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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인남 Oct 02. 2022

4. 내일부터 가족여행이라서요

드디어 면접! 그러나 이상과 현실은 2000% 다르다


 내가 지원하는 회사들이 그닥 매력적이게 보이지 않아서 이력서를 내는 것 그 자체가 너무 고욕이었다. 그러나 꾹 참고 계속해서 이력서를 내고 있었지만, 그 분야는 너무나도 다양했다. 제약회사, 식품가공, 자동차 대기업 협력업체 등 다만 직무는 동일했다. '인사총무'! 반복해서 이력서를 내던 중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게 되었다. 그것은 자동차 업계의 품질부서는 채용공고가 자주 올라온다는 것이었다. 그때 서류(이력서, 자소서)만 내면 무조건 합격하는 '중소기업 취업의 신'이라고 칭해지는 친구에게 이런 상황에 대해서 물어보니, 채용공고가 자주 올라온다는 것 일이 너무 힘들어 사람들이 자주 나간다는 것이지만 환경이 어떻든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 기존에 지원했듯 인사총무파트에 지원하는 한편, 안전빵으로 '품질보증'이란 직무에도 하나씩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간단하게 네이버에 품질보증은 어떤 일을 하는지 검색을 해보니, 인사총무는 다른 부서들의 일을 원활하게 하도록 도와주는 전형적인 사무직의 일이었고 품질보증은 사무직과 현장직의 그 사이에서 일을 하는 직무였다. 그러나 30대 신입사원의 위치란 회사 입장에서 부담스러운 위치 였는지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전화가 단 한 통도 오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봐도 20대 중반의 짱짱한 지원자들도 수두룩한데, 경력이라고는 공무원 수험공부인 30살이란 나이 많은 신입을 뽑기란, 회사 입장에서는 여간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현실이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만, 마음으론 너무나 고통스러웠고 '내가 왜 그렇게 수험에 집착을 했었나.'라고 후회하며 나를 책망하기도 했다. 시간은 나를 기다리지 않고 매정하게 흘러만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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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이제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려는 어느 날, 침묵을 유지하던 내 아이폰6에 전화벨이 울렸다. 면접을 보러 오라고 드디어 연락이 온 것이었다. 기존에 내가 '보험'으로 이력서를 넣어 둔 여러 자동차 회사 중에서 한 회사의 품질 파트였다. 합격과 면접 일정이 잡힌 쾌거를 이루었는데도 내 마음은 불편한 감정만 가득했다. 그 이유는 내가 원하던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리라, 또 사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몰랐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어떤 회사든 취업을 하는 것이 백수로 있는 것보다는 나은 선택지라는 생각에 일단 면접을 보러 가기로 결정했다. 이때 내가 최초로 물어본 질문이 "정장을 입고 면접을 가야 합니까?"였다. 그 회사의 인사담당자는 정장까진 입을 필요는 없고, 단정한 옷을 입고 오면 된다고 대답을 했다. 


 중소기업의 면접은 유선으로 서류 합격통보 후 보통 그다음 날에 면접 일정이 잡힌다. 회사의 위치가 집에서 차로 20~30분 거리에 위치에 있는 자동차 공단 내에 있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 좀 까다롭다는 생각이 되어 아버지의 차를 빌려 타고 갔다.(이때 공무원이 셨던 아버지는 퇴직을 하셔서 집에 계셨다.) '출퇴근 때 차가 필요하겠다.'는 김칫국물을 퍼마시며 회사 근처에 주차를 한 후 드디어 나를 합격시킨 회사의 입구에 섰다. 내 첫 소감을 말하자면, '이런 회사도 존재하는구나'였다. 드라마에서 보던 하늘을 찌를 듯한 빌딩에서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붙이고 사원증을 목에 걸고 일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 어딘가엔 존재할지 모르니 정정하겠다. '그곳'에서 만큼은 존재하지 않았다. 조립식 패널로 만들어진 그 회사는 1층은 현장이고, 보다 공간이 협소한 2층에 사무실이 있는 구조였다. 회사의 현장에는 지게차들이 뭔가를 나르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프레스 소리는 내 심장소리를 대변하는 듯했다. 


