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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박세희 Dec 08. 2019

'같이' 산다는 건 뭘까, 결혼 이야기 (2019)

넷플릭스 결혼 이야기를 보았다. 


결혼 이야기 아니고 이혼 이야기 아니냐는 얘기가 있던데 맞다. 이혼 이야기다. 영화가 시작하며 보여주는 두 주인공 '찰리'와 '니콜'의 모습은 참 보기 좋다. 부부가 서로의 장점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런데 이 나레이션이 끝나면 뒷통수를 맞는 느낌이다. 그게 바로 이혼 절차의 시작이었다.


(이하 스포일러 주의)


결혼 이야기 (Marriage Story, 2019)


찰리와 니콜은 10년 된 부부다. LA에 살던 니콜은 약혼을 한 상태였는데 우연히 뉴욕에 갔다가 찰리를 만나고 그의 연극을 본 다음 그에게 푹 빠졌다. 그리고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기면서 둘을 결혼한다. 니콜은 찰리의 극단에서 연기자로 일하게 되고, 둘은 겉보기에는 완전한 결혼 생활을 영위한다. 그런데 이혼이라니?


행복은 같은 모습인데 불행은 제각각 다른 모습이라던 톨스토이의 문장이 떠오른다. 행복한 부부는 대개 같은 모습이겠지만, 이혼하는 부부는 제각기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니콜과 찰리의 이유를 보여준다. 둘 중 누구에게 어떤 귀책이 있는 걸까.


@ IMDB


니콜은 LA에서 나고 자랐다. 할리우드. 영화의 고장 LA 출신 답게 니콜은 보다 대중적인 드라마, 영화에 출연하는 연기자의 꿈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 찰리를 만나 실험적인 아방가르드 연극에 입문하게 된다. 니콜에게 뉴욕은 타향이다.


찰리는 인디애나에서 뉴욕으로 와서 자수성가한 연출가인데, 그는 니콜의 표현에 의하면 뉴요커보다 더 뉴요커 같다. 찰리는 뉴욕에 살기를 희망하고 그의 꿈은 브로드웨이 진출이다. 니콜은 찰리에게 LA에서도 살아볼 것을 얘기하지만 번번이 막혀왔다. 찰리의 그럴싸한 핑계로.


찰리를 변호하고 싶은 마음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게 다 핑계에 불과했다는 건 영화를 보면 나온다. LA와 뉴욕의 거리, 약 4,000km인데 뉴욕에 함께 살고 있던 찰리와 니콜. 두 사람 마음의 거리도 점점 멀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마음들이 정리되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이혼' 덕분이다. 이혼이 없이 그 상태가 유지되었다면 그 상태는 무슨 상태라 명명할 수 있을까. 식물혼? 그런 혼인은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양쪽에서 이혼 전문 변호사가 끼어드니 난투극이 된다. 사소한 것까지 다 까발려지고 씹어진다. 이젠 정말 돌이킬 수 없다. 


@ IMDB


신기하다. 분명 시작은 사랑이었다. 뚜렷한 사건도 이유도 없이 둘은 멀어진다. 정말 사건도 이유도 없는 것일까. 찰리의 외도가 있었다. 그건 원인이기도 하지만 결과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결정적인 원인은 아니다. 니콜은 찰리와의 삶에서 자기 자신을 잃어갔다. 그리고 그 잃어감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니콜이 자기 자신의 자리를 찾고 자신을 성장시키는 과정이다. 니콜은 LA로 돌아와서 다시 본인이 걷고자 했던 연기자의 길로 나선다. 감독 일도 배운다. 겸손하게 표현해서 "찰리의 어깨 너머로 배웠던" 덕분이다. 재능이 있었던 모양이다. 성과도 있다. 연애도 한다.


찰리도, 다시 자신을 추스린다. 그래도 살아야겠기에. 그토록 바라던 브로드웨이 진출작은 LA와 뉴욕을 오고 가며 이혼 절차를 진행하는 통에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로 막을 내렸고, 그토록 바라던 맥아더상과 그 상금은 이혼 소송 비용으로 다 들어가게 생겼고, 재산을 정리하며 소파까지 뺏겨서 마루바닥에 앉아 생활하는 처지가 되었고, 사랑하는 아들을 100%가 아닌 45%만 만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래도 살아야겠기에. 이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성장이다.


