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괜찮아도 괜찮아

추억의 아보카도

by 홍작

“어떻게 체 게바라를 몰라?”

친구의 목소리엔 비아냥이 담겨 있었다. 지금 같았으면 “체 게바라가 누군데?”라고 물었을 텐데. 열등감이 높아 자존감 낮았던 난 체 게바라를 모르는 게 무슨 큰 창피를 당하는 거 같아 거짓말을 했다.

“알아! 체 게바라!”

그러나 그게 다였다. 친구는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체 게바라 이야기를 꺼냈지만 아는 게 없는 난 아무 말도 못 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체 게바라가 누군지 물었다면 친구와 더 많은 것을 나누고 공감할 수 있었을 텐데. 생각해 보면 관계를 망치는 것은 상대가 아닌 내 안의 콤플렉스다.

어쨌건 그 후 체 게바라는 화두처럼 내게 던져졌다. 난 체 게바라 평전을 읽고, 체 게바라의 청년 시기를 다룬 에세이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영어판으로 읽고,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보며 그를 알려고 노력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뭐 그렇게까지 열심히 공부했나 싶다. 전공자도 아니었는데.

그러나 2004년 당시 한국에선 체 게바라 붐이 일었다. 체 게바라 평전부터 시작해서 영화는 물론 포스터까지. 체 게바라는 시대의 아이콘이자 시대정신이 되었다. 베레모에 수염을 멋지게 기른 체게바라를 보면 예수가 혁명가로 환생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미남이었는데 그의 미모가 붐을 일으키는데 한 몫을 했다. 어쨌건 난 그가 진심으로 궁금했던 게 아니라 그저 트랜드를 따라가고 싶었던 마음이 컸었던 것 같다.

하여 친구가 쿠바에 가고 싶다고 했을 때, 나는 심드렁하게 쿠바에 가서 남미를 돌고 오면 되겠네,라고 말했지만 그때만 해도 가고 싶다는 마음이 없었다. 그러나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비행기를 타고 있었다. 그렇게 난 2004년 11월 남미로 떠났다.

쿠바에서 지낸 3주 동안은 친구와 함께 다녔다. 첫 해외여행이었던 친구를 배려하기 위함이 컸다. 그러다 보니 친구 위주로 코스를 짜게 되었고, 나를 위한 여행이 아닌 친구 따라 강남 구경하는 꼴이 되었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렇다고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법. 난 내 인생 처음으로 누군가가 아닌 나를 배려하기 위한 선택을 했다.

“칠레부터는 각자 보고 싶은 걸 보는 건 어떨까?”

친구는 잠시 망설이는 듯했다. 아마도 나의 모습이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언제나 친구의 선택을 존중해주고 따라주던 아이었으니까. 그러나 내 입장에서도 큰 결단이었다. 당시만 해도 남미 여행이 흔하지 않았고, 더욱이 여자 혼자 남미 여행을 하는 건 요르단 강을 건너는 것만큼 위험한 일이었다. 말은 그렇게 내뱉었지만 솔직히 겁이 났다. 더욱이 난 호신술은 배운 적도 없고, 영어도 못 하고, 스페인어는 더 못 했다.

하지만 내 마음 어딘가에서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거, 보고 싶은 거, 하루를 온전히 나를 위해 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친구도 그런 날 이해해 주었다. 아니 어쩌면 친구 역시 자신만의 시간을 온전히 갖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쿠바 여행 후 3주부터는 혼자 여행을 다녔다. 처음 2주 동안은 온전히 자유를 찾은 느낌이었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일어나, 내가 원하는 걸 먹고, 내가 원하는 만큼 걷고, 원하는 걸 보고, 원하는 걸 듣고. 마냥 행복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가 보고 싶었고, 친구와 떡볶이를 먹고 싶었고, 한국 티브를 보고 싶었고, 한국 음악이 듣고 싶었고, 한국이 무지 그리웠다. 무엇보다 한국말을 하고 싶었다. 정말이지 한국말로 날이 새도록 수다를 떨고 싶었고. 외로웠다.

빙하를 보러 칠레 최남단에 갔을 때가 외로움의 절정이었다. 날이 추워 배가 뜨지 않아 계획에도 없이 그곳에서 일주일이나 머무르게 되었다. 그곳은 백야가 한창이었는데. 저녁 9시에도 해가 머리 위에 떠 있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밤이 낮처럼 밝은 데 누구 하나 투정하지 않고 잠을 자러 가는 것도. 한 여름인데도 한국의 동장군이 무안할 정도로 몹시 추웠던 것도. 모두 신기했다.

솔직히 백야를 경험하기 전까지 백야에 대한 낭만이 있었다. 뭐랄까. 지평선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대지. 그 대지 위로 밤과 낮의 경계를 허무는 태양을 24시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황홀할 것 같았다.

그러나 실제로 경험한 백야는 지루하고(딱히 할 일이 없는 여행객에게 낮은 왜 그리 길던지), 피곤하고(날이 어둡기라도 하면 잠이라도 잘 텐데, 어렵게 잠이 들어도 몇 번이나 깨어 잠을 잔 것 같지도 않고), 춥고(여름이라고 했잖아! 무슨 여름이 이리 추워! ㅠ) 무엇보다 외로웠다(다시는 혼자 여행 떠나지 않으리). 집에 가고 싶었다.

