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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박세희 Nov 23. 2021

할리갈리 한 판에 울고 불고 — 잘 지는 법을 가르치기

브런치 글 몇 달만에 발행한 김에 하나 더.


며칠 전 총총이가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할리갈리를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총총이와 같이 보드게임 하는 게 버킷리스트였던 나는 (우리집 구매담당인) 아내에게 부탁해서 할리갈리를 샀다.



할리갈리란? 1990년에 발매된 보드게임으로 과일 모양 카드를 한 장씩 뒤집어서 펼쳐진 카드 앞면에서 같은 과일이 5개가 되면 먼저 종을 친 사람이 펼쳐진 카드를 다 갖고,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이 이기는 게임. 규칙을 이해하기 쉽고 빠르게 진행된다는 장점이 있다.


내가 낼 차례 - 종을 칠 준비하는 총총이


총총이와 할리갈리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같이 게임을 하다보면 아이와 ‘트래시 토크’ 비슷한 걸 하면서 대화를 많이 나눌 수 있어서 좋다.) 총총이가 어린이집에서 할리갈리를 할 때마다 친구들보다 손이 느려서 1등을 하지 못해서 자주 속상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린이집에서는 할리갈리 게임에 참가하기보다는 심판 역할을 자처한다고 하고, 그러는 걸 나와 아내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나와 아내가 그 사실을 알면 가슴이 아플까봐. 그러나 총총이가 미처 몰랐을 것이다. 나는 이미 총총이가 그런다는 걸 알고 있었고, 총총이 성격상 그걸 내가 알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는 걸.


정말이지 아이들은 이기고 싶어한다. 이기는 게 얼마나 좋으면 자기가 불리할 때 게임을 중단하거나 룰을 바꾸거나 상대를 방해하기까지 한다. 아니 더 정확히는 지고 싶지 않은 거 같다. 졌을 때의 패배감과 실망감이 너무나 큰 것이다. 아마 어릴 때의 내 모습도 지금의 총총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기는 것도 습관이라고, 이겨 본 사람이 또 이길 수 있다는 말이 있지만, 아빠로서 나는 이기는 법보다 잘 지는 법을 알았으면 한다.


한 번의 게임에서 이기는 것보단 작은 게임에서 몇 번을 지더라도 더 큰 게임에서 이기는 법을 배웠으면 한다. 지더라도 깔끔하고 매너있게 진다면 그건 또 다른 층위의 게임에선 이긴 것이나 마찬가지다. 질 것이 두려워서 아예 도전을 않는 건 당장의 게임에선 패배하지 않았지만 더 큰 게임에선 진 것이다. 패배보다 더 나쁜 패배이다. 


이겼을 때도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되 패배한 상대방을 배려할 수 있는 넉넉함을 가졌으면 한다. 이건 좀 더 어렵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반드시 갖추어야 할 자세이다. 이제 겨우 할리갈리를 시작한 아이에게 바라는 게 너무 많지만 하나씩 차근차근 해나갈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같이 할 게임이 무궁무진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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