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책방 책방일기 #06
집에 들어오자마자 가방을 내려놓고, 겉옷을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 그리고 살갑게 다가와 야옹거리는 고양이를 들어 올려 안고 토닥였다. 사람에겐 24시간 단위로 흘러가는 하루의 시간은 고양이에겐 5배나 빠르게 흐른다. “잠깐 다녀올게!”라며 출근하는 몇 시간 동안이 고양이에게는 며칠의 시간만큼 긴 시간이었으리라. 그 지루함의 시간을 보상받고 싶은 듯, 고양이는 안겨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나만 바라보는 존재가 사랑스럽다고 무거운 어깨에 더 무거운 고양이를 들춰 앉고 한참을 안아줬다. 지루해진 고양이가 내려 달라고 발버둥을 칠 때야 비로소 고양이를 내려놓고, 나머지 옷을 벗었다. 외출 때마다 꼬박꼬박 착용하는 브래지어를 벗는 순간이 가장 상쾌하다. 브래지어를 벗어 의자에 던져 놓았다. 서둘러 잠옷을 입고 잠을 청한다. 내일은 쉬는 날이니까 오늘은 반드시 일찍 자겠노라고 마음먹고 잠을 청했다. 그런데 잠을 청하면서도 계속 왜 휴대폰을 보게 되는지….
삼 주를 쉬는 날 없이 일했다. 분명 스스로 휴식이라고 정해놓은 휴일이 있었지만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아니, 지킬 수 없었다. 최근에 유독 온라인 주문이 없어서 택배 기사님에게 “오늘은 택배가 없어서 안 오셔도 되어요.”라고 전화를 많이 했었는데, 희한하게도 휴일인 수요일엔 어김없이 온라인 주문이 있었다. 많지도 않게 딱 1건씩. 어느 날은 너무 피곤해서 재고 부족으로 발송을 미룬다는 안내를 할까 고민했고, 어느 날은 미리 외부 일정으로 이번 주 수요일은 택배 업무를 하지 않겠다고 공지를 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매번 줄어든 통장 잔고를 보며 한 건의 주문이라도 기분 좋게 발송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달랬다. 그래서 주문이 들어와서 내일 외출을 해야 할까 걱정 반 기대 반 휴대폰을 손에 쥔 채 잠에 빠졌다.
평소와 다름없는 오전 시간에 고양이가 놀아달라고 깨워서 눈을 떴다. 손에 쥔 휴대폰이 툭 베개 밑으로 떨어져 서둘러 주우며 온라인 주문 알람이 있나 살폈다. 하지만 아직 아무런 알람도 없었다. 업무 메일도 없었다. 삼 주 만에 드디어 휴일이 생겼다. 앗싸. 씻지 않아도 되겠구나! 오후 2시가 넘어가자 만약 이제부터 주문이 들어온다면, 원래 우리 책방은 오전 주문까지만 당일 발송된다고 안내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실은 이런 이유로 온라인 스토어에 택배 마감이나 발송 안내를 제대로 해두지 않았다. 다른 곳처럼 몇 시까지 주문이면 당일 발송이 된다는 것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빠른 배송보다 예쁜 배송을 추구합니다.’라는 문장을 큼직하게 써놓았다. 빨리빨리에 익숙한 세상이지만 여전히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빠름은 중요하지 않았다. 무려 몇 주간 책방 문을 닫고 여행을 다녀왔는데도 그 시간을 기다려준 온라인 주문자가 있을 만큼 느리게 흘러가는 주문에 마음이 너그러웠다. 그렇지만 내가 택배를 보낼 수 있는 날이라면 하루라도 더 빨리 발송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아무리 느린 게 괜찮다고 해도 굳이 일을 미뤄서 할 필요는 없다.
꼬질꼬질한 상태로 컴퓨터 앞에 앉아 어제 보다 만 드라마를 이어서 본다. 빗질도 안 해서 헝클어진 머리를 손으로 쓱쓱 잡아 끈으로 묶고는 간식거리를 책상으로 가져와 느긋하게 시간을 보낸다. 고양이는 집사가 집에 있어 줘서 고마운지 계속 주변을 맴돌고 안아달라고 보챘다. 귀찮다고 말하면서도 고양이를 토닥이며, 고양이와 매일 노는 것이 직업이라면 나는 평생 힘들게 살지 않겠다는 헛생각만 났다.
