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 하나 더 먹겠다고 거짓말을 하냐...
연일 더운 날씨였다. 몸에 열이 많고 땀을 많이 흘리는 총총이는 아이스크림을 정말 좋아한다.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도 무한정 먹게 할 수는 없으니, 하루에 1개 이상 먹지 않기로 제한을 두고 있다. 물론 부모인 나와 아내가 일방적으로 정한 것이다.
오전에 아이스크림 1개를 해치었던 총총이는 오후가 되자 아이스크림을 하나 더 먹고 싶은 마음이 생겼나보다. 대뜸 아이스크림을 먹겠다며 냉동실 문을 여는데 아내가 "아까 아이스크림 1개 먹었잖아. 그러니까 오늘은 참아보자."하고 막아섰다.
보통 이런 경우 총총이의 반응은 "그래도 1개만 더 먹을게요!"하며 씩씩하게 말하거나 "그래도 1개 더 먹고 싶단 말이야!"하며 자리에 주저앉아 떼를 쓰거나 인데, 이번엔 좀 달랐다. 시치미를 뚝 떼더니 "응? 나 아까 아이스크림 안 먹었는데?" 한다.
아내는 "총총아. 아까 오전에 OOO 1개 먹었잖아. 기억 안나?" 하고 물었다. 총총이는 "응. 기억 안나. 나 진짜 안 먹었는데?"하고 답했다. 이런 대화가 몇 번 오고 갔다. 내가 "총총아. 쓰레기통을 열어서 확인해볼까?" 정도로 구체적으로 추궁했는데도 여전히 "나는 모르겠다. 먹은 기억이 없다."로 일관되게 부인했다.
아내와 나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눈빛을 교환했다.
아이의 거짓말. 나는 이 순간이 언제고 올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 총총이는 이제 만 3세 9개월이다 -- 올 줄은 몰랐다. 물론 예전에도 장난처럼 거짓말을 하곤 베시시 웃으면서 바로 정정을 했던 적은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명백한 거짓말을 오래 반복적으로 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내는 "총총아. 거짓말은 나쁜 거야. 거짓말 하면 좋지 않아."라고 원칙을 강조했지만, 총총이는 "거짓말 하는 게 아니고, 정말 기억이 안 난다니깐." 하고 응수했다. 그래, 기억이 안 난다는데. 참 할 말이 없었다. 명시적이고 적극적인 거짓말은 아니지만, 질적으로는 더 나쁜 거짓말이었다.
나는 총총이를 안고 장난을 치면서 "어디 총총이 배를 열어볼까 아이스크림이 있나 없나" 하고 웃으며 넘어가보려고 했지만 총총이가 "아니야. 나 진짜 안 먹었어. 기억이 안 나." 하며 정색을 한다. 이렇게 되니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갈지 살짝 고민이 됐다.
거짓말은 나쁘다. 부모인 우리는 거짓말이 나쁘다는 걸 총총이에게 설명해왔고, 총총이도 거짓말이 나쁘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러므로 거짓말이 나쁘다, 나쁜 짓을 하면 혼이 난다, 너는 지금부터 혼이 날 것이라고 반복적으로 말을 해봐야 달라질 건 없을 것이었다.
그렇다. 인간은 모두 거짓말을 한다. 아빠인 나도 과거 거짓말을 했고, 지금도 가끔씩 하고, 앞으로도 종종 하게 될 것이다. 총총이도 거짓말을 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거짓말을 하는 건 상당한 에너지와 비용이 드는 일이다. 그것까지 총총이에게 말로 설명하기란 정말 쉽지 않은 과제처럼 느껴졌다.
결과적으론 잘 해결(?)되었다. 총총이는 아내와 나에게 아까 한 말은 거짓말이었고, 거짓말을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당연히 2개째의 아이스크림도 맛있게 먹었다. 오늘은 이렇게 해결되었지만, 앞으로 또 거짓말을 하긴 할 것이다. 다시는 거짓말을 못하도록 혼쭐을 내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좋은 훈육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살벌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목소리를 높이고, 협박을 하는 방법에 대한 나의 생각은 시간이 갈수록 더 부정적이 되었다. 이번에 나는 최대한 다정하게 타이르는 방법을 써봤다. 계속해서 모른다고 잡아떼는 총총이를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이런 말을 해줬다:
총총아. 지금 아이스크림 무지 많이 먹고 싶지~?
총총이가 거짓말을 했건 거짓말을 하지 않았건 아빠는 아이스크림을 먹게 해 줄 거야.
지금 덥고 총총이가 아이스크림 많이 먹고 싶어하잖아. 알지, 그 마음. 아빠도 알지.
엄마랑 아빠가 아이스크림 많이 못 먹게 하는 이유는 알지? 감기 걸리고 이도 썩으니까.
총총아. 거짓말을 하는 건 나쁜 게 아니야. 거짓말 할 수도 있지.
아빠도 어릴때 할아버지 할머니께 거짓말 많이 했었어.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마 아빠가 거짓말 한 거 알고 계셨을 거야.
그런데도 모른 척 속아주셨던 같아. 아마 아빠를 많이 사랑해서 그러셨겠지?
정작 아빠는 마음이 불편했어. 지금도 후회해. 거짓말 한 걸 많이 후회해.
그냥 아이스크림 하나 더 먹고 싶으면 하나 더 먹고 싶다고 이야기하면 되는데,
굳이 거짓말까지 해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속였던 게 아빠는 정말 마음이 불편했었어.
총총아. 거짓말은 할 수 있어. 거짓말은 나쁜 거야.
진짜 나쁜 건... 거짓말을 하고도 그걸 인정하지 않는 게 진짜 나쁜 거야.
알지. 거짓말을 한 번 하면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도 잘 알지.
알지. 거짓말을 했다고 인정하고 사과하고 반성하는 게 어렵다는 것도 잘 알지.
거짓말을 했다고 인정하고 사과하고 반성하는 건 아마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야.
아빠는 총총이가 용기를 낼 수 있다고 믿어. 총총이에게 용기가 있다고 생각해.
어때, 총총아? 아빠 얘기 이해하겠어?
아이도 거짓말을 한 걸 후회하고 있지 않을까. 그렇지만 자존심 때문에 그걸 인정하고 사과하는 게 쉽지 않은 게 아닐까. 그 상황에서 계속해서 대립을 하면 갈등의 골만 더 깊어지는 것이 아닐까. 퇴로를 열어두고 그쪽 문으로 나가도록 열어주는 게 오히려 나은 방법이 아닐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어른인 나 역시 그러하니까. 어른도 아이도 다르지 않다. 아이가 조금 더 미숙한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어른에게 미숙한 부분이 아예 없는 것은 또 아니다. 어른도 아이도 계속해서 배우고 더 성장하는 존재들이다. 그 배움과 성장을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건 없을 것이다.
아이의 거짓말 --- 어떻게 대응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까? 모르겠다. 다시는 거짓말을 할 엄두가 나지 않도록 혼을 낸다? 그게 맞는 방법인지도 잘 모르겠다.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드는 게 제일 좋지 않을까? 그리고 거짓말을 하더라도 빠르게 인정하고 번복할 수 있는 분위기라면 더 좋지 않을까?
오늘도 아빠의 육아일기는 답이 없이 끝맺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