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책방 책방일기 #02
열고 싶은 날만 영업하는 나쁜 책방이고 싶었다
책방을 운영하기로 마음먹고 난 후, 여전히 난 어딘가에 정착하는 것보단 여행을 다니며 사는 삶을 더 원했다. 그래서 최대한 작은 공간이면서 월세가 저렴하길 바랐다. 그래야 열고 싶을 때만 열 수 있을 테니까. 물론 이 생각은 자영업자가 되기 위한 생각으로는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그럼에도 일단은 작고 저렴한 곳을 찾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공간을 아무리 뒤져도 내 입맛에 맞는 장소를 집 가까운 곳에서 찾는 것은 어려웠다. 애초 기준이었던 월세는 40만 원 선이면서 관리비도 거의 없고, 권리금은 당연히 없으면서 보증금은 천만 원을 넘지 않는 곳이 있을 리가 있나. 아 물론, 공간이 독립적이지 않으면서 오래된 건물, 혹은 집에서 아주 먼 곳에선 가능했다.
결국 월세를 조금 더 높여 생각했다. 그랬더니 권리금이 조금 있더라도 단독적인 공간이면서 최소 6평대 정도의 공간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계약하려고 마음먹었던 곳에서 막상 계약을 하려니까 상가 주인이 월세를 너무 싸게 계약하는 것 아니냐고 부동산에게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당시 보증금 천만 원, 월세 60만 원, 관리비 1만 원, 권리금 300, 지하철역에서 도보 약 10분 이내, 비교적 큰 아파트가 바로 옆에 있는 상가 건물 1층) 이 정도 가격이면 들어오겠다고 하는 사람이 줄을 선다고 화를 내는 소리가 전화기 밖으로 들렸다. 그래서 부동산에서는 월세를 5만 원 정도 올려 계약하면 좋겠다고 했지만, 난 계약하지 않겠다고 나왔다. 그런 주인이 있는 공간에 잘못 들어갔다간 2년 재계약할 때마다 월세가 오를 것 같았다. 아무리 재개발 때문에 한창 월세가 오르고 오르는 상권이 도보로 10여 분만 가도 나오는 지역이라고 했지만, 그곳은 걸어 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이 극도로 한적한 곳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열고 싶을 때만 열어도 사람들이 잘 모를 것 같은 동네였다. 원하는 동네로는 적절할 것 같았으나 전화기 밖으로 쩌렁쩌렁 큰 목소리를 내어 화를 내는 주인의 건물에 들어가고 싶진 않았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원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상가를 덜컥 계약하려고 했던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이후에 알게 되었다. 상가를 알아보러 다닐 때, 부동산에서는 매번 어떤 일을 할 것이냐 물었는데, 상가 계약에 있어서는 어떤 일을 할 것인가도 굉장히 중요했다. 어떤 곳은 술을 팔 수 없는 곳도 있었고, 어떤 곳은 시끄러운 일을 할 수 없는 곳도 있었고, 어떤 곳은 오가는 사람의 시간대가 원하는 직종과 전혀 다른 곳이기도 했으니, 부동산에서는 그에 맞는 적당한 매물을 찾아 주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단순히 난 책방을 하기 좋으면서도 월세가 싼 곳만 생각했는데, 그 외에 따져야 할 것들이 넘쳤다.
매물을 30곳 이상을 본 후에야 겨우 내가 원하는 것을 정리할 수 있었다.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할 땐 이것저것 다 시도해 보고 적절한 선을 찾아가는 것이 괜찮은 방법이었던 것이다. 어느새 부동산에서 질문하는 것들을 차분히 대답해 나가면서 '나는 이런 공간을 찾고 있다'라고 한 번에 말할 수 있을 때가 된 것이다.
그때 마침 지금 책방 자리를 만났다.
