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갈비
고한을 떠나 사북으로 이사한 건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지인의 소개로 어머니는 갈빗집을 인수하셨다. 갈빗집이라는 말에 이사 첫날부터 들떠 있었다. 매일 갈비를 먹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사 첫날부터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빚나갔다. 어머니는 갈비는커녕 갈비뼈도 만지지 못 하게 하셨다.
나의 예상 빚나간 건 또 있었다. 설렜던 새 학교의 생활은 점점 지옥 체험이 되었다. 쉬는 시간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체육 시간에 자리를 비워두면 내 책상 서랍에는 어김없이 협박성 쪽지가 놓여 있었다.
‘난 네가 싫어. 네가 전학 온 후 내 인기가 떨어졌어. 그러니 다시 전학가!’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유치해서 귀엽기까지 한 협박성 쪽지지만 당시 나에겐 큰 충격이었다. 분명 누군가 한 사람이 썼을 텐데, 받는 나는 우리 반 아이들 모두가 같은 생각인 줄 알았다. 하여 도움도 청하지 못 하고 혼자 가슴앓이를 하고 있었다.
제일 궁금한 건 쪽지를 보내는 사람이었다. 누가 보내는지 정말 알고 싶었다. 그 아이를 만나면 물어보고 싶었다. 인기라니. 도대체 내가 무슨 인기가 있다는 말인지. 인기가 있다면 본인인 내가 느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난 단 한 번도 내가 인기 있는 아이라고 느끼지 못했다. 아니 솔직히 이야기해 난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아이들이랑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으면 고무줄을 끊고 도망치거나, 치마를 입은 날엔 아이스케키 하며 내 치마를 걷어 올려 창피를 주는 등 날 못 살게 굴었다.
심지어는 한 녀석은 매일 나를 때렸다. 쉬는 시간 화장실을 가기 위해 복도를 나설 때면 언제 나타났는지 나를 툭 치고 도망쳤다. 처음에는 잘 몰라서 그런가 보다 하고 이해했다. 그러나 매번 나만 툭 치고 도망가고, 심지어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툭 치고 도망치는 걸 보고서야 일부러 한다는 걸 알았다. 녀석이 툭 치는 바람에 난 매일 넘어졌고 내 무릎은 성한 날이 없었다.
“나 학교 안 갈래!”
결국 폭발했다. 집으로 돌아온 난 가방을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학교를 안 가다니?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몰라. 가기 싫어.”
“모르는 건 뭐고 싫은 거 뭐야? 왜 무슨 일 있어? 학교 왜 가기 싫어?”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말하지 않으면 엄만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학교에 보낼 사람이다. 난 폭탄을 엄마에게 던졌다. 진실의 폭탄을.
“아이들이 다 날 싫어해.”
엄마가 잠시 말을 잇지 못 했다.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러나 이내 엄마가 다시 물었다.
“싫어하다니 누가? 누가 우리 예쁜 부용일 싫어해?”
“몰라. 전학 가라는 쪽지를 보내고. 오이는 날 매일 때리고.”
참고 있었던 감정이 쏟아졌다. 잘못한 게 없는데. 누굴 때린 적도, 욕한 적도 없는데. 그냥 난 새로 전학 왔을 뿐인데, 전학 왔다는 이유로 미움을 당한다고 생각하니 억울했다. 난 소리 내 엉엉 울었다. 다시 고한 집으로 돌아가자고 떼를 썼다. 서러웠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내 울음소리가 점점 자자들자 어머니가 말했다.
“오이 데려와.”
“오이를 집에? 왜?”
“엄마가 할 말이 있어서.”
“그럼 엄마가 학교로 와.”
“엄마가 찾아가면 문제가 커질 수 있어. 그러니 집으로 데려와.”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데려와?”
“엄마가 갈비 준다고 해.”
“뭐? 갈비? 진짜 줄 거야?”
“그냥 그렇게 말해. 그럼 따라올 거야.”
“나 말 못 해!”
숙기가 없어 사람들 앞에 서면 얼음이 되는 나였다. 날 좋아하는 사람도 아닌, 날 때리고 괴롭히는 오이에게 말할 자신이 없었다.
“그럼 연습해. 우리 집 갈래? 엄마가 갈비 준데.”
“안 되겠어. 못 하겠어.”
“할 수 있어. 따라 해봐. 우리 집 갈래? 엄마가 갈비 준데.”
“우리 집 갈래? 엄마가 갈비 준데.”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더 크게. 우리 집 갈래? 엄마가 갈비 준데.”
순간 화가 났다. 잘못한 건 오이랑 쪽지인데. 왜 내가 노력해야 하는지. 엄만 왜 오이에게 갈비를 준다고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빽 질렀다.
“우리 집 갈래? 엄마가 갈비 준데.”
“잘 했어. 내일 오이 보면 연습한 대로 말해. 알았지?”
호기롭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이를 데려오는 건 엄마가 할 수 없는 일. 더 이상 괴롭힘을 당하지 않으려면 오이에게 맞서야 했다. 다음날 난 일부러 오이 자리로 다가가 준비한 말을 내뱉었다. 혼신의 힘을 짜서.
“갈비? 진짜? 진짜 갈비 준다고? 좋아!”
나의 고민과 노고와 달리 오이는 쉽게 승낙했다. 나를 괴롭힌 것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은 없는 걸까? 아님 정말 갈비 때문인가? 어쨌건 엄마가 옳았다. 수업이 끝나고 난 오이와 함께 교문을 나섰다. 아무 생각 없이 싱글벙글 웃는 녀석을 보니 이런 녀석에게 맞고 있던 내가 한심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여기가 우리 집이야.”
