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심리 상담을 하고 왔다.
아내의 손을 잡고 상담을 하러 온 나를 선생님은 반겨주셨다.
"보통은 안 오세요. 여기까지 오신 것만으로도 '문제'는 해결될 거에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상담의 효과를 의심하진 않았지만, 훌륭한 오프너였다.
나는 사무실 문을 열기 훨씬 전부터 말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 말들을 차분히 들어주셔서 고마웠다. 들어주고 요약해주고 패러프레이징 해주는 적극적 경청을 해주셨다.
덕분에 나도 신나서 이야기 했다. 눈물도 쏟았다. 내가 내 상황을 설명하려다보니 북받치는 감정이 있었다. 이게 대체 뭘까. 나는 답답했고 힘들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이건 '문제'가 아니라서 해결할 수가 없고 그냥 '상황'이 어려워서 이렇게 된 것이에요." -- 수긍이 가는 말이었지만 답답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까?
그걸 스스로 배우는 게 이제부터의 나의 숙제가 되었다.
"여유가 필요해요." 그 여유는 대체 어떻게 만드는 것일까?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관점을 바꿀 수 밖에 없어요." 그 말도 맞다.
"상담 한 번 받았다고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런 노력을 하지도 마세요. 가족들이 놀랍니다." 그 말도 역시 맞다.
동료에게 오늘 심리 상담을 받고 왔다고 했다. 상담을 받고 나니 어떻냐고 묻는다. 나는 이렇게 저렇게 해보아야 겠다고 답했다. 그러자 동료는 놀라면서 상담을 받고 난 감정이 어떻냐고 물었는데 action plan을 말하는 내가 참 신기하다고 한다.
감정? 무척이나 후련했다. 내 나름대로 정리도 되었다.
아이들과 여유롭게 마음을 열고 편하게 대화를 해 본 적이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그 사이 나의 대화는 주로 수행과 지시에 관한 것이었다. 이거 해라, 저거 하지 마라, 늦겠다 서둘러라 등등. 그게 대화인가? 아이와 대화는 어떻게 하는 거였더라. 그 방법조차 까먹은 것 같다.
"그게 다 여유가 없어서 그런 거에요." 그래서 나는 그 여유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내려놓으세요." 나는 정말 내려놓을 수 있을까.
아이를 귀한 손님처럼 대하라는 말이 있다. 멋진 말이었지만 나는 쉽게 공감하지 못했다. 그건 어떻게 하는 것이지? 귀한 손님처럼 대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
나는 언젠가 아이들이 가정이라는 둥지를 떠날 걸로 믿는다. 그때를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대비를 시켜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빠로서 나의 의무감이고 책임감 같은 것이었는데, 그게 필요 없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게 관점의 변화인 것일까.
아이의 기질에 맞게, 아이의 자율성을 키우는 방향으로... 나도 아이와 잘 지내는 법을 배우고 연구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내는 내가 특히 첫째 아이와 동일시를 많이 하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나도 모르게 이렇게 되었다. 첫째 아이와 내가 비슷한 점이 많아서 유독 더 그렇다. 하지만 분명히 다른 사람이고 낯선 타인이다.
아이를 귀한 손님처럼 대하라는 말. 그 말은 잘 대접하란 뜻도 있겠지만 결국은 아이도 '나'가 아니라 '남'이라고 하는 관계 설정이 필요하다는 뜻도 있다. 아이는 '남'이다. 가족도 '남'이다. 이제부터 이 관계를 배워야 한다.
"아이에게 남는 건 좋은 기억. 나쁜 기억. 그 기억 밖에 없어요. 다른 건 아무 것도 안 남아요."
그 말을 듣고 나니 지금껏 내가 아이에게 뭘 남겨주려고 했던 것인가 싶다. '내' 인생이 아니고, '아이'의 인생이다. 적정한 거리가 어느 정도일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공간과 거리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