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도 맥주도 와인도 좋아하니까

동네책방 책방일기 #03

by 김지선

"내일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책방을 열었는데, 매일 눈 뜨는 것이 불행하면 안 되잖아요."


책방을 하고 싶다고 찾아오는 사람에게 그 이유를 물으면 대체로 '행복'이라고 말했다. 과연 사람들은 책방에서 어떤 행복을 찾고 있는 걸까. 때때로 책방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왜 책방이 좋냐고 물으면 '행복하니까'라고 답한다. 과연 그들은 어떤 행복을 추구할까.


그래서 내가 하루 중 언제 가장 행복한지를 생각했다.




눈 뜨면 커피부터 마시는 거 아니에요?


사실 예전에는 커피를 한 잔도 마시지 못했다. 아니,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다. 물처럼 약하게 탄 커피라도 내 심장을 콩닥콩닥 뛰게 했고, 내 머리를 멍하게 만들었기에 한동안 커피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던 내가 커피의 맛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파리에서 살 때였다. 시험공부를 하다가 너무 졸려서 잠이나 깨 볼까 집에 가던 길에 마셨던 에스프레소 한 잔은 내 잠을 달아나게 했고, 멍한 정신이 아니라 맑은 정신을 주어서 공부가 잘 되었다. 그 뒤로 졸릴 때마다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그게 계속되면서 어느덧 커피 중독자가 되었다.


요즘은 눈 뜨면 커피부터 찾는다. 밥 한 술 뜨기 전에 마시는 커피 한 잔이 참 좋다. 자는 동안 비워진 위 속에 따뜻한 커피가 들어가면 기분이 참 좋아진다. 맛이 좋은 건지 향이 좋은 건지 시간이 소중한 건지. 그냥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하다.




낮인데 맥주나 와인이 마시고 싶을 때도 많지 않아요?


어떤 날은 눈을 떴는데, 맥주나 와인이 너무 마시고 싶다. 그럴 땐 눈치 보지 않고 맥주나 와인을 마신다. 한 번은 낮에 길을 걷다가 맥주가 마시고 싶어서, 가까운 편의점에 들어가서 맥주 한 캔을 사고, 편의점 테이블에 앉아 마셨다. 평소 빨맥(빨대+맥주)을 좋아하다 보니까 빨대 하나 꽂아 마시고 있었는데, 편의점 직원이나 지나가는 사람이나 시선이 좋지 않았다. 난 정말 맥주가 마시고 싶었을 뿐인데….


낮술을 좋아한다. 어쩌면 20대를 파리에서 보낸 탓에 낮술을 즐기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점심 먹으면서도 와인을 곁들이고, 해피 아워 시간인 낮 시간에 맥주나 와인을 즐기던 그 시절 습관들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누구네 집에 놀러 갈 때 들어가자마자 맥주 한 잔 하라면서 한 캔 따서 주면 고맙다고 홀짝홀짝 마시던 그때의 일상이 지금의 내가 되었다.


아무튼 나는 해가 쨍쨍한 시간에 맥주나 와인을 즐겨 마신다. 정신이 맑을 때보다 살짝 몽롱한 상태를 좋아하기도 하고, 평소에 좋아할 법한 적당한 음료를 찾지 못한 이유이기도 했다. 탄산을 마시고 싶을 때 콜라나 사이다보다 맥주가 낫고, 부드러운 음료수가 필요할 땐 와인이 재격이다. "행복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특히 책을 읽을 때면 몸의 감각을 최대한으로 풍부하게 만들어 줄 적당한 알코올이 좋다.




커피도 맥주도 와인도 좋아하니까


잠 못 자게 하는 커피도, 잠 잘 오게 하는 맥주나 와인도 좋다. 겨울엔 따뜻한 전기장판에서 마시는 와인 한 잔의 여유도 좋아하고, 여름엔 적당한 소음과 음악을 들으며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잔의 여유도 좋아한다.


빈둥거리고 싶은 날,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을 때 허전하지 않게 해주는 커피, 맥주, 와인이 좋다. 책장에 책이 가득 차면 마음이 편해지듯, 커피 원두가 떨어지지 않거나, 냉장고에 맥주가 여전히 남아 있거나, 선물 받은 와인이 있는 날이면 기분이 참 좋다.


그래서 내가 운영하는 책방에는 언제나 커피와 맥주와 와인이 채워져 있다. 책장의 책을 채우듯 나는 커피와 맥주와 와인이 떨어지지 않게 꼼꼼하게 재고를 파악한다.


