신 분들이 종종 오셔서 책을 찾으셨어요. 안타깝게도 생소한 독립출판물이 많은 책방이다 보니 요즘은 자주 오지 못하시지만 가끔씩 들러 주세요. 감사하죠.


처음 책방을 시작할 때만 해도 환상은 전혀 없었어요. 책방 오픈을 위한 준비를 하며, 전국의 서점 운영 강의를 들으러 다닐 때, 전국에서 가장 책 많이 판다는 서점도 수익이 고작 조금밖에 없다는 현실을 알았거든요. 단지 10년을 버틸 수 있을까가 목표였죠. 대외적인 다른 활동들을 많이 하며, 이곳의 월세를 충당해야지 하는 것이 제 다짐이었고요.


1년 반 정도는 그래도 괜찮았어요.

책방에 수익이 나지 않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에서 '책방 쥔장'이라는 타이틀이 더해지니 시너지 효과가 생겼어요.


근데 2020년 1월부터가 문제였어요.

정확히는 2019년 11월 말, 물류창고의 화재로 내가 만든 모든 책을 한 줌의 재로 날려 버린 채 맞이한 2020년 1월부터가 문제였죠. 화재 사고 이후 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코로나'라는 생각지도 못한 악재가 닥칠 줄은 예상 밖이었죠.



최악에 최악을 더하니 남는 건 책방


월세를 충당했던 나의 다른 일거리들이 모조리 사라졌고, 이젠 오로지 책방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이 전부인 삶이 된 거예요. 막막했어요. 1년 반 동안 책방에 수익이 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고작 내 인건비도 벌지 못했던 책방을 과연 얼마나 오래 유지할 수 있을까... 그렇게 9월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좀 나아지겠지, 하던 것들은 나아지지 않은 채 흘러가고 있지만, 그나마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삶을 산다는 것 하나로 최선의 선택을 다시 했습니다. 선택이랄 것도 없이 그저 그만둘 생각을 아직 하지 않은 것일지도 몰라요. 아직은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서점 오픈을 준비하며 [있으려나 서점] 책을 읽으며, 나도 과연 세상에 있지 않을 것 같은 비현실적인 서점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걱정하던 2년 전의 마음을 담아, 재계약 사인을 하고, 이제 3년 차를 준비해요.


살아남아야 하니까, 살아남기 위해서,

이 공간에서 나만의 독창성을 보여 줘야 하는 진짜 승부의 시기입니다.


버티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 남기 위해 매력적인 곳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시대니 까요.



오늘도 불편한 동네 책방을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문하면 빠르게 배송되면서 각종 할인도 해주는 대형서점에 비해, 배송도 느리고 할인율도 낮은 동네 책방에서 온라인 주문을 하시는 분들이 있어, 동네 책방이 살아남을 수 있고, 인터넷으로 쉽게 책을 살 수 있음에도, 굳이 책방에 찾아오셔서 정가에 책을 구매해주시는 손님들이 계셔서 책방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니까.


아무것도 없는 골목 한쪽에 있는 골목 책방의 안위를 걱정하며 정기적으로 찾아 주시는 단골 분들에게 힘입어, 새로운 계약으로 힘찬 3년을 준비해요.









나를 위해 살아요


제가 운영하는 책방의 가치는 '나'를 위한다는 것이에요.

운영을 하는 내가 중요할 수도 있고, 오시는 손님 개개인의 '나'가 중요할 수도 있어요.


쉬는 날도 책방에 가서 쉬고 싶다고 생각하는 책방 쥔장이 머물고 있고요, 책방 마감 시간 이후에도 좀 더 있다가 갈까 생각하는 책방 쥔장이 있고요, 책방 오픈 전에 일찍 출근해 정해진 오픈 시간보다 15분 먼저 문을 여는 책방 쥔장이 있어요.


오시는 손님은 책을 읽어도 되고 책을 보지 않아도 되고, 책을 내게 삼아 잠을 자도 괜찮아요. 책방 쥔장과 수다를 떨기도 하고, 고양이와 놀기도 하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맘껏 하시면 돼요. 최소한의 규칙만 지켜 준다면요.


온라인으로 책을 주문하는 사람도 내 돈 주고 샀지만 선물 받은 기분을 주고 싶어서 2권 이상 주문, 혹은 예약 주문일 경우 위의 사진처럼 예쁘게 포장해서 보내드려요. (참고로 끈은 제가 직접 손뜨개해서 만들었는데 책갈피로도 활용할 수 있어요) 그래서 그런지 책방 스마트 스토어에는 '선물 받은 기분'이라는 후기가 참 많아요. 좋은 후기 한 줄에 더 열심히 포장하는 책방 쥔장이라니...!


아무튼,

저는 최대한 이 작은 공간을 '나'에게 주는 선물 같은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요. 나의 감성을 깨우는 공간, 내가 쉬고 싶은 공간, 혼자 머물면 더 좋고, 나만 알고 싶은 아지트 공간이고 싶어요.


나에게 주는 선물 같은 공간


곧 2주년이 돼요.

그리고 3주년까지 일 년 프로젝트로, 3년 차 독립서점 새벽감성1집의 이야기를 담은 글을 우편 발송해주는 오프라인 연재를 시작해요. 지금 구독자를 모집하고 있으니, 슬쩍 검색하시면 구독 신청하실 수 있을 거예요!


연재 덕분에 브런치에는 더 많은 책방 일기가 쓰일 거예요.

재계약 이후의 책방 이야기를 마구 마구 남겨 놓고 싶어요.

기록해야 기억하고, 기억해야 사라지지 않을 것 같거든요.


버티는 것이 아니라 즐기고 싶거든요.






그럼!

(새벽 4시 반 눈이 떠졌는데 정신이 말짱해서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 저는)

이만 다시 자러 갑니다.


좀 있다가 책방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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