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 먹을래? (2)

추억의 돼지부랄

by 홍작

아버지께서 사주신 소고기, 더 정확히 말하면 개고기를 먹고 토한 이후 소고기는 입에도 대지 않았다. 그날의 트라우마 탓인지 이상하게도 소고기를 먹으면 자꾸만 체했다. 소고기는 나와 맞지 않았다.

그 사이 우리는 고한에서 사북으로 이사를 했고 작은 구멍가게를 하던 엄마는 업종을 바꾸어 갈빗집을 운영했다. 엄마가 갈빗집을 운영하게 되면 갈비를 실컷 먹게 되는 줄 알고 기뻐했는데, 실상은 전혀 먹지 못 했다.

그래서일까. 분현이가 소고기 먹을래?라고 물었을 때 한 번의 아픈 기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고기가 나와 맞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난 좋다고 대답했다. 소고기 먹자는 말이 단순히 소고기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평소와는 다른 아주 특별한 날이 될 것이며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주겠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난 두 번째 소고기 선물을 받았다.

우선 소고기 선물을 준 내 친구 분현이를 소개해야겠다. 분현이는 중학교 친구로 눈웃음이 매력적이었는데 웃을 때마다 작은 눈이 초승달보다 더 작아졌다. 눈만 작은 게 아니었다. 얼굴도 작고, 손도 작고, 발도 작고, 키도 작았다.

그러나 손품 하나만은 끝내주게 컸다. 우린 분현이 가방을 지니라고 불렀는데 신상 과자들이 빼곡히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혼자서 몰래 먹을 만도 한데 분현이는 우리가 원하면 과자를 척척 내 놓았다. 하여 등교하기가 무섭게 분현이 가방을 열어 함께 먹는 것이 우리의 중요한 일과 중의 하나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분현이의 도시락은 먹어도 먹어도 사라지지 않는 화수분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소풍 갈 때나 사용하는 커다란 찬합에 점심을 싸왔다. 체구가 작은 분현이가 커다란 찬합을 낑낑거리며 꺼낼 땐 안쓰럽기까지 했다. 분현이 혼자 먹기엔 너무 많은 양이었다. 하여 분현이는 메뚜기떼처럼 이 도시락 저 도시락 뛰어다니던 우리에게 기꺼이 도시락을 내주었다. 적어도 우리에게 분현이는 살아 있는 마더 데레사였다.

그날도 1교시가 끝나기가 무섭게 도시락을 비우고, 쉬는 시간마다 매점에 간 것도 모자라, 점심 종소리가 땡치기가 무섭게 분현이에게로 달려갔다. 우리의 천사, 우리의 마더 데레사 분현이는 기꺼이 도시락을 내주었다. 밥과 반찬을 크게 욱여넣으며 조금은 고맙고, 조금은 미안한 마음에 연신 아무 말이나 건넸다. 그중에는 진심도 있었다.

“너희 엄마 음식 솜씨 진짜 좋다. 정말 맛있어.”

“히. 우리 집에 맛있는 거 많아. 놀러 와.”

“진짜지? 진짜? 진짜 놀러 간다!”

“웅. 놀러 와.”

혹시나 빈말이 아닐까 싶어 재차 물어본 말에도 분현이는 기분 좋게 대답했다. 혹시나 말이 바뀔까 확답을 받아야 했다.

“너희 집 어디라고 했지?”

“화절령.”

“화절령? 화절령이 어디야?”

사북에서 산 지 5년이 되었지만 화절령이란 곳은 처음 듣는 곳이었다.

“지장산 가다 보면 화절령 가는 길이 나오는데. 그 길을 쭉 따라 올라가면 돼. 지장산 보다는 멀어.”

지장산은 지금의 카지노가 들어선 곳이다. 당시엔 가파른 산비탈에 성냥갑 같은 사택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그곳보다 더 멀면 정말 먼 거리다.

“그럼 어떻게 가?”

“버스 타야지. 근데 하루에 두 대밖에 없어. 아침에 한 대. 저녁에 한 대.”

세상에. 그럼 하루에 두 번 다니는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녔단 말인가? 갑자기 분현이가 대단해 보였다.

“버스는 얼마나 타야 하는데?”

“얼마 안 걸려. 1시간 정도?”

1시간이 얼마 안 걸린다니. 이 아이의 시간 개념은 우리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 순간 알았다. 분현이 어머니께서 도시락을 찬합에 싸주는 이유를. 또 가방에 책 대신 과자를 가득 담아오는 이유를. 저녁 늦게까지 밖에 있어야 할 분현이를 위한 어머니의 마음이라는 걸. 난 그만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왜? 더 안 먹어?”

“배불러.”

난 거짓말을 했다. 손품만 큰 게 아니라 마음 품까지 큰 분현이가 말했다.

“이번 주 토요일에 놀러 와. 엄마 아빠가 친척집 결혼식 가느라 집이 비어.”

“오오~ 정말?”

“소고기 구워줄게.”

분현이가 은밀하게 말했다.

