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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박세희 Dec 08. 2023

행복의 발명

정혜윤이 쓴 [삶의 발명]을 읽고 있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이 작가가 괜히 가깝게 느껴진다. 내가 그가 쓴 책을 거의 다 소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은 책은 단 한 권도 없었다. 결국 책장에서 젠트리피케이션 당한 것처럼 밀려난 그 책들은 알라딘 중고서점에 넘겨지거나 폐기됐다. 마음에선 떠나보내지 못한 책들.


며칠 전 페이스북 피드에서 정혜윤 작가의 신작 [삶의 발명]이 나왔다는 걸 알게 되었고, 밀리의 서재에 있다는 정보도 함께 알게 되었다. 전자책의 장점은 쉽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 주문하고 배송을 기다려 포장을 뜯는 과정이 없이 클릭 몇 번이면 바로 본문을 볼 수 있다. 이 책의 서문에서 아래와 같은 문장을 만났다.


사는 동안 반드시 해내야 할 일은?
"자신의 이야기를 찾고 만나고 만드는 것."
우리가 이야기를 하는 동물로 진화한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 정혜윤, [삶의 발명]


인간은 이야기를 하는 동물로 진화했다는데, 나는 고작 나의 이야기를 쓰는데도 마음에 거리낌이 있었다. 실명을 걸고 누군가를 비난하는 글을 써붙이는 것도 아닌데 주저했고, 망설였다. 이야기가 없는 사람은 없다고, 너도 한 번 글을 써보라고 여기저기 잘도 말하고 다니면서 정작 내 이야기는 좀처럼 쓰지 못하고 있었다. 문을 오래 닫아뒀더니 이젠 벽으로 보일 지경.


나는 아직도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후, 이 한 문장을 쓰기가 이다지도 어렵다니. '아직도'라는 부사를 붙이기엔 이제 겨우 삼 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뿐이니까. 그래도 이제 나는 어머니 이야기에 바로 울음을 터뜨리진 않는다. 덜 그리워진 것이 아니고, 잊은 것이 아니고, 참을성이 길러졌다. 울음을 길게 참을 정도의 힘이 길러졌다.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운다. 여전히 그렇다. 그립고 그립고... 아프다.


그래서 슬픔에 젖어서 매일을 우울하게 살고 있느냐 하면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나는 아침마다 아내와 아이들이 잠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고, 저녁마다 아내와 아이들이 잠드는 걸 보며 깊은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 이 우주가 더는 외로운 공간이 아니라는 걸 실감하고 있다.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아내와 아이들이 나를 존재론적 회의에서 구해냈다. ‘내 삶은 분명 살아갈 가치가 있구나.’ 그걸 의심하지는 않게 되었다.


행복이란 뭘까. 이걸 많은 학자들이 연구했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의 바람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저자는 이렇게 썼다: “행복이란? 불행하지 않은 것.” 마음에 들었다. 많은 것을 가진 상태가 아니라 필요한 것이 적은 상태. 덕분에 행복에 대한 접근성이 훨씬 개선되었다. 행복이 한결 만만해 보인 덕분이다. ‘나는 지금 불행한가? 아니다. 고로, 나는 행복하다.‘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늦은 밤, 좁지만 정돈된 작은 방, 깨끗한 침구 속에서 아이들은 곤히 잠들어 있었다. 아내와 나는 미등이 켜진 거실 바닥에 퍼질러 앉아 하루 일과를 속삭이며 서로의 건강을 염려했다.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스트레칭을 했다. 아내를 따라 발레 동작을 해보고 뻣뻣한 다리를 늘려봤다. 몸에 피가 돌았다. 뚫리고 열리는 느낌이 들었다. 삶의 발명까진 모르겠지만 분명 행복이 발명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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