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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chpapa Aug 13. 2021

아이들의 올림픽은 계속 된다

스포츠는 정말 좋은 놀이이자 교육

2020 도쿄 올림픽이 끝났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개최가 1년이나 미뤄졌고, 기간 중에도 적지 않은 논란이 있었고, 무엇보다 관중이 없이 진행되었지만 올림픽은 역시 올림픽이었다. 나에게 이번 올림픽이 특별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첫째 아들 총총이(만 4세)가 올림픽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시작은 여자배구 경기였다. 집에서 티브이를 보는 일이 좀처럼 없는 아내와 내가 티브이로 여자배구 4강전 중계를 시청하며 격한 반응을 보이자 같이 있던 총총이도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듣자 하니 어린이집에서 선생님과 친구들과 올림픽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단다.


아, 이제 총총이도 올림픽을 알 나이가 되었구나. 우리는 함께 티브이로 배구 선수들의 엄청난 점프와 재빠른 수비 움직임 그리고 호쾌한 스파이크를 보면서 감탄을 했다. 경기는 졌다. 아쉬웠지만 짜릿한 승부였다. 총총이도 그 경기를 인상적으로 봤는지 틈만 나면 우리도 올림픽을 하자고 했다.


풍선 배구 놀이 하는 총총이


그 뒤로 몇 번 집에서 풍선을 갖고 풍선 배구를 했다. 총총이는 그걸 "올림픽"이라 불렀다. 풍선 배구를 하고 싶을 때마다 나에게 "아빠. 우리 올림픽 하자."고 한다. 풍선 배구 놀이는 움직일 공간만 확보하면 다칠 일도 없고 격해질 일도 없는 놀이라서 부담 없이 하기에 좋다.


그런 풍선 배구 놀이라도 스코어를 따지기 시작하면 진지해진다. 그냥 해도 될 것을 총총이는 꼭 지금 몇 대 몇이냐고 묻는다. 정확한 점수가 중요하다기보다 본인이 이기고 있는지 지고 있는지를 궁금해한다. 귀엽지만 성가시다. 나는 그다지 져 줄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웹에서 아빠들의 과도한 승부욕을 희화화한 밈(meme)을 종종 본다.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좀 져주면 어때서 어른이 되서 아이 같이 그러냐는 핀잔이 담겨 있다. 그런데 내 생각은 다르다. 일부러 져준다? 그건 스포츠에 대한 모독이다.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무엇보다 아이가 승패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배우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I win because I win.


어제 저녁, 나와의 풍선 배구 놀이에서 연거푸 패배한 총총이는 급기야 눈물을 보였다. 재밌게 했고 즐겁게 놀았고 몇 번의 멋진 플레이를 했음에도 그저 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울었다. 나는 경기에 져서 우는 건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분하고 아쉬우면 울 수도 있다.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달랬다. 잘 하고 싶으면 연습을 더 해보자, 라면서.


하지만, 감정이 격해진 총총이는 들고 있던 풍선을 선풍기 쪽으로 던지며 (그래봤자 풍선이라 다른 곳으로 날아갔고) 발을 구르며 짜증을 냈다. 나는 그건 용납할 수 없었다. 나는 져서 우는 건 괜찮지만 비신사적인 행동을 하는 건 안 된다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총총이의 감정이 수그러든 다음에 차분히 타일렀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어쨌든 총총이는 울음을 그쳤다.


체스 챔피언이자 태극권 대회 우승자인 조시 웨이츠킨이 쓴 ⟪배움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읽은 대목이 생각났다(아래 인용). 이 책을 읽은지 10년도 넘었지만 아직도 나는 이 문장이 생생하다. "승패 따위는 중요치 않다고 말하지 말라. ...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라면 왜 그토록 이기려고 안간힘을 썼단 말인가?"


    대니가 시합에 지는 날에는 좀더 복잡한 상황이 연출된다. 지금 아들은 눈가에 눈물을 글썽인 채 경기장을 빠져나온다. 최선을 다했지만 시합에 졌다. 어머니는 이 순간 아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승패 따위는 중요치 않다고 말하지 말라. 대니는 승패가 중요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위로한답시고 그렇게 말했다간 도리어 고통만 가중시킬 뿐이다.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라면 왜 그토록 이기려고 안간힘을 썼단 말인가? 왜 체스를 공부하고, 경기에 참가하려고 아까운 주말을 낭비했단 말인가? 시합의 결과는 중요하고, 대니도 그것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함께 공감하는 게 문제해결의 시발점이다.
...
    그 상황에서는 대니를 따뜻하게 껴안아줄 필요가 있다. 아들이 울고 있다면 실컷 울도록 어깨를 빌려주고 “아들아, 네가 자랑스럽다”라는 격려가 필요하다. 때론 슬픔을 마음껏 표현해보라고 말하는 것도 좋다. 실망은 영광을 얻는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다. 대니가 흥분을 가라앉히면 살짝 그에게 경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라. 그러면 대니는 그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왜 집중하지 못했지? 너무 과신했나? 너무 성급하게 말을 움직였나? 옆사람 소리에 정신이 산란해졌나? 너무 피곤했나? 이런 질문들을 통해 대니는 자신의 실수가 심리적인 결함에 있다는 걸 깨닫고 극복하기 위한 훈련에 몰두하게 될 것이다.


조시 웨이츠킨, 배움의 기술


2020 도쿄 올림픽은 끝났지만 아이들의 올림픽은 계속 된다. 스포츠를 통해 경쟁하고 승리와 패배를 경험하고 승리를 기뻐하되 패자를 위로할 줄 알고 패배를 슬퍼하되 위엄을 잃지 않는 법을 배우게 되리라 기대한다. 나 역시 아빠로서 패배에 슬퍼하는 아들을 세련되게 격려하는 법을 배워야겠다.


앞으로도 일부러 져 줄 생각은 추호도 없고, 한동안은 계속 내가 이기게 될 것이므로.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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