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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박세희 Apr 13. 2022

자책을 하고 반성을 해도 달라지지 않는

나는 그렇고 그런, 평범한 보통의 아빠라는 걸 받아들이는 과정

참 이상하다. 포기를 하니까 오히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나도 화가 나면 화를 낼 수 있고, 짜증을 낼 수도 있는 사람이다. 그걸 받아들이는 게 왜 이리 어려웠을까.


이건 나 자신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는 것일까. 그러니까 다른 말로 하면 후퇴한 삶일까. 어쩌면 이런 걸 따지는 것부터가 아직 충분히 내려놓지 못했다는 뜻이려나.


이렇게 읽기에 불편한 글, 독자에게 불친절한 글을 쓴다는 것도 내게는 모험이다. '사람들이 이 글을 이해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지만 일단 쓰고 있다.


지난 글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갖게 된 기대를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고 썼다. 내 의지로 갖게 된 것이 아니라 내려놓는 것도 내 의지로 어찌할 수는 없다고 썼다.


하물며 나 자신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는다는 게 어찌 마음대로 될 수가 있을까.


자책을 해도 반성을 해도 달라지고 나아지는 게 없었다. 자책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반성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그래,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나로선 다른 방법을 못 찾겠다.


게다가 자책을 하고 반성을 하는 과정 자체가 위선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용서한 적이 없는데 스스로를 면죄하는 듯한 자신이 가증스러웠다.


Photo by Priscilla Du Preez on Unsplash


밖에서 참 좋은 아빠라는 이야기를 들은 날에는 내적 갈등이 더욱 심해졌다. 아, 그게 아닌데..., 나는 내가 아는데... 그리고 우리 아이들도 나를 좋은 아빠라 생각하지 않을텐데...


나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라는 말... 내게는 참 어려웠다. 아무도 모르는 나의 후진 모습이 있는데, 어떻게 이런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이런 나 자신을 사랑한다고 당당히 말할 정도로 뻔뻔하진 않은데...


그러다 갑자기 어느 순간. 아, 그래도 괜찮구나... 다 내려놓듯 해도 괜찮구나. 변화에는 에너지가 필요한데, 무언가를 탁 놓아버림으로써 그 에너지를 찾을 수도 있구나... 하고 느껴지는 지점이 있었다. 


타인으로부터 아무리 좋은 말을 들어도 내가 나 자신을 인정할 수 없을 때는 그 격차에 더욱 괴로운 것이었다. 결국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가 중요했다.


우리 아이들은 어땠으면 좋겠는지 생각해봤다. 화도 잘 다스리고 짜증도 참을 줄 아는 너르고 훌륭한 사람이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어도 뭐 어떻겠는가 싶다. 화가 나면 화도 좀 내고 짜증도 부리고 그러면서 사는 거지... 그걸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는 거라고 이야기하는 건 좀 가혹하지 않은가?


나는 우리 아이들이 화도 좀 내고 짜증도 좀 내면서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을 가학하며 사는 건 원치 않는다. 


타인에게 관대하고 스스로에게 엄격하라? 반만 맞는 말이다. 그냥 타인에게 관대하고 스스로에게도 관대한 게 낫다. 


그러니까 나도 그래도 괜찮다. 그냥 화도 내고 짜증도 내자. 나는 그렇고 그런 평범한 보통의 사람이다. 


다만,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현명하게 화를 내고 센스 있게 짜증을 내는 법을 터득하자. 내가 남달라서 그렇게 해야하는 게 아니라, 단지 아이들과 조금 더 사이좋게 지내기 위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서.


아, 나는 어쩌자고 아빠가 되어버려서... 그래도 아빠가 되니 하나의 잣대가 더 생겨서 좋다. 나의 아이들은 어떻게 살기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나는 그렇게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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