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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작 Jan 04. 2019

아줌마, 이거 상했어요!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음식에 대한 고찰 12

 요구르트를 처음 먹어 본 곳은 다방이었다. 약속다방. 맞다. 드라마 ‘젊음의 양지’에서 나왔던 그 약속다방. 물론 나 혼자 다방에 간 건 아니고 아버지가 데려가셨다. 당시 아버지는 여섯 살도 채 안 된 어린 나를 데리고 곧잘 다니셨는데 덕분에 다방이며, 당구장이며, 기원이며 안 다녀본 곳이 없었다. 


 아버지가 데려간 곳이 딱히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처음 접하는 곳이라 신기하긴 했다. 그중 가장 신기한 곳은 다방이었다. 뽀글이 파마머리에 요란하게 화장을 한 언니들이 목젖이 보이도록 크게 웃는 걸 보면 참 생경스러웠다. 그런 언니들과 아버지가 친한 게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아버지가 챙겨주던 요구르트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아버진 그런 날 어릴 적부터 어른스러워 어머니에게 시시콜콜 고자질하지 않아 데리고 다녔다고 했는데. 그보다는 아버지와 함께 다니면 늘 관심을 받고 칭찬 끝에 달콤한 것을 먹을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아버지를 따라다닌 게 아닌가 싶다. 


 어쨌건 다방 요구르트는 항아리 가운데를 꾹 눌러 놓은 모양으로 내 손가락 길이보다 짧아, 한 입에 털어 넣으면 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방 요구르트는 묘한 매력이 있었는데 예쁜 언니가 요구르트에 빨대를 꽂아 예쁜 접시에 받쳐 준다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난 그 순간이 좋았다. 뭔가 특별한 대접을 받는 느낌이었고, 내가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지금에서야 아빠도 특별한 대접을 받고 싶어 그런 곳을 다니셨던 게 아닐까 이해가 된다. 그리고 그 특별한 대접을 받고 싶어 아빠는 거금 1500원을 쓰셨다. 당시 한 달 생활비가 10000원이었으니 정말로 큰돈이었다. 이후 요구르트가 흔해지긴 했지만 엄마는 절대 하루에 하나 이상을 못 먹게 했다. 


 10년 후.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요구르트 먹던 꼬맹이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식당을 운영하던 어머니는 딸이 자신처럼 일하며 살까 두려워 유학을 보냈고, 나 역시 도망치듯 사북을 떠나왔다. 그래서일까? 난 학교생활도 하숙 생활도 적응하지 못해 이리저리 목적도 없이 방황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떠먹는 요구르트가 대세라고. 충격이었다. 마시는 요구르트를 떠먹다니. 도대체 어떻게? 항아리 가운데를 꾹 누른 병에 담긴 요구르트를 떠먹다니 도저히 상상이 안 되었다. 이미 먹어 본 친구들, 주로 강릉 토박이들은 정말 맛있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아직 먹어보지 못 한 사북 촌년은 그들 대화에 낄 수가 없었다. 


 하여 그날 저녁 난 가까운 구멍가게로 향했다. 퍽퍽해서 잘 안 열리는 문을 간신히 열고 들어가자 머리를 감지 않은 듯 떡진 라면머리의 아주머니가 안방에 앉아 고개만 빼꼼히 내밀었다. 난 자신 있게 말했다. 


 “떠먹는 요구르트 주세요!”


 마치 떠먹는 요구르트를 먹어 본 양. 그래서 엄청 좋아하게 된 양 허세를 떨었다. 그런 나의 기세에는 관심이 없는 듯 아주머니가 냉장고를 가리키며 말했다.


 “거기 냉장고에.”


 난 아주머니가 가리키는 냉장고 안을 살펴보았다. 밀키스, 색색이 등 각종 음료수가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을 뿐 떠먹는 요구르트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냉장고 어디요? 없는데요?”


 “왜 없어. 거기 문 앞에 바로 있잖아.” 


 아주머니는 여전히 냉장고 안을 가리켰다. 그러나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눈은 악세사리로 달고 사나?”


 몹시 귀찮은 듯 아주머니가 육중한 몸을 끌고 나왔다. 그리고는 냉장고 문을 열어 바로 앞에 놓인, 나도 수차례 보았으나 끝내 보지 못했던 동그란 모양의 용기를 꺼내며 말했다.


 “여기 있잖어. 꼬모.”


 “아, 여깄었네요.”


 난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며 떠먹는 요구르트를 받았다. 그리고 계산을 하고 나가려고 했다. 아주머니가 날 불러 세웠다.


 “여기! 수저 가져가야지!”


 아주머니가 하얀색 플라스틱 스푼을 챙겨주셨다. 


 “아, 깜빡했어요.”


