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상한 딸기
얼마 전 인터넷으로 참외 1박스를 구입했다. 1박스에 얼추 30개가 들어 있으니 하루에 한 알씩만 먹으면 한 달은 족히 먹을 것 같았다. 피타고라스처럼 정확한 계산이었다며 자화자찬 했었는데, 참외가 상할 수 있다는 걸 계산하지 못 했다. 하여 하루에 한 알 바람돌이 선물처럼 열심히 먹었는데도 불구하고 1/3이 상했다. 바보. 버려야 하나, 먹어야 하나 고민 하는데 친구 말이 떠올랐다.
“내 피부 비결은 상한 과일이야!”
대학 동창이었던 이 친구는 요즘말로 도자기 피부였다. 잡티 하나 없는 피부에 모공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맨들맨들한 피부, 물광을 따로 낼 필요 없이 스스로 빛나는 피부였다. 친구의 피부를 볼 때마다 세상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침마다 뾰드락지와 싸우고 한 시간마다 기름종이로 유분을 제거해야 하는 나로선 피부 미인인 그 친구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얼굴에 유전(油田)을 물려줄 게 아니라 진짜 유전(油田)을 물려주셨으면 얼마나 좋아. 돈으로라도 얼굴을 전부 갈아엎었을 텐데.
하루는 친구에게 물었다.
“넌 피부 관리 어떻게 해?”
“관리는 무슨. 크림 로션 바르는 게 전분데.”
예쁜 애들은 모두 저렇게 말하더라. 타고 났다고. 하지만 안다. 얼마나 열심히 관리하고 돈을 쓰는지. 나는 다시 물었다.
“어떻게 관리하는 데?”
“정말 알고 싶어?”
친구가 뜸을 들였다. 그럼 그렇지. 내가 그랬잖아. 예쁜 애들은 모두 관리한다고. 난 고개를 끄덕였다.
“웅. 어떻게 관리해?”
“너도 알잖아. 우리 집 과일 가게 하는 거.”
“알지. 군포에서 제일 크다며.”
“처음부터 크지 않았어. 처음엔 조그만 구멍가게에서 시작했지.”
그 이야기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으니 제발 관리법 좀 알려줘. 애가 타기 시작했다.
“우리 엄만 가장 크고 가장 싱싱한 건 손님에게 팔고 우리에겐 조금 상한 거, 조금 덜 싱싱한 걸 줬어. 버리기 아까우니까. 그걸 먹은 것밖에 없어.”
“말도 안 돼. 상한 과일이 피부를 좋게 할 리가 없잖아.”
난 버럭 화를 냈다. 상한 과일과 깨끗한 피부는 언뜻 매칭이 되지 않았다. 친구가 날 놀린다고 생각했다. 서운했다.
“가르쳐 주기 싫으면 싫다고 해.”
“진짜야. 내가 네게 왜 거짓말을 해.”
하긴 집을 팔면서까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었다. 상한 과일이 피부를 나쁘게 한다는 연구 결과도 없었다. 결국 나의 선입견이었다. 하긴 상한 부분은 도려내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하여 그날 저녁 과일가게에 들려 상한 과일을 잔뜩 샀다. 이상한 아가씨네,라면서도 과일 가게 사장님은 신이나 상한 딸기, 상한 참외 등 상한 과일을 잔뜩 넣어주셨다. 언제 다 먹나 싶을 정도로 많았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상한 과일부터 씻었다. 먹는 것보다 버리는 게 더 많을 정도로 상해 있었다. 잠깐, 아주 잠깐 동안 괜한 짓을 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법. 난 씻은 과일을 들고 티브이 앞에 앉았다.
큰 기대는 없었다. 오죽하면 상했을까 싶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딸기 하나를 입에 넣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하. 말도 안 돼.
정말 말도 안 되게 맛있었다. 내 생전 이렇게 달콤새콤 맛있는 딸기는 처음이었다.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는 말은 이럴 때 써야 한다. 이렇게 달고 맛있는데 왜 그동안 못 생겼다고, 벌레 먹었다고 외면했는지. 하긴 벌레 먹은 사과만 파는 사장님도 있다고 했다. 벌레가 먹었다는 게 당도를 보장한다고 했던 말을 오늘에서야 이해했다. 우리에게 맛있는 건 벌레에게도 맛있는 법이니까. 어쨌건 한동안 상한 과일만 먹던 난 결국 배탈이 나 멈춰야 했다. 나의 도자기 피부 프로젝트도 멈췄다.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법칙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난 상한 참외를 버렸다.
또 깨달은 게 있다. 맛있는 과일에 벌레가 꼬이듯 맛있는(좋은 사람)에게도 벌레가 꼬인다는 것. 그러니 만약 지금 당신에게 벌레가 꼬인다면 그 자리에서 툭툭 털고 일어나길. 벌레는 벌레, 나는 나임을 구분하고 벌레를 사랑하지 말길. 더 이상 자신을 탓하며 스스로를 불행으로, 실패한 삶으로 몰아가지 않기를. 내가 달고 풍부하고, 깊은 맛을 내는 맛있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고 믿기를.
p.s
나쁜 사람만 꼬인다고? 그건 네가 좋은 사람이라는 증거야. 그 믿음 잃지 말고 의연하고 굳건하게 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