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계획 없이 집콕 중인 주말. 오전 9시와 오후 9시 일일 특강을 신청해둔 탓이기도 하고, 낮 동안 네 시간을 테니스 동호회에 참석하는 남편 때문이기도 하다. 각자의 계획 속에 아이들이 낄 틈이 없다. 틈틈이 밥을 차려주고 세탁과 설거지를 나누어 할 뿐이다. 부부 각자의 계획과 집안일 외의 시간에는 남편도 나도 책을 읽었다.
"너희 둘이 놀아~ 보드게임을 하든 그림을 그리든~"
이제 엄마 아빠를 찾는 시간보다 둘이 노는 시간이 더 많긴 하지만 실상은 주말이라는 핑계로 아이들을 방치한 셈이다. 평일에 어쩌다 한 두 시간 노는 것과 주말 내내 둘이 노는 건 얘기가 다르다.
당연히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시간은 짧다. 다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싸움을 중재하다보면 별 것도 아닌 걸로 다툰 게 짜증스럽기도 하고, 니 탓 내 탓 거리는 게 보기 싫어 결국 언성을 높이고야 만다. 남편 한 번 나 한 번 번갈아 가며 아이들에게 화를 낸다. 남편이 테니스 치러 나간 사이 나홀로 고민에 빠진다.
'뭣이 중헌디?'
지금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책 한 줄 더 읽고 글 한 줄 더 쓰는 게 중요한가. 주말 동안 읽고 싶다고 쌓아둔 욕망의 책탑은 여덟 권. 내가 봐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서 한숨이 나온다. 욕심이 과했음을 인정한다. 책을 모두 한 쪽으로 밀어두고 아이들에게로 갔다.
"아빠 엄마가 화 내서 미안해. 주말에 가족이 함께 보드게임도 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야 하는데..."
"아니에요. 싸워서 죄송해요."
주거니 받거니 서로를 위로했다. 첫째가 종이와 펜을 가져와서 '우리 가족 규칙'을 쓰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 규칙] 1. 사이좋게 지내기 2. 정리 잘하기 3. 엄마 말씀 잘 듣기 4. 아빠, 엄마, 나, 동생 모두 화내지 않기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뒤에 화살표가 뒷장을 가리킨다. 뒷면에는 우는 표시가 잔뜩 그려져있다. 엄마 말씀 잘 듣고 싶어하는 예쁜 마음을 내가 몰라줬구나 싶어 덩달아 울고 싶은 심정이다. 아이니까 싸우기도 하고, 아이니까 어지럽히기도 하는건데...
규칙을 함께 읽고 내용을 보강?하며 단단히 약속을 한다.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거란 걸 알기에 기대는 내려 놓고. 글자 버스, 루핑 루이, 유리창 타는 거미 경주 등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식탁에 둘러 앉았다. 다음주 하브루타 모임에서 함께 읽을 책을 읽기로 한 것이다. 제목은 <두 거인>. 그림책이 아니라 저학년 문고판이라 글자가 많아서인지 조금은 싫은 내색이었다.
"표지를 먼저 보면서 어떤 내용일지 상상해볼까?"
"저요저요! 두 거인이 막 싸우다가 나중에는 사이좋게 지낼 것 같아요. 나랑 동생처럼~"
"두 거인이 새들이랑 행복하게 지내는 내용일 것 같은데..."
"엄마 생각엔, 둘이 거인이니까 막 바위를 던져서 숲 속을 파괴할 것 같아!!"
상상의 나래를 펼치자나자 얼른 책을 읽어보자고 아우성이다. 그렇게 책을 읽어보니 첫째 말처럼 두 거인은 별 것 아닌 걸로 싸우기 시작했다. 작은 조가비를 서로 가지려고 바위를 던지며 싸우는 것이다. 그러다 서로 바꿔신은 양말을 보고 예전에 사이 좋게 지냈던 때를 떠올리며 다시 평화롭게 지내게 된다.
이런 걸 동시성이라고 하는건지. 아이들도 조금은 놀랐을까? 하루 종일 싸우고 화해하기를 반복했던 형제의 모습, 또 우리 가족의 모습을 두 거인에게서 보았다. 앞으로 절대 안 놀거라고 호언장담을 하다 어느새 히히덕 거리며 놀고 있는 형제. 화 내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돌아서서 또 눈물 쏙 빠지게 혼내고 있는 나와 남편. 두 거인의 모습이 딱 그랬다.
출처: 픽사베이
전쟁과 평화는 종이 한 장 차이다. 두 거인이 서로 못 잡아 먹어서 으르렁 거리다가 바꿔 신은 양말 한 짝을 보고 마음이 사르르 녹아버렸듯이. 아들들의 귀여운 볼과 조막만한 손을 보면 '그렇게 화 낼 일은 아닌데...' 마음이 가라 앉는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지금 두 형제는 목욕 놀이를 하고 싶다고 물안경 챙겨 욕조에 들어가 있다. 꺄르르 웃음이 넘치다가도 하지 말라고 비명을 지르길 반복 중. 또다시 전쟁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