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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chpapa Oct 13. 2022

줄넘기, 뭐 꼭 잘해야만 재미있니

잘하는 건 아니지만, 잘 하고 있는 걸로 충분하지 않겠니

가끔 난 자녀에게 부모란 존재는 롤플레잉 게임 속 NPC 같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아니, NPC 정도만 되어도 매우 이상적일 것 같다. 마을에 가면 언제나 그 자리에 항상 자리를 지키고 있고, 말을 걸면 (레파토리가 반복적이긴 하지만) 응답하고, 정보를 주거나 퀘스트를 주거나 아이템을 주기도 하고, 그렇지만 게임 진행 자체에는 개입을 않는, 그런 부모를 생각해본다.


요즘 첫째 아이는 줄넘기 연습에 한창이다. 제자리에서 콩콩 뛰면 금방 숨이 차서 헉헉 거리면서도 그 단순한 운동 또는 놀이가 재밌나보다. 생각해보면 줄넘기도 참 재밌다. 정량 비교가 손쉽다. 달리기만 해도 간발의 차로 결승선을 넘으면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은데, 줄넘기는 제대로 넘으면 1개가 카운트 된다. 아주 단순하게 승패를 가릴 수 있다. 그래서인지 첫째 아이는 줄넘기를 잘하고 싶어한다.


그 잘하고 싶은 줄넘기를 며칠 전까지만 해도 2개를 못 넘었다. 1개를 뛰고 줄을 돌려야 하는데 그 요령을 익히는데 시간이 걸렸다. 그럴 때마다 아빠 이거 어떻게 해야 해 좀 알려줘 하면서 도움을 구했지만 내가 아무리 말로 설명하고 몸으로 보여줘도 그게 곧장 되는 운동 신경이었으면 저 혼자 해결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는 그냥 혼자 해보면서 익히는 수밖에 없다고 계속 시도해보라고 격려를 했는데, 줄넘기를 하다 말고 자꾸 나에게 묻는다.


아빠, 나 줄넘기 잘해?


아이가 바라는 대답이야 빤하다. 응, 너 줄넘기 잘해. 그 말이 듣고 싶은 거겠지. 그러니까 아이가 듣고 싶어하는 그 말을 해주고 말면 되는데, 이럴 때만 정직해지는 나는 건조하게 되묻는다. 줄넘기 잘하냐고? 누구랑 비교해서? 네 동생보다야 잘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사람보다는 못하는 거 아닐까... 그나저나, 잘하고 못하고가 그렇게 중요하니. 아빠는 너가 잘한다고는 말 못하지만, 잘 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있어.


그저껜가 유치원을 다녀온 아이는 아빠 나 줄넘기 진짜 잘한다 봐봐 하면서 그 자리에서 내리 다섯 개를 넘어버렸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쾅쾅쾅쾅쾅. 무겁고 힘겹게 뛰지만 분명 연속 줄넘기가 되고 있었다. 와, 이걸 며칠 만에 해냈다고. 대단하다, 너! 나는 신나서 아이와 함께 덩실거렸다. 계속 연습했구나. 잘하고 싶어서? 잘했어. 잘했어. 기특하다.


줄넘기, 그게 뭐 대단한 일이냔 말이지. 그런데 그 단순한 동작에서 성취와 희열을 느끼는 첫째 아이를 보고, 아빠인 내가 굳이 무언가를 애써서 가르치거나 이렇게 저렇게 인생의 방향을 이야기 해주는 게 뭐 그렇게 중요할까 싶었다. 같이 파티를 꾸려서 보스몹을 잡으러 갈 건 아니잖아. 언젠가는 마을을 떠나서 던전으로 갈 테니까. 그때까지 최대한 무해한 존재로서 아이 곁에 머물면서 그렇지만 사랑한다는 말을 아주 지겹도록 해주면, 그걸로 애비 역할은 족하지 않을까.


근데, 있잖아... 그거 알아? 아빠는 쌩쌩이도 할 수 있지롱. 메롱.


비 내리고 쌀쌀하던 날에 굳이 줄넘기 연습을 해야겠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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