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사언니 정예슬 Mar 27. 2022

그녀, 행복해지기로 결심했다

영화 <아멜리에>

우리 집에는 TV가 없다. 반면 친정에는 TV가 세 대나 있다. 거실, 안방, 남동생 방. 아들들은 그런 외할머니 집을 제일 좋아한다. 커다란 스크린으로 원 없이 만화 영화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남동생을 시작으로 우리 집을 지나 다시 엄마로 이어지는 통에 거의 한 달 만에 친정집에 왔다. 오랜만에 엄마와 수다를 실컷 떨고 하룻밤 자고 가기로 했다. 아이들은 거실에서 한 달 동안 보지 못한 TV를 몰아보기 시작했다. 나는? 결혼 준비로 바쁜 남동생이 없는 틈을 타 남동생 방을 독차지했다. 침대에 모로 누워 넷플릭스 서칭에 들어갔다.



이 영화 저 영화 기웃거리다 커다란 눈망울의 한 여자에게서 멈췄다.

'앗!!!! 아멜리에잖아!!!!!!"



대체로 디즈니와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을 즐겨 보던 내게 별미 같은 것이 있었으니, 바로 프랑스 영화였다. 고등학교 때 잠시, 대학교 때 교양으로 잠깐 배운 불어 실력으로 프랑스 영화를 이해하기엔 턱 없이 부족하지만. 크홍통엉거리는 그 비음을 듣는 게 즐거웠다.



어스름한 내 기억 속에 아멜리에는 무척 엉뚱하고 사랑스러운 여자다. 그녀는 무뚝뚝한 아빠와 신경과민 엄마 사이에서 태어났다.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주길 바랐던 어린 소녀에게 군의관 아빠는 차가운 청진기를 갖다 댈 뿐이었지만, 그마저도 너무 좋았던 어린 소녀는 그만 평소보다 과하게 두근거리고 만다. 그녀의 아빠는 아멜리에가 심장병이라는 오진을 내린다.





모든 외부활동과 학교까지 금지된 아멜리에는 교사인 엄마와 홈스쿨링을 시작한다. 유일한 친구였던 금붕어의 탈출 시도로 엄마의 신경쇠약이 심해졌고 결국 금붕어는 자연으로 돌아가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불의의 사고로 엄마마저 돌아가시자 부녀는 두문불출 칩거 생활에 들어간다. 아빠는 오로지 마당에 엄마를 위한 미니 납골당을 만드는 것에만 온 심혈을 기울인다.



5년 후, 아멜리에는 한 카페에 일자리를 구하고 드디어 독립을 한다. 평범한 일상이 이어지던 어느 날, 그녀의 운명을 바꿀 일생일대의 사건 하나가 벌어진다. 집 한 구석에 삐죽 튀어나온 타일 속에서 작은 상자를 발견한 것이다. 어린 시절 사진과 각종 장난감이 들어 있는 한 소년의 보물 상자.



그녀는 그 상자의 주인을 찾아주기로 결심한다. 만약 그 상자의 주인이 감동한다면 평생을 좋은 일만 하며 살리라 다짐을 하기에 이른다. 갖은 노력 끝에 이웃집 화가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주인을 찾게 되었다. 그 일은 상자 주인에게 잊고 있었던 추억을 상기시킴과 동시에 연락이 끊겼던 딸과의 만남까지 선물해주는 계기가 된다.



물론 아멜리에의 삶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혼자 물수제비를 뜨고 영화관에서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며 은밀한 개인생활을 즐기던 그녀에게 다른 사람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실제로 그녀는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사람들을 위해 그녀만의 방식으로 손길을 내민다. 그 와중에 한 남자에게 호기심을 느끼게 된다. 진정한 사랑을 알지 못하는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거부한다.



"너는 유리 인간이 아니야. 부딪치며 인생을 살아갈 수 있어. 당장 가서 남자를 붙잡아."



결정적인 순간 화가 할아버지의 메시지는 아멜리에가 더 이상 전략과 계획 뒤에 숨지 않고 당당히 민낯을 드러낼 수 있게 돕는다. 사랑은 쟁취하는 것이라고 했던가? 용기 내어 사랑을 얻은 그녀의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그런데 이 영화를 다시 보니, 또 다른 결론이 보였다.



행복은 행복하기로 선택한 자에게만 주어진다.



아멜리에도, 그녀의 이웃과 아버지도, 풍차 카페 안팎의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행복을 선택한 이들은 어김없이 행복하지만, 끝내 불행과 의심을 선택한 이들은 타인뿐 아니라 자신마저 괴롭히며 산다.


후자의 대표적인 예가 풍차 카페 여직원들에게 과도한 집착을 보이는 남자다. 구속과 억압으로 사랑을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


아멜리에의 아빠도 후자에 속한 인물이었지만 딸의 노력 덕분에 여행을 감행함으로써 더 이상 자신을 슬픔에 가두지 않고 행복을 선택한다.


우리 주위에는 행복이라 부를만한 것들이 많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천지에 널려 있는 행복을 보지 못하고 내 것이 아니라 생각하며 무심히 지나치고 만다. 이젠 내 몫의 행복을 충분히 누렸으면 좋겠다. 행복할 자격이 있음을 알고 과감히 내 삶으로 가져오길 바란다.


햇살 한 조각, 바람 한 점도 좋고 향긋한 꽃 한 송이, 따뜻한 차 한 모금도 좋다. 나 혼자서도 충분하고 옆에 있는 누군가와 함께 즐겨도 좋은 일상 속 행복. 충만하게 누리고 매 순간 기뻐하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스스로 누리는 진정한 자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