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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선 Oct 13. 2021

에어컨과 히터는 필요 없어요

고양이만 태울 건데 트위지면 충분하지 #04

자동차를 탈 때 너무 당연하게 있는 것 같은 것들이 옵션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까. 렌터카를 타도, 자동차를 사도, 차에 "에어컨이 없는 차예요.", "히터도 없는 차예요."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을까.


추위를 너무 타는 나에게 차에서 히터는 필수였고, 더위를 많이 타지 않아도 습도가 높은 여름엔 에어컨도 필수였다. 에어컨도 없고 히터도 없다면 과연 운전을 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에어컨과 히터가 없는 차는 상상할 수 없었다.


20대였던 2001년부터 2006년까지 파리에서 거주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프랑스의 대부분의 자가용이나 자동차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프랑스의 여름은 슬쩍 지나가는 경우가 많고 덥더라도 그늘에만 있으면 선선하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차를 살 때 굳이 에어컨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역시 프랑스니까 에어컨이 없어도 괜찮은 것이지 한국이었으면 에어컨 없는 차를 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에어컨도 히터도 없는 트위지를 탄다.

옵션으로 선택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선택할 옵션 조차 없어 장착이 아예 불가능한 차가 트위지다.


사람들이 "이 차를 타면 불편하지 않아요?"라고 물으면, 더운 여름엔 에어컨이 없어서 덥고, 추운 겨울엔 히터가 없어 춥다는 것이 불편하긴 하다고 답했다. 그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에어컨과 히터가 없다는 사실에 경악을 한다. 그것도 그럴 것이 21세기에 에어컨과 히터가 없는 차가 과연 있을까. 모든 차들은 출고 당시 옵션을 선택할 때 에어컨을 뺄 수 있긴 하지만 굳이 에어컨을 선택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거다.


그러나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이 없는 상황에서 2년을 무던히 버티면, 없는 것이 어느덧 당연한 것처럼 느껴진다. 더워서 땀을 흘리며 운전을 하고, 손이 시려서 장갑을 껴고 운전을 하며, 한국의 지독한 더위와 추위를 고스란히 느끼며 사는 삶, 익숙해지면 덥고 추운 것 즈음이야 일상이 된다. 예전에는 자동차를 탈 때 당연하게 틀었던 에어컨이나 히터가 굳이 필요하지 않아 진다. 


물론 30도가 넘는 한여름 한낮에 잔뜩 달궈진 차에 올라타는 순간부터 땀이 줄줄 흐를 때 차를 타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닌데, 트위지를 타고 평소에는 5분, 10분, 길게 20분 정도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참을만하다. 추운 겨울도 마찬가지다. 멀리 갈 일이 거의 없어서 그냥 조금만 참으면 금세 목적지에 다다른다. 


어느새 나는 "에어컨과 히터가 없어서 불편하지 않아요?"라는 물음에 "에어컨과 히터가 있는 차를 타면 너무 신기하더라고요."라고 답하고 있었다. 불편한 것이 당연해지니 편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불편한 것조차 모르는 상황 속에 달리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조금만 참으면 되는 것들을 우리는 참지 않으며 급하게 빨리빨리만 외치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안락한 호텔을 놔두고 자연 속에 텐트를 치고 힐링이라고 외치는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너무 더웠던 날, 한 시간을 운전해야 할 때, 얼음 몇 조각이 무슨 소용이냐 생각하면서도 얼음을 들고 탔던 나. 땀 한번 뻘뻘 쏟으면 개운하긴 하더라. 다만 꼬질꼬질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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