소고기라니. 그 귀한 소고기를 준다니. 내가 뭔가 귀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귀한 선물을 받는 냥, 욕심에 눈이 먼 난 그 순간 아버지에게 속아 개고기를 먹었던 아픈 상처도, 그래서 소고기를 먹을 때마다 체하는 것도 모두 잊고 다짜고짜 가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진행된 화절령 분현이네 방문 프로젝트. 몇몇 친구들에게 가자고 이야기를 꺼냈지만 어째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만큼 화절령은 먼 곳이었다. 어쩔 수 없이 동생을 꼬들겨 분현이가 사는 화절령으로 향했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고 가파른 길을 따라 버스가 힘들게 올랐다. 산세가 얼마나 험하던지 가는 내내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굽이쳤다. 없던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난 창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었다. 창밖으로 푸른 돌이끼 냄새가 나고 무성한 나뭇가지가 내 머리를 스치고 도망쳤다. 기분이 좋아졌다. 나무로 빽빽한 구불구불 산길을 올라 하늘에 닿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화절령에 도착했다. 하늘 아래 첫 번째 동네라는 이름이 붙었을 정도로 화절령은 산꼭대기에 있었다.

분현이네는 버스 종점 앞에서 작은 가게를 하고 있었다. 가게 안에는 식료품에서부터 양은 도시락은 기본, 남자 팬티와 옷, 양말까지 없는 거 빼고 다 팔았다. 나와 동생은 신기한 듯 분현이네 집을 구경했다. 분현이가 의미 있게 웃으며 말했다.

“소고기 먹을래? 마침 어제 잡았어.”

말해 뭐해. 나와 동생은 돌고래 소리를 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설레기까지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분현이의 의미 있는 웃음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분현이는 우리를 화덕 난로 앞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잠시 후 소고기를 가져와 난로 위에 바로 구우며 말했다.

“우린 이렇게 먹어.”

세상에 프라이팬이나 석쇠 없이 난로 위에 직접 굽다니. 뭔가 차원이 달랐다. 난로 위는 꽤 오랫동안 고기를 구웠는지 반질반질 길이 잘 들어 있었다. 분현이가 소고기를 올리자 촤악!하고 빗소리가 들렸다. 맛있는 소리에 침이 절로 넘어갔다. 붉은 고기가 노릇노릇 익어가자 분현이의 손이 빨라졌다. 붉은 고기는 불 안쪽으로, 노릇노릇 익은 고기는 불 바깥쪽으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쪽은 익었어. 어서 먹어.”

고기를 먹기 쉽게 내 쪽으로 옮겨주며 분현이가 말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동생과 나는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소고기를 집어 먹었다. 오! 쫄깃쫄깃한 식감 하며 소고기 특유의 풍부한 감칠맛이 입 안을 감돌았다. 소고기는 탕으로만 먹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구워도 먹다니. 처음 먹어보는 소고기 구이에 우린 감동받았다. 순간 귀에서 종소리가 들렸다.

땡! 땡! 땡!

그랬다. 난 소고기와 사랑에 빠졌다. 도저히 멈출 수가 없을 정도로. 허겁지겁. 집요하게. 또 악착스럽게. 먹고 또 먹었다. 얼마를 먹었을까? 말 그대로 배가 찢어지도록 먹고 나서야 우리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소고기로 배를 불리다니 생각도 못 해 본 일이었다. 동생과 난 마냥 행복했다.

“오늘 소고기 어땠어?”

분현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진짜 맛있었어!! 완전 쫄깃쫄깃해!!”

“난 소고기와 사랑에 빠졌어.”

동생과 난 흥분해 한 목소리로 말했다. 분현이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저.. 실은.. 그거 돼지 부랄이야.”

난 내 귀를 의심했다. 내가 잘못 들은 거라 생각했다.

“뭐라고? 너 지금 뭐라 한 거야?”

“그거 돼지 부랄이라고.”

오! 마이! 갓!!!!!!!

돼지 부랄이라니! 그럼 내가 사랑에 빠진 소고기가 돼지 부랄이라고? 아버지에게 속아 개고기를 먹으러 간 기억이 떠올랐다. 하. 분현이 너까지. 그때의 심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운동회 날 달리기로 1등 했는데 알고 보니 결승선을 잘 못 알아 꼴찌한 심정이랄까. 아니 모래주머니로 박을 터뜨리는데 갑자기 날아온 운동화로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랄까. 뭔가 억울했다. 억울한데. 더 억울한 건 돼지 부랄이 너무 너무 맛있었다는 사실. ㅠ

“너! 이씨! 어떻게 나에게 돼지 부랄을 먹여! 잡히면 가만 안 둘 거야!!”

도망치는 분현이를 잡으러 달려갔다. 그러나 다람쥐처럼 빠른 분현이를 잡을 수는 없었다. 집 주위를 몇 바퀴 돌고 나서야 분현이도 나도 멈췄다.

“저 아래 구름 봐.”

분현이가 숨을 헐떡이며 발 아래를 가리켰다.

“하, 씨. 뭔 또 구름이야.”

말은 그렇게 해도 내 시선은 이미 발 아래로 향했다. 발 아래 몽실몽실한 구름이 자욱하게 끼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구름 위 선계에 오른 것처럼 신비로운 느낌이었다. 순간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돼지 주둥이든, 코든, 부랄이든 그것의 가치를 매기는 건 인간이란 걸. 자연은 그 자체로 경이롭고 신비로운 것이라는 거. 그러니 그 자체로 인정해야 한다는 거. 진리는 단순했다. 그리고 그 뒤 내게도 깡이 좀 생겼다.

‘그 까이거 뭐. 돼지 부랄도 먹었는데. 못 먹을 게 뭐 있어?’



p.s

혐오식품에 대한 도전은 내적성숙(?)을 가져 온다. 믿거나 말거나.

이전 07화소고기 먹자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