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 먹자 (1)

추억의 개고기

by 홍작


예나 지금이나 소고기는 비싸다. 어릴 적 우리 집은 일 년에 두 번, 그러니까 설날과 추석에 소고기를 먹었다. 그것도 소고기 몇 점 동동 띄운 소고깃국으로. 고기도 씹어 본 놈이 맛을 안다고 일 년에 두어 번 먹는 소고기 맛을 어찌 알겠는가. 기억 조차 없다. 하지만 ‘소고기 먹자’라는 말의 의미는 알았다. ‘소고기 먹자’라는 말은 평소와 다른 아주 특별한 날이 될 것이며, 세상에서 가장 값진 음식을 사주겠다는 의미였으며, 그 어떤 선물보다 더 큰 선물을 주겠다는 이야기였다.

난 지금까지 딱 두 번 기억에 남는 소고기 선물을 받은 적이 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첫 번째 소고기 선물을 주신 분은 아버지시다. 아버지께선 내가 기억도 못 하는 어린 시절부터 나를 데리고 어디든 다니셨다고 했다. 어린 아이를 위한 시설이었으면 좋았겠지만 그 시절 광산촌에 무엇이 있었겠나. 아버지가 즐겨 다니는 다방이나 기원, 당구장 등을 놀이터 삼아 지냈을 것이다. 아마도 젓을 떼지 못 한 어린 동생을 피해 피난살이를 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아버지는 무슨 애가 애늙은이처럼 가만 앉아 있어서 데리고 다니는 게 재미있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어머니에게 그곳의 일을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지 않아 믿음직스러웠다고.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뭔가 어린아이들이 보고 들으면 안 되는 것을 본 것도 같은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초등학교를 입학하기 전이었으니 아마도 다섯여섯 살 즘이었다. 아버지께서 내 귀에 “소고기 먹으러 가자”라고 속삭이더니 나만 데리고 집을 나섰다. 동생이랑 엄마 얼굴이 떠올랐지만 선뜻 같이 가자고 할 수 없었다. 같이 가자고 말하는 순간 나마저도 갈 수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난 묵묵히 아버지가 이끄는 대로 따랐다.

날이 무척 더웠던 기억이 난다. 원피스 아래로 뜨거운 바람이 불어왔던 기억도. 아버지의 큰 보폭을 쫓아가느라 난 많이 지쳐 있었다. 한 발자국도 더 뗄 수 없을 거 같았다. 그때 고한 시장 입구가 보였다.

“아버지. 아이스크림.”

아버지와 다니면 좋은 점 하나는 내가 원하는 건 늘 사준다는 거다. 언제나 “안 돼”라고 말하는 엄마와 유일하게 다른 점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했다.

“아이스크림보다 더 맛있는 소고기야. 입에서 사르륵 녹는다니까.”

아버지는 군침을 다시며 내 손을 끌었다. 아이스크림이 너무 먹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사르륵 녹는다는 말에 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아버지는 고한 시장 옆 좁은 다리를 건너 간판도 없는 식당으로 날 데려갔다.

식당 안은 좁았고, 더러웠고, 무엇보다 이상한 노린내가 났다. 그리고 남자 어른들만 앉아 땀을 흘리며 열심히 뭔가를 먹고 있었다.

“봐. 맛있어 보이지?”

“아니. 전혀 맛있어 보이지 않아.”라고 난 말하지 못했다. 아니라고 말했다간 아이스크림보다 더 맛있는 입에서 사르륵 녹는 소고기를 먹지 못 할까 봐.

“여기 탕 두 개! 수육 하나!”

아버지는 내 의견 따위는 묻지 않으셨다. 하긴 묻는다고 대답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하지만 뭔가 오지 말아야 할 곳에 온 기분은 확실하게 기억난다. 아버지는 다른 테이블에 앉은 아저씨와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으셨다. 난 그만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는 사이 수육과 탕이 나왔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먹어봐 소고기야.”

뭔가 설명할 수 없는 거부감이 들었지만 아버지의 말을 거역할 수도 없었다. 거역하면 다음도 없으니까. 난 기약 없는 그 다음을 위해 말없이 수육을 먹었다.

“어때 맛있지?”

아버지는 내심 기대하며 물으셨다.

“음.. 쫀득쫀득한 식감에 고기는 맛있어. 그런데 무슨 냄새가 나.”
솔직히 사르륵 녹는 맛은 아니었다. 게다가 노린내가 났다. 조금은 익숙하면서도 역한 노린내.

“그게 소고기 맛이야. 여기 들깻가루 넣어서 먹으면 돼.”

아버지가 탕에 들깨가루를 엄청 넣어주었다. 소고기 탕에 들깨가루라니. 단 한 번도 못 본 조합이었다. 엄마가 있었다면 분명 아까운 들깨가루를 퍼붓는다고 한마디 하셨을 거다.

“어여 먹어. 이거 돈 주고도 못 먹어.”

아버지와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던 아저씨가 부추겼다. 돈 주고도 못 먹는 소고기라니. 그제야 나만 불러낸 아버지 마음을 알 것 같아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고 녀석 참 잘 먹네.”

아저씨의 말에 아버지가 껄껄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아저씨 칭찬에 뭔가 뿌듯했다.

그렇게 음식을 다 먹은 후 아버지와 난 식당을 나섰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무척 더웠는데 바람이 시원했다. 힘이 불끈불끈 솟는 듯했다. 난 아버지 손을 잡고 앞서 걸었다. 얼마쯤 걸었을까. 아버지가 불쑥 물으셨다.

“너 그게 무슨 고기인 줄 아니?”

“소고기라며”

내가 대답했다. 그러자 아버지가 큰소리로 웃으셨다. 순간 뒷목이 쭈뼛하고 서더니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설마. 설마. 나는 아버지에게 되물었다.

“소고기 아니야?”

“어. 고기야.”

아버지는 대충 얼버무렸다. 뭔가 숨기는 게 분명했다. 난 재차 물었다.

“고기라니. 소고기라며. 소고기 아니었어?”

“웅. 개고기야.”

개. 고. 기. 라니.

말도 안 돼.

개고기라니!!

순간 어릴 적 키웠던 내 키 보다 컸던 셰퍼드 얼굴이 떠올랐다. 백구 개순이 얼굴도. 내 주먹보다 작은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던 개순이. 개순이가 얼어 죽었을 때 얼마나 울었던가. 어미 잃은 개순이 새끼들이 하나둘씩 떠나갈 땐 또 어떠했나.

우웩!!!

나는 먹은 걸 다 토해냈다.

우웩!!!

토해내고 또 토해냈다. 그럴 때마다 개순이 새끼들이 튀어나오는 것만 같았다. 아버지가 토하는 날 타박했다.

“얌마. 그 비싼 걸 왜 토해!”

비싸든 말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아버지 때문에 개고기를 먹었는데. 내가 우리 개순이를 얼마나 예뻐했는데.

“아버지 미워!”

난 땅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개고기를 먹인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게다가 소고기라고 속이다니. 엄마 말은 믿지 않아도 아버지 말은 철썩 같이 믿었는데.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 뒤 아버지가 소고기 먹자고 하면 난 절대 따라나서지 않았다.


p.s

사람은 음식의 맛으로만 먹는 게 아니다. 함께 했던 추억 때문에 먹기도 하고. 함께 했던 기억 때문에 못 먹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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