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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선 Aug 18. 2019

책방일기 #35
책이 있고, 글이 있고, 이야기가 있고

난 오랫동안 여행작가로 활동하며 여러 책을 펼쳐 낸 작가지만, 책 읽는 것을 즐기진 않는다. 책을 잘 읽지 않는데, 책방이라는 곳은 나에게 어떤 공간이 될까 두렵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여행사에 근무하는 사람들 역시 여행을 자주 다니진 않아도 누구보다 객관적인 눈으로 여행을 소개하고 설계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나 역시 많은 책을 읽진 않았어도 좋은 책을 선택할 수 있다면 그게 책방의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다음엔 작가가 이 공간에 많이 머무를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나의 첫 책인 <인조이 파리>를 집필할 때, 홍대의 한 카페를 아지트 삼아 일 년 가까이 거의 출근하듯 다니며 글을 썼던 때를 생각하며, 누군가도 이 공간에 자주 머물며 자신의 글을 완성하면 좋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이 동네는 너무 한적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도 예전에 홍대가 아니라 내 집 앞에 카페를 아지트 삼았다면 굳이 버스를 타고 다니며 글을 쓰지 않아도 되었을 거 같았다. 이 동네에 가까운 곳에도 분명 많은 작가들이 살고 있을 거라 그렇게 안심해 본다.


이제 마지막으로 고민한다. 책이 있고, 글이 있지만, 책과 글만으로 살아 숨 쉬는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이야기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그냥 책이 있고,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사람들이 절대 이곳을 자주 찾지 않을 거다.


그러니까...

책만 있으면 안 되고, 공간만 있으면 안 되는 건데, 6.5평의 이 작은 공간에 어떤 이야기를 불어넣을까 끊임없이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이야기는 이곳에 머무는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 나갈 수도 있는 거니까, 굳이 내가 나서서 이곳에서 무슨 생각을 해야 돼요. 하는 것이 옳은 것은 아닌 것 같다. 다만, 같은 취향의 사람들이 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꾸준하게 책을 소개하고, 공간을 소개하고, 공간을 찾을 핑계를 만들어 주기만 하면 되는 걸지도 모른다.



거의 일 년.

11월이면 1주년이 되는 때인데,

1주년의 이야기 동안 365개의 일기장이 나오길 바랬지만, 이제 35개의 일기를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을 곰곰이 곱씹으며, 열정만 앞서 가지 말자고, 하나씩 차근히 만들어 보자고 다짐해본다.


책이 있고, 글이 있고, 이야기가 있는 이 곳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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