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수야~ 팥빙수야~ ~ 사랑해~ 사랑해~

추억의 팥빙수

by 홍작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혁명적인 음식을 물어본다면 난 망설이지 않고 팥빙수를 꼽을 것이다. 나에게 팥빙수는 인식을 전환시킨 충격적인 음식이었다. 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내가 살던 곳, 고한을 알아야 한다.

지금은 카지노와 스키로 유명하지만 내가 살았을 때만해도 석탄으로 유명했다. 고한은 가파른 산골 사이로 작은 하천이 흐르고 그 하천을 중심으로 읍내가 형성이 되어 있다. 산세가 어찌나 가파른지 사람 살기에 적절하지 않아 비탈길에 집을 짓거나, 하천 주위 몇 평 안 되는 땅을 쪼개 살아야 했다. 그 중에서도 우리가 살던 9리 1반은 가장 열악했다.

분지형태로 쑥 꺼진 곳이었던 우리 마을은 비가 오면 제일 먼저 잠기고 여름이 되면 가장 뜨거운 곳이었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떠날 때까지도 상하수도가 개설되지 않아 아침이면 동네 우물가에서 줄을 서서 세수를 했고, 대소변은 마을 입구에 설치된 공중변소를 사용해야 했다. 주민 모두가 썼던 공중 화장실은 늘 만원이었고 기다리다 실례를 하는 아픈 기억이 있는 곳이다. 하지만 그곳에 살았던 때가 가장 행복했었다.

아지랑이 피는 봄이 오면 눈이 채 녹지 않은 산속을 헤매며 머루와 다래를 따 먹고, 그 마저도 없으면 개구리를 잡아먹었다. 그뿐인가. 뜨거운 해가 내리쬐는 여름이면 동굴 탐험을 나섰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동굴이 아닌 커다란 하수구 안을 기어 다닌 반쪽짜리 탐험이었지만, 그곳에서 뼈다귀를 발견한 날이면 누구의 뼈일까, 누가 죽였을까를 상상하느라 밤새 잠을 자지 못했다. 그곳의 모든 장소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알록달록 옷을 갈아입은 가을엔 도토리를 주우러 다니고, 눈이 내리는 겨울엔 고드름을 따 먹으며 검은 물 위에서 얼음 치기를 하곤 했다. 매일매일 밖으로 돌던 그 시절 우리는 검댕이가 묻은 옷을 자랑처럼 입고 다니며 누렁 코를 맛있게 훌쩍이며 몰려다녔다. 모두가 더러웠고, 모두가 가난했다. 그래서 모두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영원히 행복할 줄 알았던 그 시절을 마감하게 된 계기가 있었으니 바로 초등학교 3학년 여름 첫 영성체 교육이었다. 다니고 있던 고한 성당에는 첫 영체를 받을 사람이 내가 유일했다. 하여 나만 교육할 수 없어 위탁받은 사북 성당으로 가야 했다.

가톨릭 신자라면 알 것이다. 첫 영성체가 어떤 의미인지. 성체를 받아 모심으로 해서 내가 하느님과 하나 되고, 공동체와 하나 된다 사실이 얼마나 큰 영광이고 축복이고 기쁨인지. 모태신앙이었던 난 이날을 손꼽아 기다렸기 때문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사북 성당을 찾아갔다.

사북 성당은 고한 성당과는 비교도 안 되게 크고 멋졌다. 교인들은 얼마나 많은지. 작은 성당에 익숙했던 난 모든 게 낯설고 어색하고 조금은 주눅이 들었다. 그런 나를 교리반으로 안내한 건 성당 오빠였다. 키가 크고 잘 생긴 성당 오빠를 보자 이곳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모든 교육이 끝나고 난 첫 영성체를 받아 모셨다. 참으로 영광스러운 날이었다. 성당 오빠가 첫 영성체 기념이라며 빵집에 데려갔다. 빵집이라니. 빵만 파는 빵집을 난 처음 가 봤다. 제네바 빵집. 이름도 어찌나 이국적이고 고급지던지. 내가 살던 고한 9리 1반과는 차원이 다른 곳이었다.

