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밤
외할아버지 집 뒤에는 커다랗고 멋진 밤나무가 있었다. 얼마나 커다란 밤나무인지 나와 동생이 팔을 다 뻗어도 닿지 않을 정도로 몸통이 크고 튼실했다. 하여 가을이면 우리를 포함한 외가 쪽 다섯 가족에게 밤을 다 돌리고도 남을 정도였다. 어디 그뿐인가. 밤나무 가지는 얼마나 크게 잘 뻗었는지 뜨거운 여름날에도 그 아래 평상에 누우면 이불을 덮을 정도로 시원했다. 거기에 외삼촌이 매단 앙증맞은 그네까지. 밤나무는 우리의 놀이터이자 휴게소였다.
그런 밤나무가 이상해진 건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였다. 벌레 하나 없던 밤나무에 벌레가 잔뜩 꼬이더니 그해 가을부터 밤이 잘 열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도 우리 몫이라며 밤 한 줌을 쥐어 주셨다. 어른 엄지손톱보다 조금 큰 밤을 보며 난 밤나무 걱정을 많이 했더랬다. 왜냐하면 그전까진 거짓말 조금 보태 갓난아기 주먹 같은 옹골찬 밤을 주셨기 때문에 분명 밤나무에 이상이 생긴 거라 생각했다.
나의 염려가 적중이라도 하듯 밤나무 몸뚱이에 허연 곰팡이가 피기도 하고, 노령으로 가지가 부러지기도 했다. 밤나무도 나만큼 나이를 먹으며 점점 쇠약해졌다. 밤나무가 어른 엄지손톱보다 조금 큰 밤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대견했다. 정말이니 밤이 작아진 건 밤나무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몇 해 전 외할아버지께서 집을 비운 사이 외할아버지 집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어머니와 집안 청소를 하고 있는데, 소쿠리에 갓난아기 주먹 같은 옹골찬 밤을 보았다.
“엄마. 이 밤 좀 봐. 엄청 크잖아.”
“만지지 마. 외할아버지 알면 큰 일 나.”
“큰 일 나다니. 뭐가 큰 일 나.”
“그거 외가 쪽 갈 밤이야.”
난 내 귀를 의심했다.
“외가 쪽 갈 밤이라니? 그럼 여태 이 갓난아기 주먹 같은 옹골찬 밤은 죄다 외삼촌들 댁에 보내지고, 우린 어른 엄지손톱 같은 밤을 먹은 거야?”
“그럼. 친가랑 외가랑 같니?”
난 밤을 크기에 따라 친가 따로 외가 따로 주신 외할아버지도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외할아버지의 차별을 묵묵하게 수용하는 어머니의 태도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나중에 엄마도 오빠네는 큰 밤을 내게는 작은 밤을 주겠다는 건가? 평소 같으면 한마디 했을 텐데 그만 두었다. 있지도 않는 일을 가정해 다투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일이 있은 뒤 난 외할아버지 댁에 가지 않았다. 어른 엄지손톱만한 밤이 서운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외할아버지께서 걷지를 못 하신다고 하시더니 몇 달 후 요양원에 입원하셨다고 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한걸음에 달려갔다. 내가 아는 한 외할아버지는 단 한 번도 누워서 손님을 맞아 본 분이 아니시다. 평소 건강관리를 잘 하신 탓도 있지만 몸이 조금 불편해도 언제나 꼿꼿하게 허리를 피고 당당하게 서서 손을 내미시는 분이다. 그래서인지 실제 키보다 커보였다. 그런데 몇 년 만에 뵙는 외할아버진 바람 빠진 풍선처럼 병상에 기대 간신히 호흡만 유지하고 계셨다. 그래도 다행인 건 정신은 말짱해 나를 알아보셨다.
“왜 이제 오니!”
마치 오랫동안 기다려 왔다는 듯 날 환대하는 외할아버지 말 한마디에 난 조금 당황했다. 날 기다리기라도 하셨단 말인가? 우리에겐 어른 엄지손톱만한 밤을 주시던 분이? 하지만 외할아버지의 이 한 마디가 꽁꽁 얼었던 내 마음을 녹였다.
“늦게 찾아봐서 죄송해요. 할아버지.”
“뭐 그런 소릴. 힘들지?”
처음이었다. 외할아버지가 내게 안부를 물은 건. 외할아버지에게 난 그저 어른 엄지손톱만한 밤, 버리기엔 아깝고 먹기엔 불편한 그런 밤인 줄 알았는데. 나를 걱정해 주시다니. 조금 감동했다. 그날 처음으로 난 외할아버지와 산책을 했다. 처음으로 외할아버지 속도에 맞춰 나무를 보고 햇볕을 느꼈다. 10분도 안 된 짧은 외출에도 힘이 드셨는지 외할아버진 깊은 잠에 빠지셨다. 그것이 내가 본 외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한 달도 못 되어 외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외할아버지를 묻고 돌아오면서 이제 더 이상 어른 엄지손톱만한 밤도 먹을 수 없겠구나,라고 생각하니 서글펐다. 그리고 깨달았다. 외할아버지의 사랑이 어른 엄지손톱만한 밤이 아니라 외할아버지에 대한 내 마음이 어른 엄지손톱만한 밤이었다는 걸. 따지고 보면 외할아버지께 어른 엄지손톱만한 밤도 안 드리고는 받으려고만 했으니 도둑이 따로 없었다. 내 사랑이 조금 더 컸다면, 그래서 서운하다고 외면할 게 아니라 외할아버지께 자주 찾아가 말벗이라도 되어드렸다면, 아마도 외할아버지와 나의 관계는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돌아가신 후 미안한 마음은 없지 않았을까?
p.s
그 사람의 사랑이 적은 걸 탓할게 아니라 내 사랑이 적은 걸 탓해야지. 세상은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이기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