물론 다양한 종류를 판매하진 않는다. 처음엔 맥주는 강서맥주, 한강맥주, 서울맥주 딱 3종류만 병맥주로 판매했었는데, 요즘은 강서맥주 하나로 줄였다. 와인도 레드와인 그냥 하우스 와인으로만 판매한다.




위스키 마시면 너무 좋겠어요!


어느 날, 북큐레이터 분이 책방에 방문해서 책방의 큐레이팅을 함께 살펴보던 날이었다. 그분은 이 책방은 큐레이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간이 주는 매력이 훨씬 더 크다고 했다. 말인즉슨, 자기가 멀리서 왔는데 올 때까지만 해도 너무 먼 곳에 무엇이 있을까 싶더니, 막상 와보니 여행자의 마음이 되어서 게스트하우스에 초대받은 느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여기서 위스키 마시면 너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그 말은 불씨가 되었다. 남의 말에 흔들리는 성격은 아니어서 한 귀로 흘리면 그만인 말들이 많았는데, 마침 맥주에 대한 고민을 한참 하고 있던 터라 적절한 대안책을 얻은 것 같아 좋았다.


5년 차 책방을 꾸리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맥주의 매출이 높지 않다. 그래서 맥주를 아예 팔지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때였다. 와인은 종종 사람들이 마시긴 했으나 맥주를 빼고 와인 만으로 영업을 하기엔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어서 그랬다. 그때 '위스키'라는 대안을 얻게 되다니 당장 실행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위스키는 잘 모르는 영역이었다. 아무래 위스키가 대안책이라고 해도 모르는 것을 팔 수 없기 때문에 그때부터 위스키를 공부했다. 아니 공부랄 것도 없이 많은 종류를 다 가져다 놓고 팔 수는 없으니 이곳에서 팔기 좋은 적절한 것을 찾아 다양한 위스키를 마셔 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게 바로 '몽키숄더'였다. 지금은 글렌피딕까지 영역을 넓혔다.


위스키를 메뉴에 추가하고 난 후, '위시리스트'라는 모임을 개설했다. 위스키를 마시며 시를 쓰는 모임이다. 그 모임은 비정기적으로 몇 달에 한 번씩 꾸리는데 인상이 깊었는지 한동안 모임을 열지 않으면 왜 안 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모임으로 책방을 처음 알게 되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책방인데, 커피, 맥주, 와인을 팔아도 괜찮은 거잖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몽땅 가져다 놓았을 뿐이야.






삶은 꽃에 젖었다.


밤의 세상,

꽃의 줄기,

소주의 응원

피고 빛났다.


탁해진 노란색의 비에

젖어가던 마음은 무엇일까.

나는 마음이 흔들렸다.


사람은 민트향 눈빛이 사라지고

혼자 세우는 삶엔 진한 향이 맴돌았다.

삶은 꽃에 젖었다.

비로소 꽃잎은 아름답게 핀다.




위시리스트 모임 때 썼던 한 편의 시다. 이 모임이 아니었으면 절대로 만들어내지 못했을 문장들을 엮어 시를 썼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시가 쌓일 것이다. 진하게. 삶처럼.


책방에서 만드는 많은 모임 중에서도 유독 '글쓰기' 모임을 좋아한다. 그 이유는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쓰는 글이 좋기 때문이다. 글이야 혼자 쓸 수 있더라도 이야기를 혼자 하긴 어렵기 때문에 그런 모임들이 행복하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 책방을 열었으니까' 행복한 모임을 꾸리는 것은 책방에서 중요한 문제다. 아침에 눈 떠서 커피를 마시는 것, 낮에 가볍게 맥주나 와인을 마시는 것, 저녁에 술이 있는 모임을 하는 것. 모두 내 행복에 필요한 요소다.






오늘도 행복했다.





아직 행복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은 모른다. 매일 커피와 술을 마시지만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할 때마다 건강에 이상이 없어 이 자유를 계속 누릴 수 있는 삶이 행복일까. 사람들과 취향에 맞는 이야기를 하며 소통할 수 있는 삶이 행복일까. 내가 원하는 공간을 꾸리고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순간이 행복일까.


책방지기여서 오늘도 행복했다.







L1200038.JPG

무엇보다 가장 좋아하는 것은, 맥주나 와인에 안주로 커피를 마시는 거다. 술을 마시면서 다른 안주를 찾지 않고 오직 술만 마시다 보니까, 내가 운영하는 책방엔 딱히 안주거리를 팔지 않는다. 가끔 손님들이 안주는 없냐 물어보면 '책을 안주 삼아 마시세요'라고 말하는데, 그 말에 손님들은 멋있다고 했다. 그냥 내 취향일 뿐인데.



keyword
이전 03화나쁜 책방 하면 안 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