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잘 해주지 못해서가 아니다. 실제로 잘 못 해주고 있다.
아빠가 되고 보니,
더 잘 해주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가 아니다. 실제로 잘 못 해주고 있어서, 미안하다.
어제도 화를 내고 말았다. 아이가 입에 머금고 있던 약을 바닥에 주르륵 뱉었다. 실수로 그런 건 아니고 일부러 그런 거다. 요즘 잇솔질 하고 입을 헹구고 뱉는 연습을 하고 있는데 그런 느낌이었다.
설령 일부러 그랬다고 해도 그리 대단히 나쁜 행동은 아니었다. 그걸 그냥 넘기지 못하고 화를 낸 이 아빠가 잘못했다. 딱 한 번 분명하게 얘기하고 넘어가면 될 것을 몇 번을 더 불러서, 아빠 얼굴 봐, 약 뱉으면 안 돼, 알았어?, 약 뱉으면 안 돼, 알았어?, 얘기했다.
그냥 바닥을 닦고 잠옷 바지를 갈아 입히면 되는 일인데, 굳이 화를 냈고, 화가 난 티를 팍팍 냈다.
아이의 황당한 장난에도 그냥 웃어넘길 수 있는 넉넉한 아빠가 되고 싶다. 어제는 그러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미안하다. 아, 이제 이런 반성문은 그만 쓰고 싶다.
어린이집 선생님께 항상 감사하다. 다섯 분의 선생님이 모두 열다섯 명의 아이를 돌보시는데, 적응 기간 동안 가까이에서 지켜본 바로는 보통 일이 아니다. 매일 아이의 사진과 함께 장문의 알림장을 써주시는데, 읽을 때마다 얼마나 아이를 세심하게 돌봐주시는지 느끼고 있다.
어릴 적 어머니께서 선생님들께 작은 선물이라도 챙겨드리고 싶어 하셨던 그 마음을 이제는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직접 돌보기에도 힘이 부치는 내 ‘자식’을 대신 맡아주고 가르쳐주시니 얼마나 고마운가. 나도 선생님들께 뭐라도 드리고 싶지만 ‘절대 금지’라고 하니 알림장 답장이라도 정성들여 작성하고 있다.
더는 힘을 낼 수 없을 것만 같고, 그냥 퍼져 있고 싶은 때 조차도, 힘을 내야한다.
오늘은 새벽 5시에 일어난 아이를 다시 안아서 재우고 부엌으로 기어나와 어설픈 솜씨로 어묵볶음을 만들었다. 아내는 밤을 새고 7시에 들어와서 아침만 먹고 다시 나갔다.
감상에 빠져 있을 시간은 없다. 그럴 시간에 몸을 움직여야 한다. 더 잘 할 방법에 관하여만 생각한다. 동시에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덜 줄 방법에 관하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