“제네바는 스위스의 수도야.”

성당 오빠가 빵집에 들어서면서 아는 채를 했다.

“한국의 수도는 서울. 스위스의 수도는 제네바. 역시 배워야 해.”

난 연신 감탄하며 성당 오빠를 따라 빵집에 들어갔다. 화려한 조명 아래 보기 좋게 진열된 빵을 가리키며 성당 오빠가 말했다.

“자, 먹고 싶은 빵 골라.”

“뭐가 맛있어요? 저 이런 데 처음이에요.”

“뭐? 빵집이 처음이라고? 고한엔 빵집 없어?”

성당 오빠가 웃었다. 그 순간 내 마음에 못난이가 자라기 시작했다. 오빠가 빵집도 모르는 무식한 아이라고 비웃는 것 같았다.

“없을 수도 있지. 내가 설명해 줄게. 이건 크림이 들어간 소라빵. 이건 아무것도 안 들어간 소로보. 이건 팥이 들어간 팥빵.”

성당 오빠가 친절하게 말하면 말할수록 내 마음의 못난이는 점점 커져갔다.

“아무 거나 먹어요.”

난 뾰족하게 말하고 자리에 앉았다. 성당 오빠가 다시 물었다.

“팥빙수 먹을래?”

팥빙수가 뭐에요?라고 물어 보려다 그만 두었다. 놀림당하긴 싫어 침묵했다. 나를 숨기기엔 침묵만큼 좋은 게 없다.

“좋아요!”

모두들 팥빙수를 먹겠다며 손을 들었다. 세상에 팥빙수를 모르는 건 나뿐이었다. 우리 동네에선 내가 모르는 건 모두 모르고, 내가 아는 건 모두 알았는데. 이곳은 모두가 아는 걸 내가 모르고, 내가 아는 걸 이들은 몰랐다. 너무 낯설었다. 세상 밖으로 내동댕이처진 느낌이었다.

잠시 후 팥빙수가 나왔다. 커다란 그릇 위에 하얀 눈덩이가 담겨 왔다. 그 위로 빨간 팥과 알록달록 예쁜 토핑이 올려져 있었다.

“세상에 이 한 여름에 어디서 눈을 퍼온 거예요?”

내 한마디에 빵집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들이 왜 웃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난 진심으로 궁금했다. 아스팔트 위에 달걀을 풀어 놓으면 후라이가 될 거라고 말할 정도로 일주일 내내 더웠는데 눈이라니?

“눈 아니고. 얼음이야. 얼음을 간 거라고.”

“얼음을 갈았다고요?”

성당 오빠가 얼음 가는 기계를 가리키며 작동 원리를 설명했다. 다 이해하진 못 해도 칼날로 얼음을 간다는 건 알아들었다. 더 놀라운 건 팥빙수의 맛. 차가운 빙수가 녹으면서 팥의 달콤함이 느껴지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젤리의 향연이 열렸다. 신세계를 접하는 느낌이었다.

충격적인 건 팥빙수의 가격. 한 그릇에 무려 500원이나 했다. 당시 짜장면 한 그릇이 400원이었으니 팥빙수 500원은 짜장면을 먹고도 남는 돈이었으니 큰돈이었다. 배를 든든히 채울 수 있는 돈을 모두 녹여버렸다.

우리 동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린 배를 채우기 위해 돈을 쓰는데 이곳에선 달콤함을 채우기 위해 돈을 썼다. 우린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쓰는 데 이곳에선 노닥이며 노는 시간을 위해 돈을 썼다. 차원이 다른 세계였다.

내 마음의 못난이가 온전히 날 삼킨 건 그때였다. 할 수만 있다면 난 달콤함을 채우기 위해 돈을 쓰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난 노는 시간을 위해 돈을 쓰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팥빙수는 나에게 혁명적인 음식이다. 팥빙수는 나에게 욕망을 가르쳐주었다. 자본주의적 욕망을.



p.s.

욕망은 사람을 가만두지 않는다. 이듬해 우린 고한에서 사북으로 이사를 왔다.

이전 11화버거킹 햄버거를 좋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