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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사언니 정예슬 Mar 15. 2022

시가 이렇게 쉬운 거였어?

1학년 아들이 시를 배운 모양이다. 갑자기 시를 지어보겠단다. 그렇게 김치와 밥이라는 주제로 시가 뚝딱 완성되었다. 김치만 있으면 밥 한 그릇 뚝딱 먹는 아들의 김치 예찬 시였다. 아쉽게도 몇 달 전 일이라 기록으로 남겨두지 않은 기억은 이미 이 세상 것이 아니지만.


그때의 감정은 여전히 남아 있다. '시가 이렇게 쉬운 거야??'라며 놀랐던 마음 말이다. 시는 운율과 함축이 필요한 것이며 막연히 이해도 어렵고 창작은 더 어려운 것이라 생각해왔다.


그런데 만 일곱 살 아들이 보란 듯이 나의 편견을 깨부순 것이다. 아들의 시는 단순했으나 진심이 가득 담겨있고 재미있었다.


어느새 아들은 2학년이 되었다. 2학년 1학기 국어 1단원에서는 시를 배운다. 시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읽고 어울리는 장면을 떠올려 그려보는 활동이 나온다.


코로나 자가격리로 학교에 가지는 못했지만 집에서 대체활동을 하며 시 낭송을 했다. 그래서인지 어제저녁 밥을 먹다 말고 또 시 한 편을 지어보겠다는 것이다. '이번엔 놓치지 않겠어!' 바로 메모 어플을 열어 받아 적을 준비를 마쳤다.





물 물 무슨 물
컵 안에 담긴 물

물 물 무슨 물
욕조 안에 담긴 물

물 물 무슨 물
우물 안에 갇힌 물

물 물 무슨 물
우리 몸을 여행하는 물

물 물 무슨 물
변기 속에 더러운 물



마무리는 언제나 응가나 그 비스무리한 거여야 하는 걸까? 아이들이란~ 그래도 제법 그럴싸한 시 한 편을 만들어냈다. 폭풍 칭찬 박수 작렬!!!! 도치맘 출동~~~






수많은 작가들은 말한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앞뒤 재지 말고 그냥 쓰라고. 시도 결국 글을 짓는 것의 한 장르라면 마찬가지로 그냥 쓰면 되는 것이다. 운율을 맞추고 상징적인 무엇인가를 생각하느라 고민만 하지 말고.



흰 종이를 검은색으로 물들여라.
/기 드 모파상


제대로 쓰지 말고 무조건 써라.
/제임스 씨더



코로나 자가격리도 끝이 보인다. 두 아들에 이어 나까지 장장 열흘. 어느새 봄비가 내리고 날짜는 15일이나 되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약에 취해 누워서 콜록거리며 막연한 걱정만 쌓아 올렸다. 여전히 기침은 남아있지만 이 정도는 코로나를 관통한 흔적으로 애교로 남겨두기로 한다.


그리고 다시 읽고 쓰는 삶으로 스며들어보려 한다. 처음 시작했던 절실함에서 한발 물러나 조금은 가볍고 즐겁게. 꽃내음 가득한 봄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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