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음식을 먹으면 예뻐집니다

추억의 순대

by 홍작

어린 시절 친구가 되는 기준은 간단했다. 내 생활 반경에 있는 사람들이 친구였다. 옆집에 살거나 앞집에 살거나 혹은 같은 라인에 사는 사람들이 친구가 되었다. 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앞에 앉거나 뒤에 앉거나 아니면 같은 동아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친구가 되었다. 그런데 이 친구는 아니었다. 이 친구의 첫 기억은 이름이었다. 얼굴보다 이름을 먼저 알게 되었다.

“해숙이가 전학 왔데.”

소식통이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해숙이라니? 무슨 해숙이?”

“문해숙이 몰라?”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대답대신 고개를 흔들자 소식통이 말했다.

“왜 있잖아. 얼굴 동그랗고, 눈 크고 이쁜애.”

“얼굴 동그랗고, 눈 크고 이쁜 애가 한 둘인가.”

“전학 온 애는 한명이지! 남자 애들 사이에선 이미 난리가 났다고.”

소식통이 조금 오버를 해도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남자 애들 이야기가 나올 정도의 미모라니 궁금했다. 해숙이가 전학 왔다는 반에 가서 기웃거려 보긴 했지만 예쁜 애를 보지 못 했다. 난 소식통의 오버라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해숙이라는 이름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몇 해가 지난 어느 날. 새 학년 새 반으로 등교한 첫 날이었다. 시골 여학교라 웬만한 아이들의 얼굴을 다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새 학기는 언제나 설렜다. 서먹하고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아는 얼굴도 있고 처음 보는 얼굴도 있었다. 그 중에 유독 눈에 띄는 친구가 있었는데 까맣게 잊고 있던 이름 세 글자가 떠올랐다.

문해숙.

소식통의 오버는 아니었다. 해숙이는 소식토으이 표현대로 얼굴 동그랗고 눈 크고 예뻤다. 그러나 그렇게 표현하기엔 50%로 부족했다. 동그랗게 솟은 이마에 쑥 들어간 크고 둥근 눈, 오똑한 콧날과 붉은 입술.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 본 사람은 없을 정도로 시선을 끄는 얼굴이었다. 여자인 내가 봐도 설레는데 남자들은 어떨까 싶었다. 단언컨대 해숙이는 내가 본 여자 중에 가장 예뻤다. 지금까지도.

너무 예쁜 여자를 보면 거리감이 생긴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해숙이와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과는 달리 다가가기도 쉽지 않고 말을 거는 것도 어색했다. 그 아인 이슬만 먹고 예쁜 것만 보고 예쁜 것만 듣는 줄 알았다. 적어도 나에게 해숙이는 동화 속 공주님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수업이 끝나고 해숙이와 단둘이 집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해숙이가 떡볶이를 먹자고 했고 배가 고팠던 나는 흔쾌히 응했다.

분식집에 들어가자 해숙인 익숙하게 가방을 내려놓고 예쁜 입으로 예쁘게 말했다.

“아줌마. 떡볶이 일인분 하고요. 순대도 주세요.”

세상에 저렇게 예쁜 애가 순대를 먹다니. 나는 너무 놀랐다.

“너 순대 먹을 줄 알아?”

“그럼 얼마나 맛있는데. 왜 너는 못 먹어?”

나는 순대를 못 먹었다. 해숙이를 만나기 전까진. 찜기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길고 검은 물체를 볼 때마다 혐오스러웠다. 차라리 뱀을 먹으면 먹었지 순대는 싫었다. 가뜩이나 집안에서 못난이라 놀림 받는데 못 생긴 걸 먹으면 왠지 못 생겨질 것 같았다.

“일단 한번 먹어봐. 먹어보면 달라질 거야.”

망설이는 나에게 해숙이가 말했다. 아름다움이 사람을 무지하게 만들고 맹목적으로 추종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예쁜 해숙이가 예쁜 입으로 말하는데 거절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예쁜 아이도 먹는 순대라면 못난이가 될 걱정은 없을 거 같았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해숙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순대를 집어 입에 넣었다. 순대가 얼마나 큰지 얼굴이 독오른 복어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래도 예쁜 아이는 예뻤다. 세상 참 불공평하다. 신은 예쁜 아이에게 음식도 가리지 않는 좋은 식성과 붙임성도 주셨고, 나에게는 까다로운 식성과 모든 것을 얼리는 날카로운 독설을 주셨다.

“정말 안 먹어?”

해숙이가 다시 한 번 보챘다. 한두 번 먹어 본 솜씨가 아니었다. 미모의 그녀를 따라하다 보면 나도 예뻐질까 싶어 순대 하나를 입에 넣었다. 첫 맛은 이상했다. 비릿하고 역한 피 맛이 강하게 났다. 괜히 먹었다 싶었다. 뱉으려고 하는데. 당면의 특유의 양념 맛이 고유의 돼지고기 맛과 어울리면서 풍만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비릿한 피맛이 달게 느껴질 정도였다. 한 음식에서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야! 천천히 먹어! 너 혼자 다 먹을 거야?”

해숙이가 타박을 할 정도로 무섭게 순대를 집어 먹었다. 그 후 순대에 중독이 된 나는 해숙이와 시장 통을 돌며 순대 순례를 다녔다.

“아줌마! 순대 주실 때 염통이랑 간 많이요!”

“귀대기도 많이 주세요!”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아무리 따라 해도 닮을 수 없다는 것. 순대를 많이 먹었지만 난 조금도 예뻐지지 않았다.


p.s

새로운 맛을 경험하는 건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곳을 여행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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