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chpapa 총총파파 Sep 19. 2022

나는 살기 위해 먹는 부류의 사람이라

'죽기 전에 꼭 먹고 싶은 음식'

나는 살기 위해 먹는 부류의 사람이라서 배를 채우고 허기를 달래면 그만이다. 매 끼니 같은 음식을 먹어도 불만이 없다. 어찌 보면 둔감하달까, 무던하달까. 아무튼 나는 먹는 이야기에 별 관심이 없다.


추석이라 동두천 처가에 갔다가 보산동 '핫피자'가 유명하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서울에서 먹으러 올 정도란다. 나는 이 '핫피자'가 까무러칠 정도의 맛이길 바랐다. 그리고 죽기 전에 이 핫피자를 먹겠다고 쓰고 글을 마치고 싶었다.


나는 배달이 안 되고 포장은 되는 이 피자가게에서 15분을 기다려 피자 두 판을 받아왔다. 갓 구워서 뜨겁긴(hot) 했다. 하지만, 그냥 피자였다. 치즈가 듬뿍 올라갔지만, 그냥 피자였다. 이 글의 소재를 잃은 씁쓸함에 낮부터 캔맥주를 깠다.


애초에 죽기 전에 무언가를 꼭 먹겠다는 마음가짐 자체가 비현실적이고 불경한 것이란 삐딱한 결론에 이르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무엇을 드셨던가. 아무 것도 못 드시지 않았던가. 숨이 끊어지는 상황에 가족들의 귀에 대고 '촉촉하고 야들하게 삶은 돼지고기 수육이 먹고 싶구나' 하실 것도 아니었다.


낮에 맥주를 마신 탓에 집에 돌아올 땐 아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아내는 밤길 운전에 긴장한 기색이었다. 동부간선도로에 도봉지하차도가 새로 뚫려 있었다. 혈중에 알콜이 남아있던 나는 "여기 도로가 새로 생겼네"하고 조신하게 재잘거렸다.


대구에서 나고 자란 나는 아버지의 고향 광주에 가기 위해 명절 때마다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했다. 그 시절의 자동차 여행은 참으로 무료한 과업이었다. 우리는 라디오 하나 켜놓고 좀이 쑤시도록 앉아 있다가 운전대를 잡은 아버지 입에서 다음 휴게소에서 뭐 좀 먹고 가자란 말이 나오기 만을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휴게소에선 우동을 먹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우동을 먹으면서도 귀성길 정체 전망과, 이동 경로 수정 방안과, 예상 소요 시간과, 과속 단속 경찰의 위치 예상에 관한 이야기를 재미나게 주고 받았다.


그때 먹었던 우동 맛이 어땠더라. 가만가만 돌이켜봐도 지금은 되살릴 감각이 남아있질 않다. 국물이 뜨겁긴 했다. 한동안 따뜻하다가 금새 식어버렸지. 달콤한 휴식이었지만, 휴게소에 영영 머물 순 없었다. 그때도 지금도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다.


---

2022. 9. 13.에 초고를 썼고, 글쓰기 수업 선생님의 첨삭을 토대로 일부 수정하였음.

매거진의 이전글 첫 글쓰기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