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윤, 삶의 발명, 2023
연말. 한 해를 돌아보며 잘 살아냈다는 뿌듯함보다는 더 잘 할 순 없었을까 하는 의심이 스멀스멀 나를 괴롭히려 할 때 눈 앞에 담요 한 장 촥 펼쳐주며 이거 덮고 따뜻한 이야기들을 어서 읽어보라고 부추기는 책.
이 책을 읽고 나의 질문은 내가 무엇을 이루었는가가 아닌
- 나의 앎의 지도는 얼마나 더 넓어졌는가
- 나는 올해 나를 이 세계를 더 잘 알게 되었는가
- 그런 경험들을 했는가 하려고 노력했는가
- 타인과 세상을 위해 무엇을 덜 하기로 했는가
- 내 스스로 삶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았는가
- 날아다니는 새를 보았는가 그들의 소리를 들었는가
로 바뀌었다.
역시 정말로 죽고 싶지 않다. 이런 세상에 미련이 없다는 말은 본심이 아니었다. 역시 이 세상이 그립다. 이제 와서 아무 소용이 없다면 영혼만이라도 이 세상 어딘가를 떠돌고 싶다. 가능하다면 누군가의 기억 속에라도 남고 싶다. 26년이 거의 꿈에 지나지 않았다. 지극히 짧은 시간이라고 할 만하다. 이 짧은 일생 동안 무엇을 했는가. 완전히 나를 잊고 있었다. 모든 것이 흉내와 허망. 왜 좀 더 잘 살지 않았던가? 자신의 것이라고 할 만한 삶을 살았다면 좋았을 것을. 친구야! 아우야! 자신의 지혜와 사상을 가져라. 나는 지금 죽음을 앞에 두고 나의 것이 거의 없다는 것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너는 꼭 우리에게 알려줘야 해. 네가 본 것을. 우리 미래의 문이 닫히지 않도록.” 우리가 새로운 앎을 살아낼 수 있게.
“마치 내 삶에 생긴 구멍이 하늘과 반들반들한 바위와 나팔꽃이 있는 더 넓은 세상으로 메워지는 듯했다.” 이 부분을 “마치 내가 더 큰 사랑과 더 큰 세상의 일부가 된 듯했다”고 들려줬다.
유족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은 구해야 할 것이 있는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삶도 죽음도 무의미하지 않기를 바라는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삶도 죽음도 무의미하다는 그 무의미와 싸우며, 자신의 아픈 가슴속 생각 중 가장 좋은 것을 내주면서 변화의 일부분이 되려고 하는 것이 유족들의 사랑이다.
찬 바다에 365일 들어가는 것은 크레이그 스스로 만들어낸 즐거움이다. 크레이그는 진정으로 스스로 즐길 수 있는 삶의 방식을 발명해낸 셈이다. 나는 바로 이런 발명―스스로 삶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삶은 소중하다’는 말이 뜻하는 바라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