이혼 절차가 마무리 되고, 뉴욕으로 돌아온 찰리는 극단 동료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긴 신세 한탄을 하다가 절절한 노래 한 곡을 부른다. 바로 "Being Alive." 살아있다는 것. https://youtu.be/eBBPKedba5o


찰리 역을 맡은 애덤 드라이버가 노래까지 잘할 줄이야. 이 [Being Alive]라는 노래는 역시 결혼의 다양한 상황을 소재로 한 뮤지컬 [컴퍼니](Company)의 넘버. 이 노래의 가사와 영화의 내용이 절묘하게 섞이면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니콜도 노래를 부른다. 역시 뮤지컬 [컴퍼니](Company)의 넘버인 [You Could Drive A Person Crazy]를 엄마와 언니와 함께 율동까지 하면서 부른다. LA의 가족과 친구들이 모두 모인 하우스 파티에서. https://youtu.be/1g8wjKTkItY


그러니까 이 두 장면은 다른 듯 보여도 사실은 이어져있다. 이제 결혼이라는 막이 내렸고, 새로운 막이 열렸다. 이 과정은 찰리와 니콜 두 사람 모두에게 고통이었고 또한 성장이었다. 


결혼이 그랬듯 이혼은 모든 것을 바꿔버렸지만, 변하지 않고 변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아들 '헨리'의 존재이다. 헨리 덕에 둘은 서로의 성장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찰리와 니콜은 할로윈데이 놀이로 지친 아들 '헨리'를 안아주면서 간접적인 포옹을 한다. 이렇게 아들 '헨리'가 이 두 사람을 이어주는 유일한 매개가 되었다.


다시 영화의 첫 장면으로 돌아가서. 찰리와 니콜은 이혼 준비를 위한 절차인 듯 보이는 상황에서 서로의 장점에 대하여 쓴 글을 관객에게는 나레이션으로 읽어주지만 정작 극 중의 서로에게 들려주지는 않는다. 니콜이 자신이 찰리에 대해 쓴 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읽지 않겠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관객에게도 다 읽어준 게 아니었다. 뒷내용이 생략되어 있었다.


영화의 마지막. 찰리는 헨리를 통해 우연히 니콜이 쓴 찰리의 장점에 관한 글을 읽게 되고, 이때 관객도 영화의 첫 장면에서 니콜이 차마 읽지 못한 뒷부분의 내용을 알게 된다. 결국 이혼하게 된 이 부부가 어떻게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미 이혼을 결심한 상황에서도 니콜의 진짜 마음은 무엇이었는지, 이 편지글을 통해 알게 된다. 아, 이 장면은 정말... 그러나, 이제 와서 다 무슨 소용이랴.


니콜은 찰리를 사랑하는 마음을 멈출 수 없지만 결국 이혼을 했고, 찰리는 자신의 전부와도 같아 절대 포기할 수 없을 줄만 알았던 자신의 극단과 뉴욕을 떠나 LA에서 자리를 잡고 새 출발을 해보려 한다. 그렇게 가족에서 남이 되었지만 가족이었던 남의 관계로 니콜, 찰리 그리고 헨리는 살아간다.


@ IMDB


조금 촌스럽기는 하지만, 이 영화의 메세지를 한 번 생각해보자. 뭘까? 결혼은 미친 짓이다. 이혼은 더 미친 짓이다? 찰리와 니콜은 이혼하고 서로를 더 인정하고 더 연민하고 더 격려하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좀 더 나은 인간들이 되었고 좀 더 멋진 어른이 되었다. 그게 참 신기하지 않은가.


그러니까 결혼이고 이혼이고 어떤 선택이고 결론이고 간에 인간사 모든 일은 우리를 성장시키고 성숙시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가능한 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 당연하고 따분한 메시지를 부부의 일이라는 매우 사적인 소재를 갖고 섬세하고 따뜻하고 유머러스하면서 진지하게 그려냈으니, 좋은 평가를 아니 줄 수 없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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