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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작 Jan 02. 2019

기본에 대하여-콩나물국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음식에 대한 고찰 10


 “뭐 먹고 싶어?”


 공항으로 날 데리러 온 동생에게 물었다. 동생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한국음식.”


 동생이 호주로 어학연수를 떠난 지 꼭 6개월이 되던 날이었다. 난 관광비자로 호주에 들어와 한 달 동안 동생과 여행을 다니기로 했다. 첫 해외여행이라 설레기도 했지만 마냥 좋았던 건 아니다.


 당시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면서 해외에 안 다녀온 학생들이 없을 정도로 배낭여행과 어학연수가 붐이었다. 돈이 없는 학생들을 위해선 일을 하며 영어를 배울 수 있는 워킹홀리데이라는 프로그램도 생겼었다. 그 물결과 함께 나 역시 동생과 함께 어학연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신체검사에서 결핵균이 나왔다며 나만 보류가 되었다. 황당했다. 겨울에 감기를 달고 살고, 소화가 안 돼 가스명수를 물처럼 마시기는 했지만 결핵균이 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 소리였다. 어머니에게 따져 물었더니 어릴 적에 늑막염을 앓았는데 그것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가뜩이나 자존감 낮고, 앞날이 깜깜하기만 하던 4학년인 나에겐 청천벽력과 같은 말이었다. 나에겐 좋은 일 따윈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고. 기적도 희망도 없을 것 같았다. 누군가의 사주로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불행을 안고 태어난 아이처럼 절망에 빠졌었다. 


 하여 캐나다로 같이 가자는 동생의 말 따위는 들리지 않았다. 더욱이 어려운 형편에서 두 사람의 학비를 준비하실 어머니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져 그냥 포기했다. 좋은 마음으로 포기했지만 하고 싶은 걸 하지 못 한 난 한동안 방황했다. 그런 날 위해 어머니가 큰 결단을 내렸다. 여행이라도 다녀오라고 하신 것. 어머니 마음이 바뀌기 전에 비행기 표부터 끊고 여행을 준비했다. 그리고 호주에 도착했다.


 “진작 말을 하지. 엄마가 김치 싸준다는 것도 마다하고 왔는데.”


 “하, 먹고 싶다. 엄마 김치.”


 동생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한국 가면 질리도록 먹을 텐데. 뭐 또 한국음식이야. 앞장서. 짐부터 풀자.”


 호주에 와서 첫 끼를 한국음식으로 먹을 수 없었던 난 동생을 보채 동생이 머물고 있는 집으로 향했다. 한국에서는 꿈도 꾸지 못 하는 정원에, 화장실 하나가 안방만큼 넓은 이 층 집엔 동생 말고도 서너 명이 사용하고 있었다. 동생의 방에 짐을 푼 나는 부엌부터 찾았다. 동생이 한국음식을 먹고 싶다고 했던 말이 내내 걸렸기 때문이었다.


 “뭐야? 이게 전부야?”


 동생 몫의 냉장고엔 먹다 남은 식빵과 쨈이 전부였다. 동생이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살이 보기 좋게 올랐다고 생각했는데, 못 먹어서 부은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치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마트부터 가야겠다. 어디야? 마트?” 


 난 장바구니를 들고 앞장섰다. 동생이 쫓아 나왔다.


 “걸어서 못 가. 택시 불러야 해.”


 “택시를 불러야 한다고?”


 동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은 골목만 빠져나가도 굴러다는 게 택시였다. 그뿐인가. 골목 모퉁이만 돌면 편의점이 즐비했다. 그런데 이곳은 마트를 가기 위해 택시를 불러야 하고, 그 택시를 타고 마트에 갔다가, 다시 택시를 타고 들어와야 한다고 했다. 빠르게 또 생활하기 편하게 굴러가는 한국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렇다고 안 갈 수도 없고. 우리는 호출한 택시를 타고 마트로 향했다. 


 다행히 호주 마트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모양은 조금 달랐지만 한국 음식에 들어갈 주재료들이 있었다. 내가 김치를 담기 위해 배추 모양의 야채를 고르자 동생이 말렸다.


 “우리나라 배추랑 맛이 달라. 그거 못 먹어.”


 “그럼 양배추는 어때?”


 “양배추는 먹을 만 해.”


 난 카트에 양배추와 달걀을 담고, 동생은 샌드위치에 필요하다며 햄이랑 치즈를 담았다.


 “이걸로는 한국음식 만들기 힘들겠는데..”


 그러자 동생이 마트 한쪽으로 안내했다. 그곳엔 아시안 푸드 코너가 있었다. 주로 중국 음식을 진열한 곳이긴 했지만 한국식 단무지와 콩나물을 살 수 있었다.


