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고양이의 하루

세 번째 이야기

by 김지선
매일 같은 시간이 반복되는 것 같지만, 매일 다른 일상들이 펼쳐지는 하루



어린 시절 나의 고양이는 호기심이 넘쳐 좁은 집 안에서도 참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냈지만, 어느덧 세월이 13년이나 흐르면서 서로 눈만 마주쳐도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어느 시간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게 될지 너무도 뻔한 그런 시간들이 되어버렸다.


너무도 익숙해진, 너무도 평범해져 버린, 앞으로 달라지기 바라지 않는 그런...

나와 고양이의 하루, 우리 늙은 고양이의 하루를 소개합니다.




아침 9시 : 집사 깨우기


그녀의 하루는 언제부터 시작되는 건지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단지 내가 아는 건, 내 하루는 고양이와 함께 시작된다는 거지. 평일은 9시, 주말은 10시에 맞춰진 내 알람보다 더 빨리 하루가 시작된다는 거지.



오늘도 여느 때와 같이 묵직한 무게감에 눈을 떠 보니 내 배를 소파 삼아 쉬고 있는 나의 늙은 고양이가 보인다. 딱히 뭘 하는 거 아니고 그냥 이렇게 내 배 위에 가만히 앉아 멀뚱멀뚱..


내가 일어나길 기다리고 있는 건가...



쓰담쓰담해주면 골골 송을 불러주는 나의 고양이!


나는 눈을 뜨는 순간 네가 보이지 않으면, 널 찾게 되는데, 너 역시도 잠에서 깨면 내가 궁금할까?

너의 하루는 언제부터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너 역시 나와 같은 시간의 하루를 보내고 있었으면 좋겠다!


다시 한번, 냥 모닝!


슬슬 침대에서 나와 거실로 나가니 순식간에 나보다 먼저 거실로 가서 기다리고 있던, 나의 고양이가 ‘냥냥’ 울며 나를 부른다.


(뚜름냥은 말을 엄청 많이 하는 수다 고양이다. 집사를 부를 때, 집사에게 오고 있을 때, 배가 고플 때, 물이 마시고 싶을 때, 놀고 싶을 때... 말을 참 많이 한다. 아플 때 빼고)



아침에 날 깨우고 날 부르는 건 이유가 뻔하다. 배가 고프거나 목이 마르거나.

고양이 방에 가보니, 밥은 아직 남아 있는데, 역시 물그릇이 비어 있다.





오전 9시 30분 : 집사에게 밥과 물 얻어먹기


목마른 고양이는, 날 깨운 후, 내가 침대에서 나오길 기다렸다가 쏜살같이 물과 밥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고, 나에게 물이 없다는 사실을 알린 후, 다시 쏜살같이 화장실로 향한다.



다른 고양이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뚜름이는 세면대에서 흐르는 물을 좋아한다. 막상 틀어 놓으면 잘 마시지 않고 집사가 먹여주는 걸 좋아한다.


참 손이 많이 가는 고양이지.





오전 10시 : 어슬렁거리고 관찰하고 스크래치 하고 그루밍하기


부지런하게 고양이 화장실 청소와 밥과 물을 채워주고, 난 이제야 출근 준비를 시작한다. 집사가 바쁜 시간 동안 어슬렁어슬렁, 또 시킬 일 없을까 그렇게 집사 주변을 탐색하는 고양이의 여유로운 시간. 간혹 밤새 바닥에 실례를 해두었거나 너무 늦잠을 자서 아침에 시간이 부족해 바쁘게 출근 준비를 해야 할 때는 이러한 어슬렁 거리는 고양이가 왠지 얄밉기도 하다.



출근 준비하며 화장을 하거나 머리를 말리거나 옷을 입는 동안 언제나 그렇듯 고양이는 내가 아주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지켜보고 있다. 마치 어서 나가서 사료값 벌어와 하는 표정으로 말이지.


그래.. 돈 많이 벌어올게.





