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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박세희 Mar 19. 2020

둘째가 태어나던 날의 기록

뽐뽐아, 100일 축하해!

며칠 전, 둘째 뽐뽐이가 생후 100일을 맞았다.


명색이 육아 에세이 브런치인데, 둘째 뽐뽐이의 탄생 및 그 이후에 관한 기록이 소홀했다. 반면, 첫째 총총이에 대해서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이것저것 시시콜콜 적어왔다: https://brunch.co.kr/magazine/lawyerdaddy


나도 집안의 둘째이지만, 둘째들은 그런 대우를 받는 게 자연스럽다. 부모 입장에서 육아의 신비와 새로움은 첫째를 키우며 거의 다 경험한다. 둘째를 각별히 더 챙겨야 할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둘째에 대한 관심은 첫째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적을 수 밖에 없다.


심지어 둘째 아이 출산을 앞둔 부모가 하는 걱정  하나가 ‘어떻게 하면 첫째 아이가 받게  충격을 줄일  있을까같은 것이다.


첫째 총총이가 태어난 이후, 우리 부부는 둘째를 가질 이유를 찾지 못했다. 또 한 번의 임신과 출산을 겪어야 할 명분을 생각해내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첫째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도 아내와 나는 행복했다. 아내와 나, 둘이서도 완전하고 충분하다고 느꼈다. 첫째 아이가 태어나고 한동안은 육아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다시 균형점을 찾은 듯한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안정감에서 벗어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사람들이 둘째를 갖는 이유가 궁금했다. 아이 둘 있는 친구들에게 물어봤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에이. 그래도 애가 둘은 있어야지.” 이런 반응이 다수였다. 아, 다들 별 이유 없이 그렇게 사는구나.


아이를 갖는데 명분과 이유가 필요하지는 않다. 언젠가 아내는 내게 이렇게 얘기했다: “첫째 총총이가 너무 이뻤어. 너무 사랑스럽고. 그래서 이 세상에 그렇게 사랑스러운 생명체가 또 있으면 좋겠다. 그 정도는 생각한 적이 있어.” 아하. 이것도 결국 첫째 때문이구나.


다시 원래 쓰려던 글로 돌아와서, 아래부터는 둘째 뽐뽐이가 태어나던 날의 메모를 옮긴 것이다. 이 메모를 읽을 때마다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2019년 11월 모일


4:00 am.

아내가 나를 깨운다. 아내는 샤워를 하고 나와 옷을 입고 있었다.

“오빠. 나 양수 새는 것 같아. 병원 좀 다녀올게.”

뭐? 뭐라구? 뭐가 이렇게 차분해!!!


타다 불러서 혼자 병원에 간 아내와 계속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

양수가 맞는지 검사를 하기 위해 기다린단다.

나는 집안일을 시작했다.


5:05 am.

아내의 전화. 양수가 맞단다. 오늘 나올 것 같다고.

차로 1시간30분 거리에 사시는 장인어른께 연락.

나도 씻고, 아침 먹고, 첫째 총총이의 짐을 챙긴다.


이런 상황을 알리 없는 첫째는 곤히 잘도 잔다.

장인어른 오시기 전에 일어나야 소변도 보고 아침도 먹고 할텐데.


7:35 am.

장인어른 도착 직전에 첫째 기상.

소변 누고 간식 준비하는 중에 장인어른 도착.

카시트 옮겨 설치하고 차에 태우며 빠빠이.

곧 동생이 나오고 그때 너는 할머니 할아버지댁에 며칠 가 있어야 한다고

반복해서 설명했던 터라 이 과정이 매우 순조롭게 끝났다.

며칠 뒤에 만나요.


병원 가던 길의 풍경. 휴일 아침이었다.


8:30 am.

아내가 몇 주 전에 싸둔 출산가방을 들고 나도 병원으로 이동.

절대 긴장한 티를 내지 말자. 절대. 절대. 절대... 되뇌이며 왔는데,

의료용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아내 모습을 보니 눈물이 핑 돈다.

아내는 무통주사 맞으러 가고, 나는 입원수속을 했다.

휴일 병원은 무척 한산하다.


9:47 am.

가족분만실로 이동. 가족분만실로 와서 내가 처음 한 일은 모기 잡기.

아내는 모기를 싫어하십니다. 무통주사 맞으러 간 아내는 언제쯤 돌아오실까나.


10:45 am.

아내가 분만실로 돌아왔다.

간호사 왈, “둘째라서 진행이 빠를 거에요.” 아내가 숨을 고른다.

아내는 나에게 진즉 경고했다.

“오빠. 진통 오면 진짜 죽을 거 같거든? 그러니까 아무 말도 하지마.”

명심하자. 많이 아파? 괜찮아? 이런 거 묻지 말자.

당연히 아프고, 당연히 안 괜찮다.


12:05 pm.

진통을 참던 아내가 무통주사 첫 클릭. 

이때부터 1시간 간격으로 버튼을 눌렀다.


1:19 pm. 

유도분만을 중단했다.

아내가 산소 호흡기를 썼다.


1:24 pm.

빨리 진행시켜야 한단다.

아이가 탯줄 감고 있는 것 같다고.


2:33 pm.

아이가 많이 내려왔다.

“힘 한 번 줘보세요.”


2:45 pm.

긴 기다림이 끝났다. 아내와 아이 모두 건강하다.

분만실 앞에서 왔다갔다 마음을 졸이며 했던 간절한 기도를 기억하자.

배우자로서 아버지로서 제 역할을 다 하자.


오늘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분만실에서조차 우아했던 아내의 모습.

정말 멋있었어, 여보... 잘 낳아줬으니 내가 잘 키워볼게!!!


저녁으로 치킨을 먹은 다음,

아내는 “오빠. 이제 자자.”하고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 세상에 새 생명을 나게 했으니, 오늘 하루가 얼마나 고되었을까.

아이가 둘. 이제 우리는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데 두 배의 책임이 있다.

두 배의 관심과 두 배의 실천, 두 배의 노력.



그날의 다짐처럼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데 두 배의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말할 자신은 없다.


사람들이 묻는다. 애 하나와 애 둘은 어떻게 다르냐고.


두 배로 힘들다. 그리고, 백 배로 행복하다. 첫째와 둘째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볼 때 느껴지는 행복감은 정말 크다. 내가 이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아빠라니. 그런 생각이 든다. 그저 감사하다.


생후 100일, 둘째 뽐뽐이는 모두의 무관심 속에 혼자 알아서 잘 자라고 있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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