그날도 홀로 잠 못 들고 거실에서 빈둥거리며 칠레 티브를 보고 있었는데 마침 외국 남자가 방에서 나왔다. 가볍게 눈인사를 나눈 그는 소파에 앉아 손에 든 검은 비닐봉지에서 뭔가를 꺼냈다. 검고 둥근 물건이었다. 과일도 아닌 것 같고, 야채도 아닌 것 같은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처음엔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뭔가 신중하고 정성을 다 하는 그의 태도 때문에 자꾸만 눈길이 갔다. 특히 남자가 검은색 껍질을 벗기고 연둣빛 나는 속살을 먹기 시작하자 먹고 싶어졌다. 단순히 먹고 싶다가 아니라 저걸 꼭 먹어야겠다는 의지로 바뀌었다.

다음날 눈을 뜨기가 무섭게 슈퍼마켓으로 달려갔다.

“검은색.. 검은색.. 과일도 아니고.. 야채라고 하기엔..”

슈퍼마켓을 다 돌았지만 검은색의 뭔가는 없었다. 그러자 더 먹고 싶었다. 그렇게 경건한 자세로 음식을 대하는 사람을 처음 봤다. 그리고 그건 그 사람의 성향이 아니라 그 음식이 갖고 있는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음식을 먹으면 이 지루한 백야도, 타향에서의 외로움도 잊혀질 것 같았다. 난 다시 슈퍼마켓을 돌았다. 그리고 슈퍼마켓 중앙에서 외국인이 먹던 검은색의 뭔가를 발견했다. 그것의 이름이 아보카도라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난 손에 잡히는 대로 봉투에 담았다.

숙소로 돌아오기가 무섭게 아보카도를 손질했다. 칼로 반을 잘라 씨앗을 중심으로 돌려 오픈하라고 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껍질이 단단해 칼이 들어가지 않았다. 어제 외국인 것은 굉장히 말깡말깡했는데. 게다가 초록색 속살을 보고 있자니 제대로 익지 않은 걸 산 것 같았다. 망했다. 청개구리도 울다갈 초록색이 맛이 있을 리가 없다. 하. 내 돈 주고 이 먼 타향까지 와서 뭔 고생인가 싶었다. 체 게바라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멀리 오지 않았을 텐데. 망할 체 게바라. 망할 아보카도. 망할 내 인생. 난 그 많던 아보카도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 까맣게 잊고 있었다.

며칠 후 날이 풀리자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난 빙하를 보고 왔다. 망할 빙하. 누가 빙하를 보고 싶다면 칠레에 가라 했는지. 그 사람을 찾게 된다면 목을 조르고 싶었다. 내가 배 타고 본 빙하는 우리 뒷산에 쌓인 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행 가이드마저 당황해 날이 따듯해서 빙하가 많이 녹았다며 횡설수설했다. 어서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짐을 싸는 나에게 외국인이 아보카도를 건넸다. 내가 버린 아보카도였다. 혹시 잊고 있었냐며 꼭 챙기라는 친절한 말까지 남기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뭘 보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거지? 설마 내 미모? 물론 그럴 리가 없다. 내 미모에 엄지손가락을 들었다면 아보카도를 냅다 던지고 사라지진 않았겠지. 그나저나 이 많은 아보카도는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난감했다. 버릴 수 없다면 먹어야지.

난 다시 시도했다. 칼로 반을 잘라 씨앗을 중심으로 돌렸더니 지난번 보다 쉽게 열렸다. 게다가 외국인의 그것처럼 말캉말캉했다. 그 사이 익은 것 같았다. 하지만 초록색은 절대 익숙해지지 않았다. 난 의심 반 의무 반으로 초록색 속살을 입에 넣었다. 그 순간 나의 의심은 환희로 바뀌었다. 입 안 가득 고소함이 퍼졌다. 마치 버터를 혀에 올려놓고 잣 백여 개를 한 번에 털어 먹은 것처럼 아찔하게 고소했다. 고소함은 곧 포만감으로 느껴졌고, 이내 몸이 뜨거워졌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괜찮아. 혼자여도.”

정말 괜찮아졌다. 이곳에 온 후 끊임없이 괴롭히던 추위도 사라지고. 참을 수 없던 외로움도, 가슴 시린 그리움도 가라앉았다. 그 망할 백야도 잊게 했다. 그가 왜 경건한 자세로 아보카도를 먹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아보카도는 열정이고 사랑이었다. 그 말 외에는 따로 표현할 게 없었다. 그제야 내가 왜 체 게베라를 쫓아 이곳에 왔는지 알 것 같았다.

“진정한 혁명은 사랑이라는 위대한 감정으로 이끄는 것이다.”라는 그의 말을 좇아, “진정한 혁명은 자신에 대한 혁명이다.”는 그의 말을 좇아 이곳에 왔다. 나를 혁명하기 위해, 나를 사랑하기 위해, 진정한 내 삶을 찾고 싶어서. 그의 발자취를 좇아 여행을 했고, 여행 끝에서 아보카도를 만났다. 아보카도는 내가 더 원한다면 여행을 더 해도 좋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그것도 좋다고 했다. 더 이상 날 부정하지 않고 긍정하게 하는 힘. 뭘 해도 좋은 상태. 아보카도는 그것이 사랑이고 열정이라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 여행이 끝나 집으로 돌아온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비로소 고단하지만 찬란한 내 삶이 시작되었다.




p.s

“안 괜찮아도 괜찮아.” “안 괜찮아도 괜찮아.” “안 괜찮아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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