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지구에서 한아뿐>, 장세랑

하루에 한 권!(21일 프로젝트)

by 차티 Chati

2019.09.07


부모님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왜 그러고 사니"였다.

넌, 왜 그러고 사니? 남들 다 편한 직장 다닐 때, 넌 돈 벌 궁리도 안 하고, 왜 그러고 사니?

사범대를 나와서 선생이나 했으면, 좋은 데 시집가서 편안하게 살 텐데, 너도 힘들지 않니?


정말 지겹도록 들었던 말이다.

그렇게 살아서 힘들기도 했고, 외롭기도 했지만,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장세랑 작가의 <지구에서 한아뿐>에서 인상 깊었던 캐릭터는 우주 대스타가 되기 위해 우주로 떠난 가수 아폴로의 열렬한 팬 주영이다.

"왜 그러고 사니? 주영이 아폴로를 발견하고 나서 가장 자주 들은 말이었다. 그 말을 정말이지 다채로운 톤으로 들어왔다. 영하 40도의 무시, 영상 23도의 염려, 70도의 흐느낌, 112도의 분노로.
사람들은 왜 너 자신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느냐고 묻는다. 끝내는 아무것도 남지 않고,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건전한 절재 명제, ‘누구나 하나의 세계를 이룰 수 있다’는 역사상 가장 오래 되풀이된 거짓말 중 하나일 거라고 주영은 생각했다. 세계를 만들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탁월하고 독창적인 사람들이 만든 세계에 기생할 수밖에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똑같이 기여하는 것이 아니다. 거인이 휘저어 만든 큰 흐름에 멍한 얼굴로 휩슬리다가 길지 않은 수명을 다 보내는 게 대개의 인생이란 걸 주영은 어째선지 아주 어린 나이에 깨달았다. 끊임없이 공자와 소크라테스의 세계에, 예수와 부처의 세계에,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의 세계에, 테슬라와 에디슨의 세계에, 애덤 스미스와 마르크스의 세계에, 비틀스와 퀸의 세계에,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의 세계에 포함되고 포함되고 또 포함되어 처절히 벤다이어그램의 중심이 되어가면서 말이다.
어차피 다른 이의 세계에 무력하게 휩쓸리고 포함당하며 살아가야 한다면, 차라리 아폴로의 그 다시없이 아름다운 세계에 뛰어들어 살겠다. 그 세계만이 의지로 선택한 유일한 세계가 되도록 하겠다....... 주영의 선택은,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아무 고민 없는 아둔한 열병 같은 것이 아니었다. 차라리 명확한 목표 의식의 결과였다. (36~37)

주영의 삶은 자기 삶이 없는 아둔한 선택 같지만, 그녀의 명확한 목표 의식은 오히려 주체적인 판단과 선택의 결과이다. 우리 모두 세계를 창조할 수 없다. 우리 모두 인기인이 되거나 성공한 삶을 살 수 없다. 하지만 우리의 소우주, 우리가 아름답다 여기는 소우주 속에서 우리는 우리 각자의 역할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왜 그러고 사니?"라고 말할 자격은 그 누구도 없다. 누군가의 존재를 재단하고, 뭉개버리는 질문 아닌 질문, 답이 정해진 폭력. 당신의 삶도 옳겠지만, 옳고 그름과 잘살고 못살고의 경계는 그리 명확하지도 쉽게 단정 지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주영의 가치관은 이 소설을 관통하는 모든 인물들 속에 놓여 있다.

주인공 한아는 버려진 물건들, 오래된 물건들로 가득한 수선 가게 '환생'에서 일한다. 그곳에서 버려진 물건을 수선한다. 패스트패션의 문제를 해결하고,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그녀가 선택한 것은 재사용과 저탄소 생활. 탄소 발자국을 높이는 여행도 좋아하지 않는다. 한아를 사랑하는 외계인의 말을 빌리자면,

"넌 같은 자리에 있는 걸 지키고 싶어 하는 거잖아. 사람들이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들을. 난 너처럼 저탄소 생활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

"인간이 인간과 인간 아닌 모든 것들을 끊임없이 죽이고 또 죽이는 이 끔찍한 행성에서, 어떻게 전체의 특성을 닮지 않는 걸까. 너는 우주를 전혀 모르는데, 어떻게 우주를 넘어서는 걸까."


이들이 서로 연결될 수 있었던 것은 자연에 대한 공감. 생명에 대한 존중. 차이에 대한 인정이다. 뻥 차고 싶을 만큼 자기 생각만 하는 이기적인 한국 남자들과의 연애를 떠올린다면. 우주인이 오히려 훨씬 더 인간적이고 따뜻하다. 물론, 그 우주인이 내 세계를 망원경으로 엿보고 있다는 상상만 해도 아찔하지만... 이들의 사랑 이야기는 사랑을 넘어선 신뢰와 이해, 기다림과 받아들임, 따뜻함, 서로의 차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누구나 그렇고, 결국 그렇다"는 모호한 상식과 폭력적인 '누구나 그러함'의 세계를 가뿐히 뛰어넘어 자신만의 리듬 속에서 거대한 우주, 거대한 질서의 폭력에서 벗어난 그들만의 아름다운 소우주를 보여준다.


주영의 말처럼, 누구나 세계를 만들 수 없고 그 세계에 기생해서 살 수밖에 없지만, 그 기생의 삶 속에서도 아름다운 빛을 내는 각자의 소우주가 있다. 그리고, 한아가 한정된 자원을 아끼고 그것을 미래 세대에게 양보하는 삶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처럼 우리 모두 각자 자신의 소우주를 밝힐 사랑과 따뜻한 마음 하나하나 그 빛이 모인다면 지구와 우주도 덜 광막하고 황량한 곳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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