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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chpapa Oct 31. 2022

부드럽게 살아, 드럽게 말고

'스무 살의 나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

스무 살이 되기 직전까지 나는 어느 대열 안에 서 있었다. 어느 학교 몇 학년 몇 반 몇 분단 몇째 줄이 내 자리였고, 내 소속이었고, 내 정체성이었고, 같은 공장에서 찍어낸 듯 짧은 머리에 같은 교복을 입은 내 앞 뒤 양 옆의 친구들이 거울 같은 나의 자화상이었다.


그러다 스무 살이 된 것이다. 교문을 나왔는데, 다시는 열리지 않았고, 내 자리로 돌아갈 수 없었다. 우리는 세상에 부어졌고, 각자의 자리를 찾아서 전국으로 흩어졌다. 옆에 있던 이들이 친구인 줄 알고 살았지만 실은 가까이 앉은 급우였을 뿐이란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혼자가 되었다.


스무 살의 나는 연희동에 있었다. 근방에도 와 본 적이 없었던 동네에서 홀로 살았다. 나는 가히 무한에 가까운 자유를 만끽했다. 그땐 그렇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기껏해야 수업 시간표를 원하는 대로 짜고, 그래놓고는 정작 강의실엔 진리가 없다며 거리를 쏘다니고, 응당 술을 마시고, 집에 먼저 가는 게 무슨 수치라도 되는 양 전봇대에 기대서 새벽 이슬을 맞는, 한심한 자유였다.


생활비가 떨어질까 매일 ATM에서 잔고 확인을 했고, 장학금이 끊길까 시험기간엔 줄을 서가며 도서관 자리를 맡았는데, 그렇게 살면서 어느 모습도 나 자신이라고 인정을 하지 못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닌, 그저 미물에 불과한 존재라는 속편한 득도에 이르지 못했고, 언젠간 이 세상을 놀라게 할 것이라는 거품 같은 치기를 흉내내지도 못했다.


별 볼 일 없는 인간이 되는 게 두려웠지만 그저 조금 더 살아보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스무 살의 나. 그때보다 나이만 먹었지 크게 나아진 게 없는 오늘의 나는, 그렇게 막막했으면서도 절망을 사치라고 여겼고, 확신이 없었으면서도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었고, 믿을 구석이 없었지만 목소리는 컸던 당시의 나에게, 지금 잘 하고 있다고, 다 잘 될 거라고,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고, 그러니 힘내라고, 감히 말할 수가 없다.


“너는 언젠가 네 자신을 찾게 될 거야.” 이 말 정도면 위로가 될까, 애초에 위로가 필요 없는 젊음에게? “어차피 될 일은 되고, 안 될 일은 안 되니까, 이왕이면 부드럽게 살아.” 이런 맹탕인 말에 납득이 될까, 만사를 선명하게 보고픈 청춘인데? “어쨌거나, 고마워.” 차라리 이게 낫겠다. 살고 살아서 오늘 내가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거니까. 나는 앞으로도 살 것이다. 부드럽고 말랑하게 살면서 계속 쓰고 쓸 작정이다.


참담한 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불덩이 같던 젊음들에게 미안하다. 남을 밀고, 밀치고, 남에게 깔리고, 깔려서 죽을 수 있는 비참한 지경을 만드는 데 일조한 것 같아서 면목이 없다. 부끄럽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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