고양이를 좋아해
인생에서 고양이를 빼고 이야기하긴 어렵다. 결론적으로 난 고양이가 좋다. 고양이와 함께 살기 전엔 잘 몰랐는데, 고양이와 살기 시작한 2004년부터 지금까지 쭉 고양이를 좋아한다. 그래서 글을 쓸 때도, 책을 만들 때도 고양이는 내게 좋은 뮤즈다. 책방을 운영하고자 했을 때 고양이를 테마로 하겠다고 생각한 건 어쩌면 당연하다. 대출을 받았음에도 책방을 꾸리기 위한 보증금, 기본 인테리어 등등 필수로 필요한 것들에 돈을 쓰고 나니 자잘하게 꾸며야 할 소품에 쓸 돈이 없었다. 그래서 집과 사무실에 있던 각종 물건들을 가져다가 가게를 꾸몄는데, 오히려 그 점이 이곳을 온통 고양이 소품들로 가득하게 만들어서 ‘고양이를 테마로 한 책방’이라는 타이틀에 잘 어울렸다. 실제로 고양이가 머물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집에 있는 고양이를 데리고 다니기엔 고양이 나이가 16살(책방 오픈 땐 16살, 지금은 19세 때 별이 되었다.)이어서 매일 데리고 나가기엔 무리가 있었다. 결국 ‘고양이 동반 책방’이라고 말을 붙여, 고양이 손님을 환영하는 ‘고양이 책방’을 꿈꿨다.
첫 시작은 느릿느릿
첫 시작은 고양이의 걸음처럼 느릿느릿했다. 8월에 가계약을 하고, 건물이 공사를 진행하는 동안 기본적인 틀을 갖추어 가면서 인테리어를 구상하고, 각종 집기들을 들여놓을 준비를 했었지만, 10월 1일 계약을 하고 나서도, 계약 후 2주 안에 오픈을 목표로 한 것을 지킬 수 없었다.
9월에 건물 공사가 끝난다 했고, 10월에 계약 후 바닥과 조명 등 간단한 인테리어를 하고, 책장을 들여놓고, 책을 채우면 끝날 것 같던 것이 생각보다 길어졌다. 따로 고용한 인테리어 담당자들이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건물을 공사하는 분들이 책방의 기본적인 인테리어를 도와주고 있었기에 어쩌면 길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8월부터 완공 날짜를 물어봐서 대비하고, 따로 주문한 작업들의 진행 일정을 계속 체크했음에도…, 하루면 된다는 말을 숱하게 하면서 질질 끌다가 10월 중순이 되어야 겨우 기본 틀이 갖춰졌다.
필요한 물품들이나 일정 분량의 책 등은 사무실로 받아 둔 상태였기에 공사가 끝난 후, 기본 청소 후 책방의 형태를 갖추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가게 운영이 처음이고 공간을 꾸미는 것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무언가를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여유롭게 생각하면서 책방 첫 행사를 10월 마지막 토요일이었던 27일로 잡아 두었는데, 그 행사 전에는 오픈을 해야 할 것 같아서 얼렁뚱땅 10월 26일 오픈을 했다.
아르바이트생은 고양이
책방 첫 행사로는 ‘참티스트의 영화방’을 잡아 둔 상태였다. 참티스트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작가와 평소 친분이 있었는데, 책방을 오픈할 즈음 서로 연락을 취하다가 책방에서 영화 모임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곤 곧장 날짜를 잡아 버렸다. 우리는 첫 행사에 상영할 영화를 고민하다가, ‘고양이’를 주제로 하자고 정했다. 고양이가 나오는 영화가 이 책방과 잘 어울릴 것 같다고. 그리고 나는 당일엔 일일 책방지기로 고양이를 고용하겠다고 말했다.
사람을 좋아하고, 낯선 환경에 적응도 빠른 고양이 ‘구름’이는 아르바이트생으로 적절했다. 알바를 하기 전에 혹시 몰라 적응을 위해 몇 차례 책방에 데리로 가기도 했는데 너무도 능숙했다. 그래서 영화 행사에서 손님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
암막 커튼까지 갖춘 어눅어눅한 다락방, 꽤나 고민해서 골랐던 빔 프로젝트의 괜찮았던 화질, 큰 스크린…, 그리고 고양이 영화와 고양이가 돌아다니는 책방. 이 조합은 나쁠 수가 없다. 얼떨결에 오픈 첫 행사에서, 첫 알바를 했던 고양이의 이야기와 함께 책방은 힘차게 출발했다.
#고양이우대 #츄르상시준비중
손님들의 인상 깊던 후기 중에 책방을 한 줄로 표현한 것이 인상 깊었다. ‘고양이가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곳’이라고 표현했던 것이 말이다. 내가 운영하는 책방은 사람보다 고양이가 먼저다. 고양이는 사람이 가지 못하는 곳 어디든 갈 수 있다. 위험한 행동을 하면 못하게 하긴 하지만, 그래도 고양이에겐 모든 공간을 열어 준다.
