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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박세희 Sep 14. 2018

일 가정 양립? 가정이 무너지면, 일도 무너진다

Emi, ⟪나는 오늘 책상을 정리하기로 했다⟫ (2018) 를 읽고.

원래 ‘정리’ 책을 좋아한다. 너저분한 일상을 한 큐에 정리하는 궁극의 비기 같은 것은 세상에 없다는 것을 알지만, 여전히, ‘오, 이 방법은 한 번 써먹어봐야겠다’, 싶은 소소한 팁 한 두 개 정도는 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부류의 책들 사이에서 이 책은 조금 특별하다. ‘워킹맘’ 저자가 ‘워킹맘’ 독자를 생각하고 썼다. 책상, 생각 정리를 통해 무언가를 더 효율적으로 바꿔야 하는 이유가 더 명확해진다. “책상과 생각을 정리하면 업무시간이 줄어들고, 그 대가로 가족과 보내는 소중한 시간이 주어진다.”


저자는 수납 정리 어드바이저로서 관련 교육, 컨설팅 및 수납 용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OURHOME의 대표이다. OURHOME은 스태프 전원이 워킹맘으로서 단축근무, 재택근무 등 여러 근무형태로 함께 일하고 있다. 일하는 방식도 ‘일 가정 양립’을 중시한다.


상사도, 같은 팀 팀원들도 워킹맘. 그러므로 모두 시간에 대해서 엄격하고 합리적입니다. 아이가 아프다던지 해서 아침에 갑작스럽게 내는 휴가는 전원에게 메일로 보고합니다. (128쪽)

갑작스럽게 휴가를 내더라도 업무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책상은 잘 정리하고 현재 진행 중 박스 하나만 놔둡니다. 이렇게 하면 필요한 서류가 있는 곳을 전화로 간단히 설명할 수 있습니다. (129쪽)


이 책의 백미는 실제 워킹맘들이 일과 가정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를 어떤 시간표로 살아내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자신만의 업무 규칙, 생활 노하우를 공유하는 취재파일 편이다. 다들 꽉찬 하루를 살고 있었고 일, 가정 양쪽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아내가 육아휴직을 하고 있던 시절, 약간 늦어진 퇴근시각에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뛰어가던 날, 사무실 근처 고깃집 술집에서 부어라 마셔라 신나게 먹고 마시고 있는 한 무리의 ‘아저씨들’을 본 적이 있다. 예전에는 쉽게 이해가 되던 그 장면이 그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 저기 저 사람들도 가족이 있을텐데, 어쩌면 아직 어린 자녀가 있고 그들을 혼자 돌보며 힘겨워 하는 아내가 있을텐데, 그리고 그들을 보고 싶어서라도, 아내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빨리 집에 가고 싶을텐데, 저 회식은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일까.


(물론, 그들에게 가족이 없을 수도 있다. 아내가 없을 수도 있고, 아이가 없을 수도 있다. 가족들이 안 보고 싶을 수도 있고, 아내의 짐을 덜어주지 않고 싶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그 회식이라는 게 무려 10년 만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회식일 수도 있다.)



‘일 가정 양립’이라는 목표는 일하는 엄마들이 지금보다 더 바쁘게 산다고 달성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렇게 해선 오래 지속할 수 없다. 일 가정 양쪽에서 과로하는 엄마들은 결국 병이 나서 쓰러질 것이다. 우리의 어머니들처럼.


아빠들을 집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아빠 육아휴직을 의무화하든, 육아기 단축근무를 허용하든 말이다. 기본적으로 정시퇴근을 하고 불필요한 저녁 모임을 만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혼자 사니까 집에 일찍 갈 필요 없지? 야근이나 더 해.”라고 말하는 상사에게 “저는 1인 가구이기 때문에 제가 집에 가지 않으면 가정이 무너집니다. 퇴근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는 용자의 이야기를 읽었다. (트위터에 돌아다니는 것이므로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 


나는 그게 꼭 ‘1인 가구’에 국한될 이야기일까 싶었다. 아빠든 엄마든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가정은 곧 무너진다. 가정이 무너지면, 일도 함께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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