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을 키우지 말아요

동네책방 책방일기 #04

by 김지선
2023년 봄 어느 날의 일기


“왜 아직도 그 신발 신고 있어요?”


그 말을 듣기 전까지 몰랐다. 내가 여전히 겨울용 방한 신발을 신고 있다는 것을. 그러고 보니 오늘 햇살이 따뜻하다고 여기면서도 내가 겨울옷을 입고 있는지 겨울 신발을 신고 있는지 자각하지 못할 만큼 여유가 없었구나.


무심코 책방 유리문을 통해 밖으로 지나다니는 사람을 봤다. 반팔을 입은 사람도 있었고, 얇은 재킷을 입은 사람도 있었고, 양산을 쓴 사람도 보였다. 화장실로 들어가 내 옷을 바라봤다. 까만색 목티가 이 날씨에 어울리지 않았다. 발을 내려다보니 신발이 유난히 더워 보였다. 모두가 계절의 변화에 빠르게 변화하는데 나만 혼자 지나간 계절의 흔적에 머물러 있었다.


아까까지 덥지 않았는데 갑자기 숨이 막힐 만큼 더위가 몰려왔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평소보다 이른 시간 벚꽃이 하나씩 피어났다. 준비할 겨를 없이 꽃부터 내어 놓은 벚꽃은 이번 주 내린다고 예보된 비와 바람에 모조리 떨어져 버리겠지. 충분히 찬 바람을 맞고 알맞은 햇살이 적당한 시간 동안 내리쬐어 단단하게 천천히 피어난 벚꽃들은 오래 버틸지 몰라도 예고 없는 포근함에 급하게 피어버린 꽃잎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어릴 땐 태풍 속에서 힘없이 쓰러지는 커다란 나무는 보기보다 약해서 싫었다. 그에 비해 비바람에도 바위틈에서 오래 버티는 잡초의 꽃은 강인해서 좋았다. 작고 못생기고 눈에 띄지 않아도 단단한 마음이면 어떠한 태풍에도 흔들리지 않을 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런 꽃들보다 화려한 꽃을 더 기다린다. 한 송이의 꽃보다 한가득 물들이는 꽃들의 향연을 기다렸다. 고작 잠시 불어온 태풍에도 버티지 못하고 날아가 버릴 꽃들을 왜 이렇게 동경해 온 것일까. 아직 꽃이 피지도 않았고 지지도 않았는데 이미 떨어진 꽃잎을 상상하며 더워진 날씨에 혼자만 꽁꽁 얼어버린다.




조명을 밝게 밝혀요


책방을 오픈 준비할 때, 가게를 계약하곤 곧바로 조명을 어떻게 할지 생각했다. 마침 신축 건물이 한참 공사가 마무리될 즈음 계약을 했기 때문에, 공사 담당자들에게 내 입맛에 맞는 인테리어를 요청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추가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의뢰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그래서 원래 가게의 조명을 화장실을 제외하고 몽땅 없애 달라고 요청했다. 그다음엔 레일 조명을 설치하겠다고 말했다. 은은하게 몇 개만.


공사를 진행하면서 담당자들은 끊임없이 물었다. 진짜 다 없애냐고. 후회하지 않겠냐고. 난 계속 대답했다. 깔끔하게 없애 달라고. 괜찮다고. 후회하지 않겠다고.


레일 조명의 위치를 정해주고, 은은한 노란빛의 LED 조명을 달아 달라고 요청하면서, 당시 인터넷을 뒤져서 원하는 분위기의 사진들을 모아 전달했다. 하지만 공사가 까다롭다는 이유로 원하는 대로는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꽤 심플하게 레일 위치를 재구성했고, 조명은 여전히 은은하게 부탁했다.


조명 공사가 끝났다는 연락을 받고 가보니, 레일은 이야기했던 대로 잘 되었지만, 조명의 색이 문제였다. 불을 켜니 얼굴의 모공 위치까지도 셀 수 있을 만큼 밝은 색이 반짝였다.


서점을 한다고 하니까 책을 보려면 조명이 밝아야 한다고, 가장 밝은 색 전구로 달았다고 해맑게 말씀하시는 담당자분에게 알겠다고 말하고는 곧장 이케아로 달려가서 사이즈에 맞는 은은한 전구를 구매해서 교체했다. 교체한 것을 본 공사 담당자들은 이래서 책을 읽기는 하겠냐고, 너무 어두운 것 같다며 걱정하셨지만, 때론 밝은 것이 모두 좋은 것은 아니라고 설명할 자신은 없었다. 모두 다 같은 상황에도 서로의 시선으로 바라볼 테니까. 그냥 내가 전구만 바꿔 달면 되는 것뿐이니까.




조명을 키우지 말아요


책방을 찾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이 공간을 찾을 사람은 왜 오는 것일까.


