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당신도 스누트 스쿨에 입교하세요
그제로 총 두 달 간 네 번의 글쓰기 수업이 모두 끝났다. 나는 이 수업의 학생으로서 네 개의 글을 쓰고 네 번의 강의에 참여해야 했지만, 세 편의 글을 썼고, 딱 한 번의 수업을, 그것도 첫 시간에만 다녀왔다.
내가 글쓰기 수업을 듣는다고 했더니 친구가 물었다: “궁금하다. 너에게 글쓰기를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대체 누구인지...” 나는 친구에게 강의 신청 링크를 보냈다. “와, 이충걸? 그 사람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글 좀 읽고 옷 좀 입는다는 친구들에게 GQ 편집장 이충걸이라는 이름 석자의 무게감은 남달랐다. 내가 앞줄에 있을 수 없다면 그 어떤 줄 세우기도 거부하는 나는, 톨스토이가 살아 돌아온다고 해도 쫄지 않을 작정이었지만, 첫 수업은 역시나 긴장됐다.
실물도 목소리도 처음이었다. 자신을 교장 선생님이라 부르라는 말에 속으로 웃겄다. 국민학교로 입학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12년 동안 개근을 한 나이지만, 이렇게 직접 수업까지 하는 교장 선생님은 본 적이 없었기에.
첫 수업 시간. 착 가라앉은 공기 속을 나긋하게 헤엄치던 선생님의 말들. 그 말들을 들으면서 웃어도 될지, 아니면 계속 참아야 할지 모르겠는 어색한 분위기에서 바쁘게 눈알을 굴리던 나는 선생님의 “나는 위악보다는 위선이 낫다고 생각해요.”라는 그 한 문장을 듣고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굳어있던 어깨를 내렸다.
이충걸 앞에 붙은 수식어가 너무 거창해서 범접하기 어려울 거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 그게 바로 나였다. 그러나 학생이었던 내게 이충걸은 한없이 다정한 글쓰기 선생님이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정성스러운 첨삭도, 나를 부를 때 내 이름 뒤에 ‘학생’을 붙여서 불러주는 것도 좋았다.
글쓰기 수업을 통해 내 글이 확연히 나아졌는지는 역시 내 글을 읽는 사람들만이 알아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나는 이 수업을 통해서 ”세희 학생, 글을 쓰면 내게 보내봐. 내가 봐줄게“, 하는 다정한 스승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이제 겨우 두 달 남은 2022년, 내게 주어진 인생의 선물 같다.
간지러운 아부 같이 들리지만, 이런 거라도 내어드리고 싶었다. 저 글 쓰겠다는 약속은 꼭 지킬게요. 그러니까, 저 계속 쓸게요, 선생님. 앞으로 길에서 시비라도 붙으면, 야 너 어디 문파야, 나 이충걸한테 글쓰기 배운 사람이야, 하고 당당하게 맞설게요. 난 수업 다 빼먹은 불성실한 학생은 안 키우는데, 하지는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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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 있는 분들은 직접 찾아보실 거라 믿지만, 그래도 11월, 12월 수업 그리고 아마 앞으로의 글쓰기 수업 일정과 신청방법이 궁금한 분들을 위해 여기로 가시면 된다고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