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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박세희 Aug 28. 2023

인생 첫 손절매(損切賣) 소감

마이너스 수십 퍼센트의 손실율을 기록 중이던 한국 주식 종목 몇 개를 오늘 아침 장이 열리자마자 시가로 던졌다. 이로써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를 되뇌이며 이어왔던 비겁한 현실 부정이 차가운 손실로 실현되었다. 피 같은 돈이 손실액으로 찍혔는데 마음이 편할 수가 있을까. 착잡했다. 그런데 참 묘하지. 앓던 이를 뺀 것 같이 시원하기도 했다.


인생 첫 손절매를 하고 나니 여러 후회가 든다. '그때 그 주식을 사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보다는 '손실 폭이 오늘보다 더 작았을 때 그때 미련 없이 팔았어야 했다'는 후회가 더 크고 아프다. 내 인생에 손절이란 없다고 생각했고, 무슨 일이 생겨도 원금이 회복될 때까지 버틸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 생각과 다짐이 투자 결정에 대한 안일함과 경솔함으로 이어진 것 같다. 비싼 수업료를 치뤘다.


내놓았던 마지막 주식까지 팔려나가는 걸 확인하고 나서 역시 묵혀뒀던 코인 계좌를 열었다. 금액은 작지만 더 처참한 손실율을 기록 중인 코인들을 다 팔아치웠다. 심지어 어떤 코인은 상장이 폐지되어 매도도 출금도 되지 않는 거래 불가의 상태로 있었다. 재상장이 될 일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지만 팔 수도 뺄 수도 없으니 그대로 두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먼지를 털며 모든 투자 계좌 청소를 끝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에 앉아있던 아내를 향해 허리를 숙이며 죄송하다고 인사했다. 우리 가족의 소중한 생활 자금인 가계 자산을 신중하지 못하게 투자하고 운용했습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진심을 담아 사과했다. 나의 갑작스런 사과에 아내는 그냥 가볍게 알겠어 괜찮아라고 답했다. 사람은 간약해서 오늘의 감정도 시간을 핑계로 잊을 수 있겠지. 그래서 이렇게 굳이 글로 남겨둔다.


사진: Unsplash의Ayadi Gh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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