내가 만들고 있는 이 공간은 서점이다. 책을 찾는 사람이 이곳을 찾을 거다. 내가 큐레이션 해놓은 책을 보러 사람들이 올 거다. 나는 학습지나 종교, 정치, 철학책과 같은 분야의 책이 아니라, 에세이, 소설, 고양이 책, 독립출판물 등 가벼우면서도 편안한 책을 찾아 책장을 꾸릴 거다.


그리고 이곳은 카페이기도 하다. 잠시 쉬고 싶은 사람이 이곳을 찾을 테다.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와 잠시 기대어 쉴 곳이 필요한 사람들이 올 테다. 난 대방석과 카펫으로 편하게 뒹굴거릴 수 있도록 공간을 꾸밀 거다.


백색 조명 가득한 사무실에 있다가, 이곳에 들어왔을 때, 따뜻하고 은은한 조명이 있다면 좋지 않을까. 지쳐서 잠시 눈을 감고 잠이 들어도 부끄럽지 않도록 조명이 밝지 않으면 좋지 않을까. 책은, 글씨는, 꼭 밝은 조명에서 보아야만 잘 보일까. 은은한 조명에서 빈둥거리면서 슬쩍 흘려 보아도 좋은 책이 분명 있지 않을까.




보이고 싶은 것들 사이 보이고 싶지 않은 것들


요즘은 아주 긴 앞치마를 착용하고 일한다. 내가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을까 걱정하기보단 그냥 마음 편하게 온몸을 감싸는 것이 낫다. 신발도 어지간하면 사계절용으로 착용한다. 모든 것에 변화 없이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 편하다.


사람들이 책방에 들어올 때, 당연히 시선은 이 속에 있는 나에게 다다르겠지만 곧바로 다른 곳으로 향하길 바랐다. 보이고 싶은 것들 사이, 보지 않아도 되는 불필요한 것들이 내게 있지 않길 바랐다.


나 역시도 손님을 일일이 관찰하지 않는다.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까지 굳이 들출 필요는 없다. 책을 집어서 카운터에 가져오면 그 책으로만 대화를 나누면 될 뿐이고, 음료를 주문하면 공간 이용에 대한 설명만 하면 그만이다.


그저 서로의 보고 싶지 않은 부분을 보지 않게, 조명이 밝지 않길 바랐다.







우리 조명을 낮추고
잠시 쉬어가면 어때요?







머리카락을 싹둑 잘랐다


책방 오픈 초반에는 일 년에 한 번은 미용실에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일 년 동안 미용실 한 번 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쉬는 날이면 외출보다 잠을 청했고, 옷이나 생필품을 사는 건 온라인으로 모두 가능했으니 외출할 필요가 없었다. 간혹 외출할 때면 내가 병원에 가거나 고양이가 병원에 가거나… 나 혹은 고양이가 아팠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정말 큰마음을 먹고 미용실에 갔다. 집 근처에 이십오 년쯤 알고 지낸 친구의 미용실이 있어서 오랜만에 들렀다.


“단발보다는 조금 길게 최대한 자를 만큼 확 잘라줘. 염색도 해야 할까?

“예약 손님 있어서 안 돼.”

“그렇지…? 역시 안 해도 되겠어.”


평소라면 염색까지 했겠지만, 어차피 몇 년에 한 번 미용실에 오는 거, 염색 따윈 상관없을 것 같아 머리만 자르고 나왔다.


“머리 자르셨네요?”


역시나 책방에 오자마자 손님들이 가장 먼저 알아봤다. 자주 미용실에 갔더라면 변화에 무뎠겠지만, 확 변한 변화는 누가 봐도 눈치챌 만큼 눈에 띄었다.


“여전하네요?”


오랜만에 들른 손님이 말했다. 머리를 확 자른 후 숱하게 들었던 변화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변함없다는 물음에 순간 당황했다.


“오랜만에 와도 여긴 여전히 똑같아서 좋아요.”


변화가 좋은 것인가, 늘 같은 모습이 좋은가. 책방도 가끔은 확 변화를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5년째 같은 모습인 것이 낫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차츰 변화도 필요할 것인가 고민이 되었는데, 오랜만에 들른 손님의 ‘여전하다’라는 말에 지금 이대로 괜찮은가 생각했다.


어둑한 조명에도 사람들에겐 보이는 것인 충분했다. 자주 오지 않아도 사람들이 기억하는 모습이 그대로인 것이 괜히 기분이 좋았다. 역시 나는 변화보다는 안정감을 더 좋아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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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이니까 도서관과는 다르다 생각했다. 오픈 초반엔 카페인데 조명이 너무 어둡다고 그냥 나가는 손님도 있었지만, 괜찮았다. 대부분 조명이 더 어두워질수록 편안해했다. 대부분 햇살이 많이 들어와서 조명이 필요하지 않은 낮 시간보다 어둑해지는 저녁 시간에 머무는 것을 더 좋아했다. 지친 표정을 서로에게 들키지 않는 어둠을 더 편하게 느꼈으니까. 슬플 책을 읽다 잠시 울어도 괜찮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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