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어릴 적부터 내 위장은 조금만 급하게 먹어도, 조금만 피곤해도, 조금만 신경을 써도 속이 금세 뒤틀렸다.
체기가 올라오고, 명치가 꽉 막힌 것처럼 답답해졌다.
병원을 찾을 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늘 비슷했다.
"위모양을 보니 잘체하는 위장이에요.
타고나길 그렇게 타고난 겁니다”
어릴 때는 그렇게 말했고,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들자 진단명이 하나 더 추가 되었다.
“기능성 장애입니다. 나이가 들면 그런 분들이 많습니다.”
결국 처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운동을 하라는 말, 배를 따뜻하게 하라는 말.
처음에는 그 말이 조금 허무하게 들렸다.
이렇게 힘든데, 방법이 그것뿐이라니.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증상은 더 자주 찾아왔고 체하는 주기도 점점 빨라졌다.
단순히 속이 더부룩한 정도가 아니었다. 구토가 올라오기도 했고, 두통이 심하게 따라오기도 했다.
어깨는 돌처럼 굳었고, 명치 통증이 등을 타고 올라가 등까지 쑤셨다.
어떤 날은 그 통증 때문에 하루를 제대로 보내기조차 힘들었다.
이제 걷기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처음 러닝을 시작했을 때는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걷기와 달리기는 전혀 다른 운동이었다.
몇 발짝 뛰지 않았는데도 숨이 가빠졌다. 가슴이 빠르게 오르내렸고 다리는 금세 무거워졌다.
그래서 뛰다가 멈추고, 다시 조금 뛰다가 또 멈추고. 그렇게 반복했다.
처음에는 조금 민망하기도 했다.
달리다가 금세 멈춰 서 있는 내 모습이 어딘가 어설퍼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페이스를 낮춰 아주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마치 슬로 조깅처럼.
숨이 너무 차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몸이 놀라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그렇게 매일 조금씩 뛰었다.
300미터.
어느 날은 500미터.
조금 익숙해지면
1킬로미터.
그러다 2킬로미터.
3킬로미터.
처음에는 걷고 뛰기를 반복했지만 어느 순간 나는 걷지 않고 계속 뛰고 있었다.
연달아 3킬로미터를 말이다.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 나 계속 뛰고 있네?’
그 사실이 너무 신기했다.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작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
나는 체육 시간을 제일 싫어했던 사람이었다.
운동장에서 뛰는 것을 가장 싫어했던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지금 스스로 달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조금 멋져 보이기까지 했다.
그 뒤로도 나는 계속 달렸다.
어느 날은 4킬로,
어느 날은 5킬로.
몸이 조금씩 익숙해질 때마다 거리를 늘렸다.
그리고 마침내
10킬로미터를 완주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되는구나.”
“나도 할 수 있구나.”
그 순간 성취감과 함께 꾸준함은 재능보다 강할지도 모른다는 것.
누군가처럼 빠르게 달리지 않아도 된다.
누군가처럼 잘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멈추지 않고 계속 가면
언젠가는 도착한다는 것.
긴 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새로운 시간이 시작되는 계절이다.
새 학기는 늘 묘한 감정을 함께 데려온다.
설렘도 있지만 걱정도 있고, 기대도 있지만 불안도 있다.
괜히 마음이 분주해지는 시기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날이면 어김없이 체기가 올라왔다.
걱정과 긴장이 몸속에서 그대로 올라와 명치에 걸려 버리곤 했다.
하지만 요즘은 조금 다르다.
그럴 때면 밖으로 나간다.
운동화를 신고 물 한 통을 들고.
그리고 천천히 달리기 시작한다.
처음 몇 분은 늘 힘들다.
숨이 가빠지고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숨이 리듬을 찾는다.
그때 신기한 일이 일어난다.
숨이 차오를수록
마음속 걱정도 함께 올라온다.
불안했던 생각들,
괜히 마음을 무겁게 했던 고민들.
그 모든 것들이 숨과 함께 올라왔다가
호흡 속에서 조금씩 흩어진다.
달리다 보면
생각이 단순해진다.
지금은 그저
한 발.
그리고 또 한 발.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어쩌면 나는
몸을 위해 달리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마음을 위해 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숨이 차오르면
나는 다시 생각한다.
괜찮다고.
이 숨처럼
걱정도 결국은 지나갈 거라고.
그리고 나는
다시 한 발을 내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