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내가 부럽다. 왜냐? 아내는 열심히 산다.
열심히 살면 결과가 좋은가.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열심히 살면 그 자체로 충만한 삶이 된다.
그리고 그건 자기 자신에게 좋은 피드백이 된다. 내가 나 자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근거가 된다.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야, 라고 생각하게 된다.
객관적인 사실이 어찌 되었든 자기 자신이 그렇게 생각함에 있어 떳떳할 수 있다. 그게 자기 자신에게 또 한 번 좋은 피드백이 된다.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좋아하게 된다.
이게 바로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가장 중요한 보상이다.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그런 자기 자신을 좋아하게 된다.
난 그럴 만한 사람이야. 이게 자존감의 근거다. 이처럼 건강한 자기 인식은 결국 작지만 무엇이든 스스로 열심히 해보는 것에서 온다. 자기가 만족할 만큼의 노력이 결과와 무관하게 자기 자신에게 좋은 피드백이 된다.
딱 하나 걱정되는 건 가끔 그 열심이 지나쳐서 무리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무리를 하면 아무리 건강하고 자기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라도 지치고 아프고 다친다. 그게 유일한 걱정이다.
나는 아이들이 아내를 닮았으면 한다.
나는 요즘 내가 나 자신을 좋아하지 않고 있다고 여긴다. 우스운 건 그렇게 인식하는 나 자신이 싫다는 것이다. 이중의 형벌이다. 스스로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한다는 게 첫 번째 형벌고, 그런 인식을 하는 나 자신이 못난 것 같이 느껴지는 게 두 번째 형벌이다.
앞서의 글에서도 썼듯이 나는 나 자신에 대한 기대가 높다. 밖에서 어떻게 보든 나는 지금보다 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길 바란다.
근거 없는 우월감의 발로일 수도 있다. 나는 남과 다르다. 이 정도로 그치면 좋은데, 나는 남보다 나아야 한다. 까지 가니까 문제다. 남보다 낫고 싶은 마음도 어쩌면 나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부족해서일지도 모르겠다.
가끔 아이들의 눈으로 아빠인 나를 바라본다. 계기가 있다. 첫째 아이가 미술학원에서 아빠 얼굴을 그려왔는데, 그 얼굴 속의 눈이 굉장히 부리부리하게 그러져 있다. 사실 내 눈은 그렇게 크지가 않다.
웃는 얼굴이라는데... 어딘가 무섭고 불쾌한 얼굴이다.
누군가의 눈을 이렇게 크고 부리부리하게 표현한다는 건 그 사람이 항상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뜻이라는 걸 어디선가 읽었다. 그 해석이 맞든 틀리든 상관없이 나는 그 해석에 가슴이 뜨끔했다.
그때부터 아이들의 눈으로 아빠인 나를 바라봤다. 나는...
확실히 기분파다. 기분이 좋을 땐 아이들에게 정말 잘 해주지만, 수가 틀릴 땐... 나라도 나는 나 같은 아빠와 함께 살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잔소리가 많고 성격이 급하다...라고 아이들이 느낄 것 같다. 1초가 아쉬운 아침, 두 아이를 등원시키고 출근을 하려면 어쩔 수가 없다고 변명해보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잘 안다. 30분만 더 부지런하면 되는 일인데, 그게 안 되어서 아이들을 재촉하고 성화를 낸다.
주말엔 조카들의 눈으로 이모부인 나를 바라봤다. 놀아줄 때는 즐겁게 신나게 놀아주지만... 아이들의 타고난 성정에 맞게 대해주지를 못한다. 나는 아이들을 넘어서 조카들에게까지 엄격한 잣대를 요구하는 사람이다. (허, 참... 헛웃음이 난다.)
또 한 번 나의 부모님 핑계를 대본다. 우리 부모님도 비슷했다. 매사에 웃고 너그러운 친척 어른은 아니었다. 따뜻했지만 엄했다. 가족 모임을 하고 귀가할 때면 그날 있었던 일을 돌아보시며 누나와 나에게도 예의를 잘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차 뒷자리에 앉아 부모님이 나누는 이야기를 엿들으면서 나는 나의 가치관을 형성했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글에서도 썼지만 망치를 들면 모든 게 못으로 보인다고 한다. 나는 어른으로서 아이들의 모든 걸 교정해주고 싶은 모양이다. 교정을 한다는 건 옳고 그름과 좋고 나쁨이 전제되는 것이다. 맞다. 나는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 저렇게 하면 안 된다, 라는 관념이 뚜렷하다. 막상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나 자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나 자신을 마냥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못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런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아내 그리고 아이들은 나를 보고 어떻게 생각할까. 이럴 것 같다: 오빠는/아빠는 대체 왜 저럴까...???
그러게 말이다.
아, 나는 어쩌자고 아빠가 되어서... 그래서 나 자신을 이렇게 조각 단위로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