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크리스마스 선물의 추억'
첫 글쓰기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이었다. 나는 2호선 충정로역 게이트 앞에서 교통카드를 꺼냈다. 카드를 톡 찍었는데 게이트가 안 열린다. 몇 번을 대었다 떼었다 하고서야 알았다. 내가 꺼낸 건 카드가 아니라 사원증이었다. 아까 수업에서 들은 선생님의 나긋한 칭찬 몇 마디에 내 정신이 흐물해진 모양이다.
그렇게 흐물거리며 어찌어찌 집까지는 왔다. 이것 봐. 껍데기만 어른이지. 내 존재의 일부는 여전히 칭찬에 목말라 한다. 그 아이 같은 마음이 활개 치면서 정돈된 방을 어지르고 가지런한 단어들을 흩트려 놓을까 두렵다.
일곱 살 무렵, 대구 수성구 범물동의 한 양옥집 2층에 살던 나는 크리스마스 전날 밤 방바닥에 깔린 이불에 누우며 생각했다. ‘눈 감고 자는 척하고 있으면 아빠가 들어와서 내 머리맡에 선물을 놓고 나가겠지.’ 그러고 눈을 감았지만, 온 신경은 정수리 쪽에 쏠려 있었다. 그렇게 몇 초를 버텼을까. 나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이거 산타 아니고 아빠가 준 거잖아. 맞지.” 다음 날 아침 이불을 박차고 일어난 나는 대뜸 아빠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가타부타 말을 않는 아빠를 채근하며 콩콩 뛰었다. 그 당시 국민학생이던 누나가 나를 달랬다. “세희야. 산타냐 아니냐가 그렇게 중요하니. 네가 뭐라도 받았다는 게 중요하지.” 누나 말이 옳았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 일이 있고 언제부턴가 산타가 우리 집을 찾아오지 않았다.
며칠 전, 내 대학원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오면서 고맙게도 아이들 선물을 사 왔다. 깜짝 선물에 아이들은 환호했고, 그렇게 즐거운 저녁 시간이 시작되는가 싶었는데, 장난감 상자에 붙은 콩알만 한 크기의 가격표를 용케 찾아낸 일곱 살 첫째 아이가 자기가 받은 선물이 동생이 받은 것보다 값이 덜 나가는 것 같다며 돌연 자리에서 일어나 이의를 제기했다. 그 말을 들은 친구 얼굴이 벌게졌다.
친구보다 더 놀란 나는 황급히 아이의 입을 막으면서 상황을 정리했다. 민망했다. 여름 다 지나고 초가을인데, 진땀이 났다. 내 친구가 우리 집에 다시 오려고 할지 모르겠다. 올겨울, 산타가 우리 집에 올지 안 올지, 나는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