고양이를 동반해 오는 손님들이 종종 있었다. 겨우 2주년이 되기도 전, 그 사이 단골로 오던 고양이 손님이 별이 되기도 했고, 하나였던 고양이에서 둘째를 들인 단골도 있었다. 나 역시도 2003년생 고양이와 살고 있었는데, 책방 2년 차 때, 똥꼬 발랄한 아깽이 고양이 '여름이'를 새로 맞았다. 그리고 그해 겨울 셋째 '아름이' 고양이까지 대가족이 되었다.
고양이가 주인인 곳
책방엔 나도 고양이를 데리고 가지만, 누구나 고양이를 데리고 올 수 있다. 언제나 고양이와 함께 오기 좋은 곳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간혹 책방에 매일 고양이가 있는 줄 알고 왔는데 고양이가 없어서 실망한 사람도 있었지만, 이곳은 고양이를 보러 오는 곳이 아니라 고양이와 함께 오는 곳일 뿐이다. 물론 구름이가 별이 되었고, 여름이의 중성화 이후엔 집 밖으로의 외출을 두려워해서 완전한 집고양이가 되어 책방 출입을 꿈도 못 꾸게 되었고, 또 아름이는 3년 차 함께 살고 있음에도 여전히 사람의 손길을 피하기에 책방에 데려갈 수 없다.
책방에 구름이나 여름이가 있을 때 손님들이 종종 책방 고양이를 만져도 되냐 묻는 사람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그건 저에게 묻지 말고 고양이에게 직접 물어보세요’라고 답했다. 고양이가 도망간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할 테니 다가갈 시간을 가지시고, 고양이가 호기심을 보인다면 조심스럽게 다가가도 되는 거라고 말했다.
나는 고양이를 훈육하지 않는다. 잘못된 행동을 하면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지만, 훈육을 하는 것보다 서로를 이해하면서 해결될 것으로 믿는다. 그래서 고양이는 제멋대로 행동한다. 자기가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계속해서 알려주며 나를 가르친다. 나는 그걸 배워 손님들에게 고양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전한다. 그래서 고양이를 만져도 되는 것은 내 허락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고양이가 원하냐 마냐가 더 중요한 문제다.
2003년 생으로 오픈 때부터 2021년 별이 되기 몇 개월 전까지 고양이 ‘구름’이는 책방의 업무를 돕는 아르바이트생으로의 역할을 좋아했지만, 2020년 태어나 고작 8개월 책방을 오간 고양이 ‘여름’이는 책방의 주인이 되는 것을 원했다. 구름이는 조용하게 책방에서 머물렀지만, 여름이는 끊임없이 무언갈 요구했다. 놀아 달라던지, 배가 고프다던지, 물을 마시게 해 달라던지…, 심지어 화장실에 갈 때도 자기를 지켜봐 주길 원했다. 그리고 먹을 것으로 여름이를 유혹할 수는 없었지만, 여름이와 놀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무언가를 꼭 바쳐야만 했다. 가령 머리끈이라던지 마스크라던지, 심지어 가방까지도 내놓으라고 했다.
불친절한 주인이 운영하는 곳을 좋아한다면
이곳이 적당하다.
지금은 책방에 고양이가 거의 오지 않는다. 코로나 직후에 사람들의 외출이 줄기도 했고, 또 우리 고양이들도 책방 출입을 하지 않다 보니 더 그렇다. 그래서인지 동네 고양이에 시선이 갔다. 배가 고파 비실거리는 책방 부근을 어슬렁거리는 고양이들을 위해 길고양이 밥그릇을 만들었다. 누구든 오가며 밥을 먹으라고. 하나 둘 셋… 오가며 밥을 먹는 고양이의 숫자는 대략 3~4 아이가 된다. 어떤 날은 잔뜩 사료를 채워놔도 모자랐고, 어떤 날은 사료를 거의 먹지 않은 날도 있었다. 그런데도 매일 사료를 채운다. 언제라도 와서 먹고 가라고.
책방 안에 고양이가 자유롭게 돌아다니지 않는다고 고양이가 없는 책방일까. 책방 밖 골목이라도 고양이가 자유롭게 돌아다닌다면 그건 고양이가 머무는 책방이 아닐까.
이제는 쉬는 날에 택배가 아니라도 책방에 출근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고양이 집사가 되는 건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고양이와 함께 산다고 모두가 집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집사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고양이를 관찰하고, 고양이에게 필요한 것을 찾고, 고양이가 싫어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파악하고, 충분한 시간을 가지며 내 고양이와 친해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책방도 마찬가지다. 책방도 공간을 꾸리는 것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밖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6.5평의 작은 공간을 끊임없이 관찰하며 직접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