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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사언니 정예슬 Jan 22. 2022

전쟁과 평화의 연속

아무런 계획 없이 집콕 중인 주말. 오전 9시와 오후 9시 일일 특강을 신청해둔 탓이기도 하고, 낮 동안 네 시간을 테니스 동호회에 참석하는 남편 때문이기도 하다. 각자의 계획 속에 아이들이 낄 틈이 없다. 틈틈이 밥을 차려주고 세탁과 설거지를 나누어 할 뿐이다. 부부 각자의 계획과 집안일 외의 시간에는 남편도 나도 책을 읽었다.


"너희 둘이 놀아~ 보드게임을 하든 그림을 그리든~"

이제 엄마 아빠를 찾는 시간보다 둘이 노는 시간이 더 많긴 하지만 실상은 주말이라는 핑계로 아이들을 방치한 셈이다. 평일에 어쩌다 한 두 시간 노는 것과 주말 내내 둘이 노는 건 얘기가 다르다.


당연히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시간은 짧다. 다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싸움을 중재하다보면 별 것도 아닌 걸로 다툰 게 짜증스럽기도 하고, 니 탓 내 탓 거리는 게 보기 싫어 결국 언성을 높이고야 만다. 남편 한 번 나 한 번 번갈아 가며 아이들에게 화를 낸다. 남편이 테니스 치러 나간 사이 나홀로 고민에 빠진다.


'뭣이 중헌디?'

지금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책 한 줄 더 읽고 글 한 줄 더 쓰는 게 중요한가. 주말 동안 읽고 싶다고 쌓아둔 욕망의 책탑은 여덟 권. 내가 봐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서 한숨이 나온다. 욕심이 과했음을 인정한다. 책을 모두 한 쪽으로 밀어두고 아이들에게로 갔다.


"아빠 엄마가 화 내서 미안해. 주말에 가족이 함께 보드게임도 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야 하는데..."

"아니에요. 싸워서 죄송해요."

주거니 받거니 서로를 위로했다. 첫째가 종이와 펜을 가져와서 '우리 가족 규칙'을 쓰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 규칙]
1. 사이좋게 지내기
2. 정리 잘하기
3. 엄마 말씀 잘 듣기
4. 아빠, 엄마, 나, 동생 모두 화내지 않기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뒤에 화살표가 뒷장을 가리킨다. 뒷면에는 우는 표시가 잔뜩 그려져있다. 엄마 말씀 잘 듣고 싶어하는 예쁜 마음을 내가 몰라줬구나 싶어 덩달아 울고 싶은 심정이다. 아이니까 싸우기도 하고, 아이니까 어지럽히기도 하는건데...


규칙을 함께 읽고 내용을 보강?하며 단단히 약속을 한다.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거란 걸 알기에 기대는 내려 놓고. 글자 버스, 루핑 루이, 유리창 타는 거미 경주 등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식탁에 둘러 앉았다. 다음주 하브루타 모임에서 함께 읽을 책을 읽기로 한 것이다. 제목은 <두 거인>. 그림책이 아니라 저학년 문고판이라 글자가 많아서인지 조금은 싫은 내색이었다.


"표지를 먼저 보면서 어떤 내용일지 상상해볼까?"

"저요저요! 두 거인이 막 싸우다가 나중에는 사이좋게 지낼 것 같아요. 나랑 동생처럼~"

"두 거인이 새들이랑 행복하게 지내는 내용일 것 같은데..."

"엄마 생각엔, 둘이 거인이니까 막 바위를 던져서 숲 속을 파괴할 것 같아!!"


상상의 나래를 펼치자나자 얼른 책을 읽어보자고 아우성이다. 그렇게 책을 읽어보니 첫째 말처럼 두 거인은 별 것 아닌 걸로 싸우기 시작했다. 작은 조가비를 서로 가지려고 바위를 던지며 싸우는 것이다. 그러다 서로 바꿔신은 양말을 보고 예전에 사이 좋게 지냈던 때를 떠올리며 다시 평화롭게 지내게 된다.


이런 걸 동시성이라고 하는건지. 아이들도 조금은 놀랐을까? 하루 종일 싸우고 화해하기를 반복했던 형제의 모습, 또 우리 가족의 모습을 두 거인에게서 보았다. 앞으로 절대 안 놀거라고 호언장담을 하다 어느새 히히덕 거리며 놀고 있는 형제. 화 내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돌아서서 또 눈물 쏙 빠지게 혼내고 있는 나와 남편. 두 거인의 모습이 딱 그랬다.



출처: 픽사베이



전쟁과 평화는 종이 한 장 차이다. 두 거인이 서로 못 잡아 먹어서 으르렁 거리다가 바꿔 신은 양말 한 짝을 보고 마음이 사르르 녹아버렸듯이. 아들들의 귀여운 볼과 조막만한 손을 보면 '그렇게 화 낼 일은 아닌데...' 마음이 가라 앉는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지금 두 형제는 목욕 놀이를 하고 싶다고 물안경 챙겨 욕조에 들어가 있다. 꺄르르 웃음이 넘치다가도 하지 말라고 비명을 지르길 반복 중. 또다시 전쟁이군.


주말 육아는 전쟁과 평화의 연속이로다. 내일은 바람 쐬러 근교라도 나가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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