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사과

추억의 사과

by 홍작

할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해에 돌아가셨다. 죽음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던 나는 잔치 집처럼 손님들로 시끌벅적한 집안 분위기에 들떠 동네 아이들을 죄다 불러 놀곤 했다. 평소 먹어보지 못 한 음식을 맘껏 먹을 수 있으니 동네 아이들도 나도 마냥 좋았었다.

때때로 밤이 늦도록 고모들이 울곤 했는데 그럴 때면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묻곤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어디로 돌아간 거야?”

그때만 해도 할아버지가 진짜 지구 어딘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신 줄 알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라는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런 내게 할머니는 퉁퉁 분 눈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말했다.

“할아버진 태어나기 전으로 돌아간 거야.”

“태어나기 전으로 돌아가다니. 그럼 다신 볼 수 없는 거야?”

“그럼 다신 볼 수 없지. 하지만 네가 할아버질 자꾸만 생각하면 귀신이 되어 나타나 구둣발로 네 뒤통수를 때릴 거야.”

가만있어도 무서운 할아버지인데. 귀신이 되어 나타나다니. 게다가 귀신 할아버지에게 구둣발로 뒤통수를 맞을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그때부터 난 되도록 할아버지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고, 행여 할아버지 생각이 나는 경우엔 내 뒤통수를 지키기 위해 벽이나 바닥 등 딱딱한 무엇인가에 뒤통수를 딱 붙였다.

그래서일까?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딱 하나 할아버지와 사과이다.

사과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도르코 칼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왜냐하면 할아버지는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도르코 칼에 집착을 했었는데 도르코 칼만이 진정한 칼이라고 했다. 그 말 뒤에는 우리나라는 절대 일본을 따라갈 수 없다는 의미가 깔려 있기도 했다. 어쨌건 도르코 칼은 언제나 할아버지가 지정한 그 자리에 있어야 했다. 행여 도르코 칼이 있어야 할 곳에 없으면 집 안이 발칵 뒤집혔다. 도르코 칼을 찾든 아니면 새로 사야 끝나는 할아버지의 도르코 칼 사랑은 우리 모두를 괴롭혔다.

할아버진 도르코 칼로 두 가지를 잘랐다. 하나는 신문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사과였다.

먼저 신문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오랜 탄광 생활로 진폐를 앓던 할아버지는 밤낮으로 기침을 하셨다. 그러다 노란 가래가 끓어오르면 작은 항아리에 가래를 뱉으셨다. 병원에도 가고 약도 드셨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으셨다. 기침이 잦아지고 잦아진 기침만큼 가래도 많이 끓으니 작은 항아리로는 감당이 안 되었는지, 어느 날 안방 출입문 옆에 커다란 못을 박으셨다. 그리고는 신문지를 손바닥만 하게 잘라 못에 꽂아두고는 가래가 끓을 때마다 사용하곤 하셨다.

무엇이든 귀한 시절. 누군가는 신문지 가운데에 구멍을 뚫어 똥을 닦고, 남은 신문지로 손가락을 닦는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로 신문이 귀했다. 그런 신문을 구독하는 건 돈 있는 사람들의 고유 권한이었다. 가난했던 우리 집은 신문을 구독할 여력이 안 돼 어쩌다 아버지가 회사에서 가져오시면 할아버지께 제일 먼저 드리고 남은 것을 나눠 쓰곤 했다.

그렇게 높은 몸값을 자랑하는 신문이다 보니 할아버진 신문을 우리보다 더 소중히 다루셨다. 할아버지께서 신문을 반으로 접고, 또 접고, 또 접어 내 손바닥 크기가 될 때까지 접는 모습은 얼마나 경건하고 위엄이 있는지 감히 말을 건넬 수 없을 정도였다. 고이 접은 신문을 자를 땐 어떻고. 할아버진 호흡 없이 단 한 칼에 신문지를 잘라내곤 했는데 그 모습이 흡사 수십 년간 수련한 검객을 닮아 있었다.

사과를 자를 때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깨끗이 씻은 사과를 도르코 칼로 껍질을 먼저 깎았다. 사랑하는 사과의 살이 베어 나갈까 봐 어찌나 얇게 깎는지 껍질을 들어 해에 대면 햇빛이 비칠 정도로 투명했다. 그렇게 껍질을 다 깎고 나면 사과에 세로로 금을 긋고 다시 가로로 금을 긋고는 마지막으로 단면을 자르셨다. 그러면 사과가 사각 모양으로 한 입에 들어갈 정도로 잘렸는데, 할아버지는 도르코 칼로 네모나게 잘린 사과를 콕 집어 한입에 쏙! 쏫! 빼 먹으셨다. 그 모습이 얼마나 맛있게 보이는지. 할아버지가 사과를 먹을 때마다 할아버지 앞에 앉아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보챘다. 내 마음을 다 알면서도 할아버진 군침을 흘리는 나에게 물으셨다.

“너도 먹고 싶니?”

“네!”

