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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인남 Sep 02. 2022

3. 30살, 첫 입사지원서 작성하기

자기소개서는 자기소개만 하면 되는 거 아니야?

 당장 인력사무소로 아침마다 출근할 것처럼 호기롭게 수험을 그만둔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집에만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런 모습과 이때까지 들인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서라도 공부를 더 해라는 부모님과 절대로 안 하겠다는 나의 엇갈린 주장으로 날이 갈수록 갈등이 고조되었다. "다른 수험생들은 공부를 더 하고 싶어도 못 해서 딱 1년만 더 공부해보겠다고 부모님께 사정사정한다는데, 왜 너는 시켜주겠다고 하는데도 안 하겠다고 하느냐?" 부모님은 내가 복에 겨웠다고 말했다. 맞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나를 믿고 전적으로 지원해주시는데 어떻게 감사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하지만 내가 내린 결정과 생각을 부모님께서 존중해주시지 않는다는 생각에 반항심이 들어 "감사합니다. 어머니 그러나 제게 이런이런 계획이 있습니다."이렇게 좋게 말할 수 있는 얘기를 "싫어", "안 한다고." 또는 침묵으로 일관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결국 부모님들도 내 의견을 존중하기로 하셨는지, 어느 순간부터는 앞으로의 계획을 나에게 물어보시기 시작하셨다. '계획? 4년제 대학교 나왔으니 사무직으로 취업하면 되는 것 아니야?' 이게 실제 내 대답이었으면 부모님은 혈압상승으로 지금 쯤 이 세상에 안계 실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저 말을 마음의 소리로 담아둔 것이 좋은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이지만 세상 물정 모르는 과거의 내 모습이 너무 부끄럽다. 솔직하게 말해서 저건 30살 먹은 사람의 정상적인 사고(思考)가 아니다. 몸만 커진 철없는 때만 쓰는 아이와 같은 사고다. 결국, 계획을 물어보는 부모님께 나는 속 시원한 대답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다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대화를 시도하고 있는 입장인데 막무가내로 거부하는 내 모습을 보며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Photo by Annie Spratt on Unsplash




 답답함의 한도가 극치에 다다랐을 즈음, 어머니의 지인이 건설현장에서 타일을 붙이는 일을 하고 있으니, 내게 가서 타일 기술을 배우라고 먼저 말을 꺼내셨다. 그 말을 들은 당시의 나는 '정말 부모가 자식에게 할 말이야?'라고 생각했다. 당시 내가 일용직, 현장 근로자 등 육체적인 노동을 하는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0%라 생각할 정도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 직전이었다. 아니 이럴 때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꼴에 나온 대학이 일명 '지잡'이지만, 나름 4년제인데, 비싼 등록금을 내가며, 시간을 들여가며 배운 것을 그렇게 허비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애초에 막노동의 길을 갈 것이었으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갔었겠지. 그땐 이력서를 내고 있었던 터라 일단 "지금 이력서를 내두었는데 발표 나는 걸 일단 기다려보고 결정하겠다."라고 말하며 믿을 수 없는 사태를 일단 진정시켰다.



 취업을 위해서 이력서를 쓰면서 느낀 것은,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쓰기가 정말 만만치 않다는 것이었다. 취업을 하기 위해서 수백 명의 구직자들이 지원할 텐데 그중 10명 이내의 사람이 인적성검사(인성검사, 적성검사) 또는 면접대상자가 된다. 그 대상자가 되기 위한 합격, 불합격을 판별하는 것이 바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이 두 가지다. 공무원 시험은 원서를 낸 사람 모두에게, 공부를 했든 안 했든, 시험을 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다만, 원서비가 지출된다.)  물론, 인적성검사는 굉장히 과학적인 인재 선발 시험이라 높은 확률로 회사에 맞는 그리고 사내에 어떤 직종에 맞는지 여부를 판별하는 기준이 된다. 그러나 사기업에서는 어떻게 한 명의 사람을 자소서 몇 장으로 이 회사에 일하기 적절한 인재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인가! 너무 비인격적이라 생각이 들었다. 



 위와 같은 생각을 한 이유가 있다. 처음 이력서를 냈던 회사는 한 제약회사의 자제 관리직이었다. 이런 분야는 다른 조건이 모두 충족되어도 대학교 전공에 대한 제한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취업시장에 무지했던 나는 일단 대졸이고 자격증도 몇 가지 있으니 면접에는 부르지 않을까 해서 일단 이력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이내 내가 안일하게 생각했구나라고 깨닫게 되었다. 대상자가 아니면 검토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을 배우게 된 것이다. 서류 제출 당시 "이 정도면 맞춤법도 그럴듯하고. 분량도 딱 적당하다. 분명 이 회사는 나를 뽑고 싶어서 안 달나 있을걸?"이라는 오만함이 가득 찬 상태였는데 합격 발표일이 지나도 연락이 없자, 무능력한 자신에게 실망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그 막막한 중압감이 내 가슴을 다시 짓누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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