오전 12시 : 집사의 출근


나는 매일 11시~1시 사이에 출근을 하는데, (프리랜서다 보니 그냥 집 근처 개인 작업실에 가는 것이 출근) 출근에서 퇴근하는 시간까지 대부분 고양이는 잠을 자는 것 같다.


잠을 자겠지...?






오후 10시 : 집사의 퇴근


사실 오후 10시보단 더 늦은 시간에 퇴근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일찍 들어오면 고양이는 깊은 수면을 취하느라 집사 왔는지도 신경 안 써주고, 늦게 들어오면 배가 고파서라도 집사 왜 이렇게 늦었냐고 잔소리가 심해진다.


어린 시절에는 혼나지 않으려고 집에 일찍 일찍 들어오는 버릇이 생겼고, 어느새 오랜 시간 함께 하면서 이런 잔소리가 익숙해 혼나고 싶어 더 늦게 들어올 때도 있었다. 나도 참 고양이 같은 성격인 것 같다.



오늘 뭐하고 하루를 보낸 걸까? 매일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이 흐르는 것 같은데, 이 공간 속에서 넌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이야기를 만들며 살고 있는 걸까?


매일 나는 집에 들어오면서 오늘은 어땠어?라고 말을 걸어본다. 그러면 어느새 달려와서 냥냥 거리면서 애교를 부리는 나의 고양이.





밤 1시 : 집사의 취침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며, 잠을 자기 위해 침대에 누우면 어느새 달려와 내 품에 안겨 아기처럼 잠을 청하는 우리 고양이. 가끔 배 위에 올라가서 멍하게 날 바라보고 있기도 하고, 가끔은 내 팔과 다리를 잡고 있거나 엉덩이를 내 얼굴에 들이 밀고 있을 때면, 무얼 바라는 걸까 잠시 고민을 하게 하기도 하는데, 늘 그렇듯 그녀는 내가 침대에 누워 있으면 내 위나 옆이나 내 몸을 침대 삼아 잠을 청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뿐일 거다.


나의 하루는 고양이와 함께 끝이 나는데, 너의 하루 역시 나와 함께 끝이 날까?


요즘 유난히도 잠자는 고양이의 숨소리가 거칠게 느껴진다. 병원에서 아프다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코 고는 소리라고 생각해서 귀엽다고 생각했는데, 병원에서 숨 쉬는 거 거칠지 않냐고 질문을 받은 이후로는 코 고는 소리가 아니라 혹시 숨쉬기가 힘들어서 거칠게 숨을 쉬며 힘겹게 잠을 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되어 안쓰럽게 느껴진다. 어쩐지 어릴 때는 내 곁에서 잠을 자려고 하지 않다가 나이가 많아지면서 부쩍 내 품을 찾고 있는 고양이를 보며, 그냥 누군가의 보호를 받고 싶은 걸까 매일 고양이를 안고 잠이 들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나와 하루에서 조금만 더 고양이를 위한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다짐을 하게 된다.

더 많이 놀아주고, 더 많이 안아주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눠야겠다.





아프지 마.





장혜진 - 내게로

너무 서두르지마 견디기 힘이 들때면
애써 다가오려 하지말고 오히려 더 천천히
그래 그렇게 다가와 내가 여기에서 기다릴게

숨이 찰땐 걸어오렴 힘이들때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우린 아주 먼 길을 가야만해
서두르지마

함께 걸어가는 것 그것이 내겐 소중해
조금 늦어져도 상관 없어
내가 지쳐 있을때 니가 기다려준 것처럼
내가 여기있어 힘을 내봐

숨이 찰땐 걸어오렴 힘이 들때 그랬던 것 처럼
앞으로도 우린 아주 먼 길을 가야만해
서두르지 마

요즘 매일 듣는 장혜진의 내게로 노래. 왠지 이 노래 가사가 우리의 이야기인 것 같아서 꽤 많은 공감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늙은 나의 고양이에게' 연재를 사랑해주신 분들 너무 감사드리며! 이 노래와 함께 오늘 밤 옆에 있는 반려동물과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랄게요!


곧 네 번째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