집 앞에 도착해 들어가려고 하자 갑자기 녀석이 뒷걸음질 치며 물었다.
“근데 너희 엄마가 왜 나에게 갈비를 준데?”
이제야 갈비의 목적이 궁금해 진 모양이다. 바보 같은 녀석.
“그건 나도 모르지. 울 엄마에게 물어봐. 엄마. 오이 왔어.”
난 오이가 도망가지 못 하게 뒤에서 막고 엄마를 불렀다. 잠시 후 엄마가 나왔다. 엄마 손엔 고기 자르는 날 센 가위와 커다란 집게와 들려있었다.
“네가 오이구나. 이리 와. 여기 앉아.”
겁에 질린 오이가 뒷걸음질 쳤다. 난 녀석이 도망가지 못 하게 두 손을 뻗어 막았다.
“부용이 너도 어서와. 이것 좀 구어.”
엄마가 가위와 집게를 건네며 말했다. 상 위에는 이미 갈비가 올려 있었다. 이건 아닌데. 왜 갈비를? 엄마가 녀석에게 상냥하게 말했다.
“어서 먹어.”
“진짜 먹어도 돼요?”
“그럼. 어서 먹어. 뭐해 자르지 않고.”
엄마의 재촉에 난 갈비를 잘랐다. 그러자 주뼛거리며 눈치를 보던 녀석이 갈비를 먹기 시작했다. 억울했다. 괴롭힌 사람은 갈비를 먹고 당한 사람은 갈비나 자르고.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소리쳤다.
“엄마! 오이가 매일 괴롭혔다고!”
녀석이 눈치를 보며 슬며시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어머니가 말을 이었다.
“왜 괴롭혔어? 우리 부용이?”
“그게...”
녀석은 한동안 말을 하지 못 했다. 엄마가 녀석에게 다시 고기를 건네며 말했다.
“우리 부용이 괴롭힌 거, 나 괴롭힌 거랑 똑 같아. 무슨 말인지 알아?”
녀석의 얼굴이 빨개졌다.
“엄마들은 그렇거든 내 딸이 아프면 나도 아파. 내 딸이 즐거우면 나도 즐겁고. 너희 엄마도 그럴 걸? 네가 아프면 너희 엄마가 더 아플 거야. 그런데 너만한 녀석이 매일 너희 엄마를 괴롭힌다고 생각하면 어때? 가만있을 거야? 아님 괴롭히는 녀석을 때려줄 거야?”
녀석의 얼굴이 빨개지다 못 해 불타오를 것 같았다. 한참만에야 녀석이 말을 뱉었다.
“때려줄 거예요.”
“그래, 나도 때려주고 싶었어. 나도 너만나면 우리 부용이 왜 괴롭히냐며 때려주고 싶었어. 그런데 네 엄마 생각하니까 못 하겠더라.”
녀석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너도 네 엄마에게 중요한 자식이듯. 우리 부용이도 내겐 너무 중요해. 그러니 더 이상 괴롭히지마.”
“죄송합니다.”
“사과는 우리 부용이에게 해야지. 제대로.”
녀석이 날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
“미안해. 괴롭혀서. 너에게 관심 받고 싶어서 친다는 게. 널 괴롭히게 되었어.”
이게 아닌데. 내가 괴롭힘 당한만큼 녀석도 괴롭혔어야 했는데. 그래야 풀릴 것 같았는데. 녀석의 미안하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너 이뻐서 갈비 주는 거 아니야. 우리 딸 위해서 굽는 거야. 우리 딸이랑 잘 지내라고. 알았지?”
“네.”
“어서 먹어. 부용이 너도 먹고.”
엄마가 내 앞으로 갈비 한대를 올려주셨다. 젠장. 엄마가 옳았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음식을 통해 녀석을 용서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건 상처받은 나를 치유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며칠 후 오이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협박 쪽지를 보내는 아이가 우리 반 부반장이라는 것. 부반장은 우리 학교 육상 대표로 대회에 나가 상도 많이 탄 인재였다. 작고 왜소한 나와는 달리 키도 크고 늘씬해 인기도 많았다. 그런 아이가 협박 쪽지를 보냈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오이는 책상 서랍에 뱀을 풀어 놓으라고 했지만 난 뱀 대신 껌을 넣어두었다. 부반장이 껌을 좋아하는 걸 알고 있었다. 한동안 껌만 없어지고 협박 쪽지가 날 괴롭히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 언젠가부터는 껌도 협박 쪽지도 사라졌다.
그러던 어느 날, 체육시간이라 모두들 운동장으로 나갔다. 주번이었던 난 체육 선생님께 출석부를 드리고 교실로 들어가던 중이었다. 교실 문을 막 열고 들어가는데 내 책상 서랍을 뒤지는 부반장과 눈이 마주쳤다.
“거기서 뭐해?”
“아냐. 아무것도.”
도망치듯 교실 문을 나서는 부반장에게 난 껌을 건넸다.
“혹시 찾는 게 이거니?”
껌을 본 부반장은 당황한 듯 날 밀치고 뛰쳐나갔다. 그날 이후로 내 서랍엔 껌이 쌓여갔다.
p.s
음식 때문에 싸우고. 음식 때문에 화해하고. 부반장과 화해하지는 못 했지만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는 법을 배우는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