뭔가 조금은 아쉽지만 맘에 드는 곳
우선, 골목에 아무것도 없는데 상가만 하나 달랑 있는 곳이길 바랐다. 옆집에 어떤 가게가 들어올까 조마조마할 필요 없이 늘 한적하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래야 나도 조용하게 머물 수 있을 테니. 이곳이 그런 면에서 딱 좋았다. 게다가 동네 상권이 아예 없었으면 했다. 젠틀리피케이션으로 공간을 종료하겠다는 안내문들을 떠올리며 그다음이 내가 되지 않길 바랐다. 더군다나 책방이긴 하지만 내 작업실로의 역할을 해야 하기도 하니 손님들이 많이 드나드는 것보단 작업할 수 있을 만큼 최소한의 한가함이 유지될 수 있다면 했다. 그래서 지금의 책방 자리가 목적에 딱 어울렸다.
아쉬운 것은 화장실이 내부에 있다는 점이었다. 화장실 청소를 하고 싶지 않은데, 화장실이 안에 있으면 불편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게다가 6.5평의 공간에서 화장실이 꽤나 크게 차지하고 있었다. 물론 이 점은 지금에서는 장점이 되고 있어서 더 좋다. 여자 손님들이 화장실을 편하게 오갈 수 있다는 점에서 정말 안심된다. 나 역시도 화장실을 편히 오갈 수 있고.
화장실이 1층 내부에 있어 공간이 많이 좁아졌지만, 그래도 좋았던 점은 다락방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건물은 신축 건물이고, 내가 상가를 보러 왔을 때만 해도 건물이 이제 막 지어지고 있었는데, 상가엔 다락방이 생길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 말을 듣고 아직 공사도 끝나지 않은 상가를 계약했다. 아무리 1층 공간이 좁아도, 그보다 넓은 다락방 공간이 있다면 전혀 좁게 느껴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공간은 좁지만 다락방이 있어 두 배의 공간으로 활용도가 있는 곳. 화장실이 내부에 있어 청소가 걱정이지만 그래서 나 또한 편하게 쓸 수 있는 곳. 무엇보다 공간을 둘러싼 골목들이 조용해서 괜찮은 곳. 더불어 집에서도 걸어서 10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것까지. 모든 것을 100% 만족할 수는 없어도, 현재 알아볼 수 있는 금액대에서 가장 적절한 공간을 찾았다고 자부했다.
나쁜 책방 하면 안 돼요?
막상 계약을 하고 나니, 공간이 아쉬웠다. 1층 공간은 화장실이 있고 구조가 평평하지 않아 좁았고, 다락방이 생각보다 넓었다. 애초에 책방만을 생각했던 것과 달리 결국 공간의 특성 때문에 책방 겸 카페로 만들기로 했다. 누군가는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책방을 운영할 때, 커피나 다른 부재료를 함께 관리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책으로만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싶었으나 커피나 다른 음료만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거고, 혹시나 만약에 이렇게 한적한 골목에 카페가 생겼다고 카페로 북적이면 어쩌냐는 엉뚱한 상상도 했다. 하루 종일 책을 파는 것이 아니라 커피를 종일 만들고 있는 모습은 내가 바라던 모습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공간을 아무리 생각해도 카페를 겸해야 했다. 그리고 이왕 할 거면 최선을 다해 내가 좋아하는 모습으로 꾸리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커피도 좋아하지만 맥주나 와인도 좋아하고 낮술을 좋아하기 때문에, 내가 만약 카페로 만든다면 술은 필수 요소였다. 그래서 부랴부랴 술을 팔 수 있도록 일반음식점으로 사업자를 내기로 했다. 신축 건물이고 조리 시설을 충분히 갖출 수 있는 공간이었기에, 비교적 수월하게 술 판매가 가능한 일반음식점으로 사업자를 낼 수 있었다.
뭐, 사업자를 내는 것, 판매를 하는 것까지는 그래도 수월했는데, 역시나 이것이 문제였다. 나는 분명 책방에 얽매이지 않고 내가 오픈하고 싶은 날만 오픈하고 싶었는데, 책방 겸 카페가 되어 버리니 그럴 수 없었다. 정해진 오픈 시간이 필요했고, 정해진 시간엔 문이 열려 있어야 했다. 내가 영업하고 싶은 날만 문을 여는 나쁜 책방 하면 안 되냐고 생각하고 생각해도, 카페는 그러면 안 된다고 여겨졌다.