 난 끝까지 허세를 떨며 구멍가게를 나왔다. 떠먹는 요구르트를 들고 하숙집으로 돌아오면서 난 포장지에 쓰인 활자들을 읽고 읽고 또 읽었다. 생딸기 5%, 원유 94% 등의 성분들뿐만 아니라 공장 주소까지. 녀석에 대해 잘 알면 더 맛있을 거 같았다. 그렇게 하숙집에 도착한 나는 룸메이트가 아직 오지 않은 걸 확인을 하고도 모자라 몰래 요구르트를 먹었다. 


 음...


 맛을 음미하기도 전에 나는 그만 요구르트를 뱉어버렸다.


 캭!!!!!!!!!!!


  뭐야 이거? 무슨 맛이 시큼털털해? 게다가 이 냄새는? 뭔가 큼큼한 썩은 내가 나잖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먹어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요구르트가 상한 것이었다. 처음 가게 안에 들어설 때부터 의심스러웠다. 떡진 아주머니의 머리와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은 매대. 당연히 오래된 것들을 파는 것이리라. 나는 구멍가게로 달려갔다. 그리고 소리쳤다.


 “아줌마! 이거 상했어요!”


 “뭔 소리야. 멀쩡하게 냉장고에 있던 게 왜 상해?”


 “아님 직접 먹어봐요! 상했다고요!”


 요구르트를 받은 아주머니가 새 수저를 꺼내더니 직접 맛을 보았다. 그러더니 꺅! 인상을 쓰셨다.


 “이상하다. 분명 어제 받은 건데...”


 고개를 갸웃거리던 아주머니는 이내 다른 요구르트를 주셨다.


 “이건 정말 괜찮은 거죠?”


 나는 몇 번이고 아주머니의 확인을 받았다. 아주머니는 정말 괜찮은 거라며 귀찮다는 듯 날 쫓아내고 소리 나게 문을 닫으셨다. 아주머니를 한 번 더 믿기로 한 나는 하숙집으로 돌아가 다시 요구르트 맛을 보았다.


 캭!!!!!!!!!!!


 뭐야! 아까랑 똑같은 맛이잖아! 이거 완전히 제대로 상했네! 


 아주머니에 대한 믿음이 깨지고 서서히 짜증이 몰려왔다. 나는 다시 구멍가게로 달려갔다. 때마침 아주머니가 가게 문을 닫고 있었다. 조금만 늦었으면 억울한 일이 생겼을 뻔했다. 다짜고짜 아주머니를 붙잡고 말했다.


“아줌마! 이것도 상했다고요!”


“이것도 상했다고? 그럴 일 없는데!”


“먹어 봐요!”


 나쁜 아줌마. 촌에서 왔다고 상한 걸 주고. 억울한 나는 멋대로 상상하기 시작했다. 아주머니는 내 요구에 떠먹는 요구르트를 다시 먹어보더니 아까와 똑같이 인상을 쓰셨다.


 캬! 


 “이상하네. 상할 리가 없는데.”


 그러더니 이내 다른 요구르트를 뜯어 맛을 보았다.


 “윽. 이게 뭐야. 무슨 맛이 이래. 다 상했나 보네. 미안해서 어쩔까.”


 아주머니가 돈을 돌려주었다. 그날 난 끝내 떠먹는 요구르트를 먹지 못 했다.


 며칠 후 친구가 꼬모라는 이름의 떠먹는 요구르트를 건넸다. 며칠 전 안 좋은 기억이 났지만 친구가 주는 거니까 내심 기대를 하고 먹었다. 헛. 그런데 이건 뭥미.


 맛이 똑같잖아!!! 


 난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거 상했는데?”


 “정말?”


 놀란 친구가 내 몫의 요구르트를 먹어보더니 핀잔을 주었다.


 “무슨 소리야. 맛만 있구먼.”


 “맛있다고? 이게 맛있어? 너 병원 가 봐야 하는 거 아니야? 어째 상한 걸 맛있다고 해?”


 “상한 거 아니야. 발효해서 약간 시큼한 맛이 나지만 원래 이 맛이야.”


 헐...... 


 상한 게 원래 맛이라니. 난 할 말을 잃었다. 그렇다면 아줌마도? 


 순간 냉장고에 있는 요구르트를 죄다 뜯어 맛을 보던 아주머니의 당황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아주머니는 떠먹는 요구르트를 팔면서 단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게 분명했다. 그날 일을 친구에게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한참을 웃었다.


 크크크. 



p.s

가끔 새로운 일에 도전을 할 때면 떠먹는 요구르트가 생각난다.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상해버렸다고 단정 짓지 않기를. 


https://www.youtube.com/watch?v=Oq1Dfi4ti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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