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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chpapa Sep 11. 2018

아빠의 봉사활동, 보육원 아이들과 숲 속 놀이

적성에 맞는 봉사활동을 드디어 찾았다

오후 반나절 보육원 아이들과 숲 속 놀이를 했다. 녹색교육센터는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와 한화생명의 후원을 받아 ‘와숲’ 숲 속 놀이∙체험∙교육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담당 선생님들께서 보육원 가까이에 있는 근린공원으로 오셔서 숲 속 놀이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나는 5~6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 S와 짝이 되었다. 주로 여성 봉사자가 많기에, 평소 남자 봉사자가 오는 걸 바라고 기다렸다는 얘기를 보육원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다. 그렇다면 친해지기가 조금 수월하겠구나 싶었는데, 그 또래 아이가 처음 보는 어른과 낯설지 않게 지내는 일이 어디 쉬울까. S는 나와 눈도 안 마주치고 손도 잡지 않으려고 했다.


섣불리 다가서면 오히려 더 경계를 할 것 같아서 아이의 옆에서 차분히 기다려주었다. “S야, 안녕. 나는 H 삼촌이야. 오늘 기분이 별로 안 좋아? 숲 속 놀이 별로 안 좋아해? 조금 쉴까?” 그렇게 물어봤더니 고개를 가로젓는다. 보육원 선생님들은 그런 아이의 모습이 조금 무안했는지 자꾸 “S야, 너 원래 제일 열심히 뛰어놀잖아. 오늘 왜 그래.” 하면서 다그친다.


나는 “선생님, 그냥 저희 따로 좀 놀고 올게요.” 하고 다른 쪽으로 갔다. 같이 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S보다 어려서 어울리기가 싫은 것 같기도 했다. 왜 애들은 곧잘 ‘나는 형이고 오빠인데 내가 너희들이랑 놀아야 해?’ 하는 생각을 하고, 또 그 생각을 실제로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는가. S가 꼭 그래 보였다. 


그래서 형이고 오빠인 S만이 할 수 있어 보이는 꽤 어려운 놀이기구로 가서 오르고 내리고 하면서 둘이서만 놀았다. 우와, 역시 S는 잘하는구나. 와, 이거 어려운데 정말 잘하네. 씩씩한데? 용감하다! 하면서 온갖 칭찬을 쏟아냈다. 아니, 실제로 놀랍기도 했다. S는 새로운 놀이기구에 도전하고 싶어 했고 나는 독려하고 싶었다. 비슷한 또래의 처조카와 놀아줬던 경험이 이럴 때 도움이 될 줄이야. 


(c) pixabay


한참을 그렇게 따로 놀다가 저 멀리서 무언가 재밌는 놀이가 시작되는 듯 보이는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뒤늦게 숲 속 놀이에 참가했다. S는 이젠 나를 부르기도 하고 나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하기도 하고 손도 꽉 잡기 시작했다. 그 뒤로는 모든 일정이 수월했다. 나에게 장난을 치기도 하고 해맑은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이뻤다.


숲 속 놀이 프로그램은 아이들의 신체활동을 극대화하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달리기도 하고 껑충껑충 뛰기도 하고 봉사자 등에 업혀서 돌아다니기도 하고 봉사자들을 쫓거나 봉사자들을 피해 도망 다니거나 했다. 숲 속 놀이터에 아이들의 웃음이 울려 퍼졌다. 이렇게 재밌게 노는데 많은 도구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간식도 먹었다. 갑자기 S가 다리를 꼬며 사타구니 쪽에 손을 가져갔다. 나는 처조카를 통해 남자아이들이 언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화장실! S의 손을 잡고 남자화장실로 달려갔다. S는 변기 앞에 서서 능숙하게 바지를 벗고 소변을 보았다. 오... 아직 기저귀를 차고 있는 총총이의 아빠인 나는 혼자 알아서 소변을 보는 S의 모습에 감탄을 했다. S는 이게 뭐 대단한 건가요, 하는 표정으로 으쓱했다.


자, 손 씻자. / 네? / 손 씻어야지. / 소변을 봤는데 왜 손을 씻어요? / 응…?


나는 오늘 S와 재밌게 놀기만 하려고 했지만 이것 하나는 꼭 알려주고 싶었다. “S야, 화장실 와서 쉬를 하고 응가를 누고 하면 꼭 손을 씻어야 해, 알았지?” 그리고 간식을 주고받을 때, 무언가를 부탁하고 도움을 받을 때, “고맙습니다.”하고 말하도록 알려주었다. 불필요한 오지랖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반복적으로 얘기해주었고 내가 그렇게 하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


(c) pixabay


이제 헤어질 때가 되었다. “S야, 오늘 재밌었어?” 대답이 없었다. “S야, 삼촌은 오늘 무지 재밌었어. 다음에 또 놀자, 알았지?” S는 이렇게 말했다. “아까 그거 한 번 더 해주세요.” 나는 S를 안고 하늘 높이 번쩍 들어 올렸다가 내려주었다. 땅에 발이 닿은 S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숙소 비슷한 곳으로 뛰어들어갔다. 아쉬워하거나 울거나 하는 그런 질척한 마무리를 기대했던 건 아니지만, 지나치게 깔끔했달까, 조금 어색했다. 하긴 조카들도 내가 집에 간다고 하면 인사만 꾸벅 하지 가지 말라고 잡거나 하지는 않는구나. 만날 때 좀 격하게 반가워하지.


오늘 봉사활동을 다녀오기 전,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주로 시설에 있는 아동들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들이었다. “아이들이 말이 느려요. 아이들이 상처가 많아서 경계를 많이 해요.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정을 주지 않으려고 한다네요.” 아예 틀린 이야기는 아닐 것이고, 아니 오히려 경향적으로 맞는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 내가 만났던 아이들은 그렇지가 않았다. 말로 의사소통이 잘 되었고, 금방 친해졌고, 많은 웃음을 보여줬다. 아이는 아이였다. 큰 차이는 느끼지 못했다.


첫 만남, 쭈뼛대는 S의 모습을 보고 급기야 울음을 터뜨리려고 하는 S를 보고 나는 당황스럽기도 했고 조금 짠하기도 했다.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했다. S의 스토리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왜 S가 짠하게 느껴졌을까. 요즘 내 상태가 좀 그렇기도 하지만, 혼자 이상한 생각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이다. 봉사자로서 좋은 마음가짐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나는 울지 않았고 그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금방 생각을 고쳐먹었다. 아이들에게도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이 있지.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지. 오늘 점심을 적게 먹었거나 낮잠을 많이 못 잤을 수도 있지.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건 다 총총이를 키우면서 쌓인 경험 덕분이었다. 아빠가 되니 이런 봉사활동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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