씩씩하게 대답하면 줄 것 같아 목청을 있는 힘껏 높였다. 할아버진 네모나게 잘린 사과를 콕 찍어 나에게 주려다 갑자기 방향을 틀어 자신의 입에 넣었다. 먹는 거 가지고 장난치는 할아버지가 얄미웠다.

“할아버지! 나도! 사과!”

“넌 출가외인.”

할아버지는 나에게 출가외인이라며 사과를 주지 않고 끝끝내 혼자 다 드셨다. 출가외인이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여자를 지칭한다는 건 알았다. 그리고 그것이 차별이라는 것도. 왜냐하면 오빠가 달라고 하면 주었으니까. 나에게 사과는 뭔가 닿을 수 없는 어떤 것이었다.

그날도 할아버지는 언제나처럼 시장에서 사야 할 물건을 종이에 빼곡하게 적어 할머니에게 건네면서 사야 할 목록을 다시 한 번 읽어주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과 사 오는 거 잊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며 할머니에게 다시 외우보라 했다. 그러자 화가 난 할머니는 누굴 바보 멍충이로 아냐며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나는 말없이 할머니를 따라나섰다. 할머니를 따라 시장에 가면 맛있는 걸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까지 가는 내내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알려준 사야 할 목록을 연신 외우며 가셨다. 종이에 쓰여 있는데 계속 외우고 가는 할머니가 이상하긴 했지만 모처럼 시장에 온 나는 들떠 있었다.

“할머니 옥수수. 할머니 부치기.”

나는 장을 보는 할머니의 소매를 잡아끌며 계속 보챘다. 몇 번 거절을 하던 할머니는 결국 부치기를 사주셨다. 하얀 밀가루에 배추 한 장이 고작인데도. 얼마나 맛있는지. 난 할머니에게 먹어보라는 말도 하지 않고 주워 먹었다. 그렇게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온 난 엄마에게 달려가 장에서 본 것들을 이야기하며 부치기도 먹었다고 자랑했다.

그때였다. 뭔가 큰 물건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잘못했어요. 주희 아버지!”라는 할머니의 절규가 들렸다. 엄마도 나도 놀라 마당으로 뛰어 나갔다. 마당에선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때리고 있었다. 엄마도, 고모들도, 삼촌들도 놀라 어쩔 줄 몰라했다.

“이 놈의 여편네. 사과 사 오라고 했더니. 사과는 안 사 오고. 돈은 어디다 쓴 거야? 어떤 놈팽이에게 갖다 바친 거야?”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글을 모르는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장 목록을 불러 주면 그때 외우는 것이었다. 그래서 매번 장을 볼 때면 잊지 않으려고 중얼거리지만 이상하게 꼭 하나씩 빠트리곤 했는데 오늘은 사과를 빠트렸다는 것. 설상가상 사과 살 돈으로 부치기를 사먹으면서 이 사단이 난 것이다. 당시엔 너무 어려 그런 상황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었지만 어쨌건 매를 맞으며 울고 있는 할머니를 가만히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참다 못 한 나는 할아버지 앞으로 달려가 말했다.

“영감 보지!”

다섯 살도 안 된 어린 아이가 여성의 성기를 뜻하는 말을 뱉으며 할아버지에게 맞선 것이다. 엄마 말로는 엄마가 시집오고 나서 처음이었다고 했다. 그만큼 할아버지의 권력은 절대적이었다. 그런 절대 권력에 맞선 게 나였으니.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겠다. 할머니를 지켜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가장 놀랜 건 할아버지였다고. 어찌나 놀랐는지 그 날 그 일 이후로 할아버지는 더 이상 할머니를 때리지 않으셨다고 했다. 그리고 돌아가실 때까지 다른 손주들에겐 사과를 주면서 나에겐 절대 주지 않으셨다고 했다.

그래서 일까? 난 사과를 먹지 않는다. 아니 못 먹는다. 사과만 먹으며 속이 에린다. 나중에 출가외인이라는 말의 뜻을 알고 난 뒤 충격을 받았다. 그건 넌 이 집 안 사람이 아니니 사과도 아깝다는 이야기였다. 나에게 사과는 울타리 밖의 사람이라는 걸 알려주는 증표였다. 결혼을 하면 달라질 줄 알았다. 그러나 달라진 건 없었다. 여전히 친정에선 출가외인으로, 시집에서 다른 집안 사람으로 살아가야 했다. 여자는 태생자체가 철저한 이방인이었다. 우리를 보둠어 줄 울타리 따윈 없다. 그러니 외쳐야 한다. 우리도 사과를 먹을 수 있다고. 그것도 안 되면 욕이라도 해야 한다. “영감 보지!”라고.



p.s

물론 지금은 할아버지를 이해한다. 남자는 하늘이고, 남자의 말은 법이었던 시절에 살았으니 그럴 수 있겠다 싶다. 그렇다고 폭력을 미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폭력은 나쁘다. 그리고 우리의 권리이자 의무는 나쁜 건 나쁘다고 말해야 한다는 것. 말하지 않으면 절대 바뀌지 않는다. “영감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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