 숙소로 돌아온 난 요리를 시작했다. 단무지에 고춧가루와 식초, 그리고 마늘을 넣어 무치고, 양배추로 김치를 만들고, 계란에 치즈를 넣어 계란치즈말이도 완성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추위에 약한 동생에게 따듯한 콩나물국을 끓여주었다. 비록 반찬이 세 가지이긴 했지만 제법 그럴듯했다. 


 “우와 맛있겠다.”


 한국음식을 먹는다는 생각에 들뜬 동생이 수저를 들며 말했다. 


 “언니가 피자 해 준 거 기억난다.”  


 “그걸 기억하고 있었어?”


 “그럼 얼마나 맛있었는데.”


 중학교 2학년 때였다. 가사시간에 피자 만들기를 배웠는데 그때 피자라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어찌나 맛있었는지. 혼자 먹은 게 아쉬워 집으로 돌아오기가 무섭게 가족들에게 만들어 주었다. 가사시간처럼 두꺼운 도우가 아니라 한국식 전병 모양의 얇은 도우이긴 했지만 제법 피자 맛이 났다.


 함께 먹던 할머니는 이게 뭔 맛이냐며 한 입 베어 물더니 시큰둥하셨고 동생은 피자를 부쳐내는 족족 먹어치웠었다. 피자 맛인지 뭔지도 모르면서도 맛있다며 잘도 먹었었다. 그 뒤로도 꽤 여러 번 피자를 만들어 먹었었는데 그걸 기억하다니. 동생이 조금 기특했다.


 “국 식겠다. 어서 먹어.”


 난 콩나물국을 동생에게 밀며 말했다. 동생이 콩나물국을 맛보다 오만상을 쓰며 물었다. 


 “국에 뭐 넣었어?”


 “소금 하고 마늘. 왜? 이상해?”


 “웅. 밍밍해.”


 “밍밍하다니 소금을 더 넣어야 하나?”


 나는 맛을 보았다. 그와 동시에 콩나물국을 뱉었다.


 앗! 퉤. 퉤. 퉤. 퉤.


 콩나물국은 설탕을 넣은 것처럼 달큼하고 밍밍한, 조금 이상한 맛이 났다. 이상했다. 어머니 말대로 소금하고 마늘만 넣었는데. 혹시나 싶어 소금을 더 넣어 맛을 보았다. 마찬가지였다.


 앗! 퉤. 퉤. 퉤. 퉤. 


 어머니는 콩나물국이 제일 쉽다고 했다. 그리고 어머니 말대로 소금과 마늘만 넣고 끓였는데 왜 이런 맛이 나오는지. 혹시나 싶어 소금 병을 들고 물었다.


 “이거 소금 아니야?”


 “그거 미원인데.”


 이런. 소금 대신 미원을 잔뜩 넣었던 것이다. 어째 맛이 밍밍하다고 했다. 


 “먼저 먹어 금방 끓여줄게.”


 콩나물국을 끓일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상황은 콩나물이 익을 때까지 뚜껑을 열어서는 안 된다. 중간에 뚜껑을 열게 되면 비린내가 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밥상에 앉아 있는 동생을 기다리게 할 수 없어 처음부터 뚜껑을 열고 끓였다. 당연히 미원 대신 소금을 넣고. 그런데 맛이 안 났다.


 “이상하네. 똑같아. 맛이 없어.”


 소금을 더 넣었지만 맛이 달라지지 않았다. 호주의 콩나물의 맛이 우리의 콩나물과 조금 다른가 싶었다. 왜냐하면 다른 음식들은 크게 나쁘지 않았기에. 


 그러나 그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간혹 해장을 위해 콩나물국을 끓일 때면 소금을 확인하고 넣었지만 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적당량을 넣었는데 어떤 때는 싱겁고, 어떤 때는 짰다. 도저히 기준을 잡을 수가 없었다. 미적분을 푸는 것보다 더 어렵게 느껴졌다. 그 사건 이후 내 식탁에선 콩나물국이 사라졌다. 대신 간을 맞추기 쉬운 된장국 위주로 국을 끓였었다.


 시간이 아주 많이 지나고 내가 당시 어머니 나이 즘이 되자 비로소 콩나물국에서 어머니 맛이 났다. 물론 지금은 소금이 아닌 새우젓으로 간을 맞추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요리란 된장과 같아서 오랜 시간 숙성되고 발효되어야 비로소 맛이 나는 모양이다. 




p.s

음식집에 가면 기본으로 나오는 콩나물국을 꼭 먹어본다. 신기하게도 콩나물국이 맛있는 집은 다른 음식도 맛이 있고, 콩나물국이 맛없는 집은 다른 음식도 맛이 없었다. 기본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경우였다. 이후 콩나물국은 음식 맛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time_continue=24&v=lniOAYKIdX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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