 통화 당시 어디로 오라는 얘기도 없이 "00시에 회사 입구에서 만나자."는 말을 했기에 덩그러니 한참을 서있었다. 나를 면접장에 데려갈만한 사람이 보이지 않아 이내 어제 통화를 했던 직원분께 전화를 했다. 그리고 잠시 후 한 남성분이 나를 데리러 나왔다. 그를 따라가며 회사 안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어릴 적에 내가 다녔던 오래된 초등학교 복도를 연상시키는 돌바닥, 식당이라고 적혀있지만 전 직원이 들어가기엔 너무나도 좁아 보이던 식당 등을 보니 '여기서 일을 할 나'의 의욕이 점차 깎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도착한 2층 사무실, 부서도 없이 조금 넓은 공간에 모든 사무실 직원들이 다 있었다. 그리고 아직 면접장소가 정해져 있지 않았는지 나는 그 사무실에서 아주 잠시 동안 기다리게 되었다. 신경질적인 날카로운 목소리로 전화응대를 하고 있던 경리직원, 그리고 영혼 없이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던 직원들 그 공간이 있던 회사의 사무직 직원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제부터 내가 다녀야 할 곳...' 시작부터 의욕이 감퇴되며 일하기 싫은 기분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취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의욕 있는 눈빛을 연기했다. 


 아까 전 나를 안내하던 직원이 와서 회의실로 나를 안내했다. 사장실 바로 옆에 있는 그 회사의 유일한 회의 공간에서 면접이 시작되었다. 내 생에의 첫 취업 면접이 드디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힘 빠지게 면접관은 방금 전까지 나를 안내하던 그 사람 한 명뿐. 갑자기 하라는 자기소개에 그 자리에서 급조한 자기소개를 더듬거리며 마쳤다. 그리고 가장 먼저 날아온 질문은 내 가슴을 후벼 파는 강렬한 것이었다. "다른 경력사항이 없으신데 졸업 후 4년이란 시간 동안 뭐 하셨나요?" 아니, 분명 이력서에 있는 자기소개서에 공무원 공부를 했다고 적어놨고 방금 자기소개를 할 때도 언급했는데 듣지 않은 건가?라는 생각과 이건 일부러 저격하는(일부러 내 약점을 트집 잡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마음이 어려웠으나 이내 밝은 표정으로 공무원 공부를 했었고 불합격이 계속되어 구직을 하게 되었다고 질문에 짧고 간결하게 답변했다.

  

 몇 차례 질문이 더 있었지만 전문적인 지식을 묻는 것이 아닌 그냥 '네가 누구니?'를 돌려 말하는 질문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업무와 관련된 질문이 나왔다. "제품 불량 때문에 새벽에 고객사에서 부르면, 갔다 와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있나요?" 이 질문을 듣고 마음속으로 '이게 말이야 뚱딴지야??' 했다. 공무원을 목표로 하던 사람이라 '워라벨'에 너무 최적화되어 있는 두뇌라 담당자의 요구사항까지 생각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었을까? 아니, 그렇다 치더라도, 밤에 야간근무를 한다는 것이라면 이해가 가는데 자다가도 튀어 나가야 하는 건가? 이게 인터넷에서 흔히 말하는 '좆소기업'의 현실인가 싶었다. 당황해하는 내 표정에서 이미 나의 수많은 감정이 새어 나왔을 수 있지만, 침착한 척하며 현재는 내 차가 없어서 힘들 수 있는데, 내 차가 생긴다면 가능한 일이라고 답변했다. 그렇게 대답을 하고 입에서 쓴 맛이 났다. 이런 회사에 취업을 하려고 노력하는 나 자신이 한심해 보였기 때문이다.


 어느덧 면접이 시작된 지 40분 정도가 지나고 있었다. 이제 마무리를 지으려던 담당자는 잊었다가 생각이 난 듯 말을 이었다. "언제부터 출근 가능한가요?" 여기서 정석적인 대답은 "내일부터라도 출근 가능합니다."일 것이다. 일반 사기업의 업무환경에 대해서 무지했던 나는 이 회사에 출근하는 것이 꺼려졌다. 그러나 한편으론 어떤 회사든지 일단 취업을 하고 나서 그다음 이직을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내일부터 가족여행을 2박 3일 정도 가서요. 그리고 주말이니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하면 어떨까요?"라고 대답을 했다. 물론 실제로도 가족 여행 일정이 있었다. 당일치기였지만. 담당자도 괜찮다는 듯 "좋아요. 그럼 그때 뵙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면접이 끝났다. 나의 다음 순서로 다른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그날 나 혼자 면접을 본 것이다. '말로만 듣던 이런 회사들이 있구나, 아마 몇몇 대기업, 공기업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회사들은 이런 구조겠지?'라고 생각하며 씁쓸하게 주차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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