나쁜 책방 하고 싶었는데, 결국은 오픈과 마감 시간이 정해진 카페가 되어 버렸다. 사람들은 서점이 아니라 카페로 이곳을 먼저 알게 되었고, 나는 책방지기가 아니라 카페 사장님 소리를 먼저 들었다.
나는 과연, 적응할 수 있을까?
이 삶, 괜찮은 것일까?
인구가 100억쯤 있다면
대한민국에 인구가 5천만 명쯤 되고, 서점 숫자는 대략 2,500개 정도 된다. 그렇다면 인구 2만 명당 1개 꼴로 서점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 동네를 기준으로 지도에서 현존하는 서점을 검색해 봤더니 지하철 노선을 중심으로 대부분의 서점이 뻗어나갔다. 그리고 가까운 중고등학교가 있는 곳에 대체로 서점이 보였다. 그렇다면 이 지역의 인구는 얼마나 될까? 책방의 행정구역은 양천구지만 손님의 대부분은 강서구 사람이어서 강서구를 따지는 것이 편하다. 강서구의 인구는 대략 56만 정도고, 동으로 따지면 한 동에 대략 2~3만 정도 거주한다. 그래서 이 지역은 인구 2만 당 1개의 서점이 아니라, 인구 2만 당 5~7개쯤 서점을 보유하고 있는 지역이 된다. 전국적으로는 2만 명당 1개의 서점이 있어도 모든 지역에 고루 분포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와 같은 결과에 도달한 것이다. 2019년 자료에 의하면 국내 50곳이 넘는 지역에 서점이 멸종 예정이란다. 그러면 수도권과 인구가 밀집된 곳에 주로 서점이 몰려 있다는 말이겠다. 여기가 서울에서는 변두리겠지만 그래도 전국적으로 따지면 수도권에서도 서울 안에 있는 지역 아닌가. 뭐 서점이 많은 지역이라고 해도 괜찮다. 계산적으로 최소 2,800명의 잠재적 손님이 있는 것도 절대 적지 않다.
그런데 만약 인구가 100억쯤 있다면 어떨까? 200배가 늘어난 인구라면 잠재적 손님의 숫자가 56만이 되어 버린다. 그러니까 강서구를 내가 접수하는 셈이다. 신난다.
진짜 그렇게 된다면 이 작은 책방에 손님들이 한꺼번에 몰려오거나 문을 열기 전부터 대기표를 뽑고 기다리거나 서로 들어오겠다고 싸우겠지? 주변에 민원도 엄청날 거다. 워낙 장사가 잘되니까 가게를 팔라고 하거나 주변에 같은 업종이 들어오거나 하는 일도 빈번할 테다. 처음 이곳을 시작할 때 책을 단지 판매하는 ‘캐셔’가 아니라 ‘책방지기’로 책을 소개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는데, 손님들이 몰려온다면 계속 계산만 해대는 캐셔로 전략해 버리겠지.
지금은 출퇴근을 하거나 근처를 산책하거나 책방에서 골목을 바라볼 때 언제나 한가로운 시간이 많아 편안했는데 이 길에도 빼곡하게 사람으로 가득차게 된다면 어떨까? 1층의 따사로운 햇살을 포근하게 느끼는 시간,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을까.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맞춰 대화하는 순간의 소중함이 그때도 유지될 수 있을까.
다행이다. 인구가 고작 5천만이어서.
사실은 누가 찾아올까 두려웠다. 그래서 남들이 쉽게 찾을 수 없는 곳에서 책방을 하고 싶었다. 아무도 오지 않더라도 위치 때문에 그렇다고 핑계를 대고 싶었다. 사실은 누가 오는 것도 두려웠다. 그래서 내 맘대로 문을 열고 싶었다. 그래야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만 우연히 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곳에 아무도 오지 않거나 모르는 사람이 올 때 느낄 두려움을 내가 아닌 다른 핑계를 대기 위해 나쁜 책방이 되고 싶었다. 다행히 적당히 숨고 싶고 적당히 관심받고 싶은 사람에게 이곳은 적절한 곳이 되었다. 다행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